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화제를 모았던 ‘태양의 후예’가 지난 1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태양의 후예’라는 제목처럼 기업들은 모처럼 태양의 따뜻한 바람을 받아 ‘매출 훈풍’을 맞았다.
PPL(방송 중간에 등장하는 간접광고)을 통한 식품, 패션, 뷰티, 자동차 등 여러 산업 영역의 매출 증대로 이어졌으며, 경제 효과가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혜교가 전속모델로 활동 중인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들과 드라마 주요 장면마다 등장한 제네시스와 아반떼, 투싼, 싼타페 등 현대차의 매출이 급증했다.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 8.0’. KGC인삼공사(한국인삼공사) 정관장 홍삼 등 드라마 속 PPL 상품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눈물 젖은 초코파이’ 군생활의 상징
특히 ‘남북의 정’을 상징한 ‘초코파이’는 PPL 계약을 맺지 않았음에도 제작진이 제품을 등장시켜 화제를 모았다.
태양의 후예는 100% 사전제작 드라마로 즉각적인 PPL 투입이 어렵다는 단점에도 불구, 총 제작비 130억원 중 PPL로만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PPL이 브랜드 인지도와 매출로 연결되면서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인기 드라마에 자사 제품을 노출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초코파이 생산업체인 오리온은 어떠한 광고 제의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리온 관계자는 CNB에 “태양의 후예 PPL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극의 흐름상 필요한 소품이기 때문에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초코파이는 지난 7일 방영된 태양의 후예 14회에서 등장했다. 한국 특전사 유시진 대위(송중기)가 북한군 안상위(지승현)에게 “작별 선물입니다. 맛있는 거니까 아껴먹기 바랍니다”는 말과 함께 초코파이를 건넸다. 이후 안상위는 주머니에 간직하고 있다가 북한으로 가기 직전 초코파이를 꺼내 먹으며 “과자값은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겠다”라고 말했다.
많은 시청자들은 이 장면을 통해 분단의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남북 두 군인의 우정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방송 직후 이 장면을 두고 시청자들은 PPL로 오해했다. “완전 초코파이 광고인 줄” “초코파이 오히려 안 먹고 싶다”는 등 비난을 온라인 게시판에 쏟아냈다. 이미 ‘태양의 후예’는 중탕기, 아몬드, 홍삼 등 극 중간 다소 뜬금없는 PPL 제품 등장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터라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
그러자 방송 다음날 오리온은 PPL 논란과 관련해 공식 페이스북에 해명했다. 드라마 영상 링크와 함께 “역시 초코파이는 정(情)이지 말입니다. PPL 안 했는데 뜻밖의 홍보”라는 글을 남기며 PPL이 아니었음을 설명했다.
태양의 후예 초코파이 장면을 두고 많은 이들은 지난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를 떠올렸다. 남북한 병사들이 초코파이를 먹으며 어울리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화평론가들은 초코파이가 이념을 뛰어넘는 ‘우정의 상징’이라고 해석했다. 영화 속 북측 병사 역의 송강호는 “내 소원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더 맛있는 초코파이를 만드는 기야”라고 말했다.
당시에도 제품 이름과 상품이 노골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PPL일 것이라고 오해했지만, 오리온 측은 CNB에 “JSA 공동경비구역 영화에도 역시 PPL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초코파이, 남과 북을 잇는 징검다리
이처럼 오리온이 본의 아니게 ‘공짜 광고’ 수혜를 받은 이유는 뭘까.
초코파이는 수십 년간 대한민국 군대의 대표 간식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코파이 하나를 위해 불교신자가 교회 가서 기도하고, 이등병 때 고참 몰래 화장실에서 가루가 된 초코파이 먹은 사연 등 ‘눈물 젖은 초코파이’를 빼고는 군대를 논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또 오리온은 1989년부터 ‘정(情)’을 초코파이 브랜드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라는 가사를 담고 있는 광고 배경음악은 ‘국민 CM송’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하다. 이런 류의 광고를 여러 차례 연작물로 제작해 내보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이라는 한 글자만 봐도 누구나 오리온 초코파이를 떠올릴 정도가 됐다. 어느덧 ‘초코파이’가 현대 사회에서 가족과 친구, 이웃 간의 정을 일깨워주는 메신저로 자리 잡은 것..
이 같은 ‘정’ 마케팅은 휴전선 넘어 북한에도 통하고 있다. 지금은 정부의 폐쇄조치로 문을 닫았지만, 북한발(發) 초코파이 열풍의 진원지는 개성공단이다.
북측 근로자들은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매일 두어 개씩 받았으며, 성과가 좋으면 인센티브로 한 상자 씩을 받기도 했다. 북한 근로자들은 본인이 먹지 않고 가족과 나눠먹기 위해 집으로 초코파이를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과거 개성공단을 관리했던 한 기업인은 “북측 노동자들에게 초코파이를 간식으로 나눠줘도 작업장 쓰레기통에 포장지를 찾아볼 수 없다. 자녀에게 주려고 몰래 가져가는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서 초코파이는 남북을 잇는 ‘정’과 ‘군대간식’의 상징이 됐고, 남북한 군인들의 우정을 위해 필수적인 소품으로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서도 초코파이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CNN은 ‘초코파이는 남북한 모두에서 정을 일깨우는 맛’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저명 인사들이 한미 상호간 협력 증진을 위해 세운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스티븐 노에르퍼 수석 부회장은 한 외신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도 평범한 사람이고 이들 중 99%는 하루 일과 후 초코파이를 먹고 싶어하듯 더 나은 삶을 원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