▲현대중공업 채권단이 하이투자증권 매각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 측은 신중한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의 서울시내 한 지점. (사진=CNB포토뱅크)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 현대중공업이 계열사를 통해 보유 중인 하이투자증권 주식을 얼마나 내다팔지에 증권가의 시선이 쏠린다. 채권단이 자구책에 하이투자증권 매각을 포함할 것을 주문하면서 지분 매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이 하이투자증권의 경영권까지 내놓을 지가 관심사다. ‘위기의 현대중공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 (CNB=도기천 기자)
알짜 증권사 두고 채권단-현대重 신경전
정부-채권은행 연일 강력한 자구책 요구
현대重 “타조선사 보다 나은데…너무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을 통해 하이투자증권을 지배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은 하이투자증권 85.32%를 가진 최대주주다. 현대미포조선의 최대주주는 42.34% 지분을 가진 현대삼호중공업이며, 현대중공업은 현대삼호중공업을 자회사(지분율 94.92%)로 두고 있다. 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미포조선-하이투자증권으로 연결되는 출자구조다.
하이투자증권의 자기자본총액은 1조8천억원(2015년 12월31일 기준)에 이른다. 증권가에서는 미포조선이 하이투자증권 지분을 전량 매각할 경우, 매각가격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1조원 안팎까지 치솟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중 “매각 얘기 불편”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한 상태다. 글로벌 조선·해운 경기가 악화되면서 지난 2년 간 4조 7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부실사업 매각, 인력 감축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며, 이미 전체 직원 2만8000명 중 사무직 1000명이 회사를 떠났다.
최근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에 제출한 자구안에는 생산직을 포함 전 직원의 10%(약 3000명)를 감축할 계획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여파로 사내하청업체들의 인력도 30%(약1만여명)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7일 38개월간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던 STX조선이 끝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조선업계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조선사들의 경우 STX조선의 뒤를 이어 법정관리나 청산의 길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의 구조조정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채권단에 추가로 내놓을 자구계획안에 하이투자증권의 구체적인 매각 방안이 담길 가능성이 회자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금융감독원의 하이투자증권 매각 관련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면서도 “이사회 결의 등 구체적인 사항이 결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지난 13일 답변한 상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31일 CNB에 “공시 이후 달라진 입장은 없다. 다른 조선사들보다 형편이 나은데도 자꾸 (하이투자증권 매각) 얘기가 나와 불편하다”고 전했다.
하이투자증권 지분 매각과 더불어 계열사인 삼호중공업의 상장, 현대오일뱅크 프리IPO(기업공개 이전에 기관투자자들로부터 미리 자금 유치)도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은 ‘설’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8년 삼호중공업의 증시 상장을 추진한 바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조선시황이 나빠지자 상장 계획을 접은 바 있다.
이번에도 일각에서 상장 가능성이 제기 되지만 회사 측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사내유보금 12조4000억원, 부채비율 144%로 다른 조선사에 비해 아직은 양호한 재무구조이기 때문. 경쟁사인 삼성중공업은 사내유보금 3조5935억원(부채비율 306%), 대우조선해양은 사내유보금이 아예 없고 부채비율만 7300%에 이른다.
또 섣불리 상장했다가 주가가 내려가면 현대중공업 전체 계열사 주식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현대오일뱅크 프리IPO도 마찬가지 이유로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정부가 조선산업 전체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조선업계는 창사 이래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30일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를 덮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이투자증권 ‘호불호’ 엇갈려
따라서 채권은행들은 현재로서 가장 발 빠르게 자금을 확보할 방법은 하이투자증권 지분 매각이라고 보고 있다. 채권단이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사재 출연까지 요구하고 있는 점도 매각을 서두르게 하려는 압박 카드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매각, 미래에셋의 대우증권 인수 등의 굵직한 인수합병이 시장의 관심을 받으며 성공했다는 점이 채권단을 고무시키고 있다”며 “채권은행 입장에서는 알짜매물인 하이투자증권 매각을 계속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하이투자증권이 시장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매물로 평가 될지는 의문이다. 매출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로 발생한 우발채무 등이 시장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의 지난해 매출액은 9507억원으로 전년보다 46.3%(3007억원)나 증가해 최근 교보증권·KB투자증권·키움증권과 함께 500대 기업에 신규 진입했다.
또 지난해부터 진행된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상당히 줄인 점도 매력적이다. 지난해 1100여명의 직원 중 129명이 회사를 떠났으며 올해도 상당 부분의 감원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새로 취임한 주익수 대표는 지속적인 구조조정 의사를 밝힌 상태다.
반면 공격적인 경영으로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리스크가 커진 점은 매각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그동안 부동산 PF 사업에 적극적인 투자 포지션을 유지해 왔다.
지난 2011~2012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로 10여 곳의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 과정에서 ‘부실 PF 대출’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자 살아남은 저축은행들은 PF에서 거의 손을 뗐다.
이 때를 틈타 하이투자증권을 비롯, 메리츠종금증권 HMC투자증권 교보증권 IBK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이 앞 다퉈 PF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건설경기 둔화로 미분양이 증가하면서 PF 지급보증으로 인한 우발채무(미래에 예상되는 채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증권사 우발채무 규모는 2014년 말 19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9월 총 24조1000억원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이에 따라 하이투자증권을 비롯한 상당수 증권사들의 신용등급이 최근 하향 조정됐다.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앞.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을 보기 힘들다. (사진=CNB포토뱅크)
채권단-현대重 줄다리기 ‘팽팽’
따라서 하이투자증권 매각의 성패는 구조조정의 성공 여부와 함께 우발채무를 어떻게 줄이느냐다. 리스크가 최소화된 상태라면 매력적인 매물이 되겠지만, 반대의 경우엔 경영권 메리트를 포함하더라도 투자자의 주목을 끌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이투자증권 관계자는 CNB에 “채권단과 그룹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며, 최근 구조조정은 매각과는 상관없이 재무구조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알짜매물을 지키려는 현대중공업과 유동성을 강화하려는 채권단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며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다른 조선사들에 비해 재무구조가 양호한 상태인데도 채권단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채권단은 선제적 조치를 통해 정상화 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해 서로 간에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가 해운·조선업계 분할·합병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어 현대중공업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