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늘리기로 하면서 지난해 수성전에 실패했던 SK네트웍스(워커힐면세점)와 롯데면세점(월드타워점)이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5~6월에 문을 닫아야 할 처지가 됐다. 오는 연말경에 신규 사업자 4곳이 결정될 예정인데, 이들이 다시 사업자로 선정되면 폐업 6개월 만에 다시 개업을 하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된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면세점 업계를 취재했다. (CNB=김유림 기자)
한류 따라 오락가락 정책
냉·온탕 오가는 면세 기업들
신규·기존사업자 모두 불만
관세청은 서울 시내에 면세점 4곳을 추가로 설치하고, 이르면 이달 말 특허 신청 공고를 낼 계획이다. 특허는 대기업 3개, 중소·중견기업 1개를 발급할 예정이며, 오는 연말에 사업자가 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면세업계에서는 지난해 연말 특허기간 종료로 재입찰에 도전했다가 탈락한 SK네트웍스(워커힐면세점)와 롯데면세점(월드타워점)이 다시 티켓을 따낼 것으로 보고 있다. 두 기업이 면세점 사업 경험이 풍부한 데다 이미 대부분 유통기업들이 최근 1년 동안 진행된 몇 차례의 면세점 입찰에서 사업권을 따낸 상태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기업은 특허 만료로 각각 이달과 다음 달에 문을 닫아야 한다. 연말경에 다시 사업자로 선정되면 1년 동안 ‘탈락→폐업→재영업’이라는 과정을 밟은 셈이 된다.
이들이 몇 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게 될 처지가 된 것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면세점 정책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지난달 29일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한 점, 국내 면세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한 점 등을 근거로 서울 시내에 면세점 4곳을 추가로 설치한다는 계획을 갑작스럽게 발표했다.
현행 규정상 광역별 외국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30만명 이상 증가하면 관세청장은 신규 면세점 특허신청 공고를 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1년 전에 비해 157만명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 신규 면세점 추진을 발표한 것.
그러자 시장에서는 지난해 탈락한 SK와 롯데를 배려한 패자부활전 성격이라는 특혜 시비가 일었다. SK와 롯데는 내심 큰 기대를 걸었고, 시장에서는 이들이 5~6월이 지나도 한동안 임시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관세청은 “이들에 대한 특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고, 결국 양사는 최소 6개월은 영업을 중단해야 할 처지가 됐다.
당장 폐업을 앞두고 있는 월드타워점(6월30일 폐업 예정)과 워커힐면세점(5월16일 폐업 예정)에서 근무하는 수천 명 직원들의 거취가 주목된다. 현재 두 곳 면세점에는 면세점 소속 직원, 입점 브랜드 파견 직원, 상담·물류운반 담당 용역업체 파견 직원 등 총 22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양사 모두 재무적 부담을 안더라도 직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파견 직원들은 갑작스럽게 타 지점 발령 통보를 받은 이들이 많아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월드타워점 입점 화장품 A브랜드 파견 직원 이모(31)씨는 CNB에 “아직까지 롯데면세점 측으로부터 정확한 공지가 내려오지 않았지만, 6월30일 특허가 만료되기 때문에 결국 문을 닫을 것으로 본사도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파견 직원들은 인천공항점이나 본점, 두산면세점 등으로 발령 통보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면세점은 판매직종이 많기 때문에 80% 이상이 여직원이다. 워킹맘들은 너무 먼 곳으로 옮길 수가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며, 월드타워점이 다시 오픈해도 돌아올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사표를 고려하는 사람이 많다. 월드타워점은 기복 없이 항상 손님이 많은 편이었는데, 왜 정부에서 문을 닫으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특히 두 사업장이 재입찰을 통해 특허권을 다시 찾는다 해도 반년 정도의 공식 폐점으로 인한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월드타워점의 2015년 한해 매출은 6111억원에 달했으며, 폐점에 따른 한 달 피해액은 6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여기에 27년 동안 월드타워점에 투입된 마케팅 비용, 투자금에 대한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롯데 측은 보고 있다.
워커힐면세점 역시 손실금을 1500억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지난달 통합물류창고 사용권, IT시스템 등 주요 자산 일부를 두산그룹에 매각했는데, 향후 사업 재개를 하게 된다면 다시 처음부터 갖춰야 한다.
여기에다 입점해 있던 수백 개의 각종 명품 브랜드들이 연말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현재 오픈 준비 중인 두산, 신세계 등 신규면세점으로 옮겨갈 경우 양사는 다시 처음부터 입점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CNB에 “월드타워점은 당연히 신규면세점 특허 신청을 할 예정이다. 오는 6월 기존의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지만, 관세청이 구체적인 공고를 아직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확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워커힐면세점 관계자는 “관세청에서 정확한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기 어렵다. 두산 측에 일부 시설을 넘겼지만 아직 660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IT시스템은 그동안의 운영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추후에 다시 구축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는 두 기업뿐 아니라 지난해 새로 특허권을 획득한 신규면세점 업체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거나 오픈 준비 중인 곳은 롯데(소공·잠실 2개), 신라, HDC신라, 동화, 한화, 두산, SM, 신세계 등 9개다. 앞으로 4개가 추가되면 서울에만 13개의 면세점이 자리 잡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다시 허가를 내 줄 거였으면, 도대체 지난해 심사 때 왜 (롯데와 SK를) 탈락 시켰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류 바람을 따라 오락가락 할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정책을 세월 달라는 게 면세업계의 한결같은 바램이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