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석기자 | 2016.04.11 08:42:47
20살 대학생의 이야기가 밤하늘 위로 오를 때 함께한 시민들의 눈물은 바닥으로 향했다. 세월호에 오른 9명이 2년 째 내리지 못하고 있는 9일 오후 춘천 명동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올해 20살이 된 한림대학교 간호학부 새내기인 이혜영 씨(19. 사진)가 마이크를 잡았다. 2년 전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9반 故 이보미 학생과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보미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받고 힘이 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보미의 중학교 시절 꿈은 가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애완동물, 그중에서도 강아지에 대한 안 좋은 일들로 마음 아파하고 꿈을 수의사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보미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정말 정의로운 아이였습니다."
이혜영 씨와 故 이보미 학생은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이보미 학생은, 전학 후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이혜영 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가 돼주었다. 그렇게 친구가 된 두 사람은 7년 간 남들이 부러움을 살 만큼 친한 사이가 됐다.
세월호가 출항하기 전 2014년 4월 15일 날 밤, 이혜영 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보미 학생이었다. 안개가 심해 출발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보미 학생은 새 학기 같은 반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추억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이보미 학생의 바람처럼 세월호는 출발했으나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통화는 그래서 더욱 믿겨지지 않았다.
"저는 빨리 출발해서 무사히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추억을 쌓기 위해서 떠난 수학여행이 보미를 절대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사고소식을 뉴스로 접한 저는 내 친구들은 씩씩하고 건강하고 착하니까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세월호 안의 아이들은 너무 착해서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가장 답답한 것은 떠나버린 친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가족처럼,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의 빈소를 찾아 가 조문을 드리고 부모님을 위로해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2015년 월 1일. 안산 원곡교를 다닌 이혜영 씨는 5명 학교 친구들과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배를 접어서 3000장의 응원의 메시지를 받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친구들을 기억하고 유가족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하지만 학교는 정치적 색깔을 띠고 있으니 그만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위협했다.
"그 때 유가족 분께서 저희에게 대학생이 되어서 더 많은 활동을 통해 세월호 진상규명에 힘 써 달라, 투표를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혜영 씨는 올해 한림대 간호학부에 입학했다. 교내 동아리 중 세월호 문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하는 곳을 만났고, 교내에서 노란리본 나누기, 세월호 문제 토론 등 4.16 2주기를 준비하는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얼마 전 교내에서 유가족 간담회를 열었다. 충격이었다. 그간 전혀 알지 못했던 정부의 행태, 사고 당시 무능력을 드러냈던 해경, 해수부 등 많은 의혹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직접 나서서 의혹을 밝혀내고 바꿔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행동하겠습니다. 왜 저의 친구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는 아픔을 다시는 누군가가 느끼지 않게 바꿔나가겠습니다. 저의 친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같이 힘을 합쳐 바꾸어 나갑시다."
한편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춘천시민행동'은 9일 오후 춘천 공지천과 명동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그 봄날을'을 주제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존엄과 안전에 관한 인권선언'을 발표하는 등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행사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