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석기자 | 2016.04.06 08:43:35
횡성 또한 횡천(橫川), 일명 어사매(於斯買)에서 황천(潢川)으로 불리다가 1414년 조선 초기 횡성으로 이름이 바뀐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인근에 위치한 홍천(洪川)과 발음이 비슷해 이름을 바뀌었다고 전한다. 그 과정 중 화전 또는 화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화성의 흔적은 횡성읍 화성들(앞들) 지명으로 남아있다. '가로'를 의미하는 횡성은 여러 하천이 횡성읍에서 합류해 섬강을 이루고, 그 곁으로 평야를 이루는 지형과 관련이 깊다.
횡성의 지명과 함께 스토리가 풍부한 곳. 바로 에덴의 꿀벌학교다. 서울~횡성~평창으로 향하는, 태기왕이 병사들과 함께 걸었을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한우로 797-8에 위치해 있다. 여왕벌 한애정(44) 교사와 일벌 윤상복(48) 보조교사 부부가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스토리의 시작은 대를 이어 꿀벌을 기른다는 것. 현재 한애정-윤상복 교사 부부가 2대째로 양봉업에 종사하고 있고, 현재 고교 재학 중인 딸이 대기 중이다. 벌꿀을 이용한 전문음식을 개발해 가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다른 하나는 벌 이야기다. 에덴의 꿀벌학교. 이름 자체부터 스토리로 가득하다. 웅웅거리는 벌의 날갯짓만큼 풍부한 벌에 대한 이야기는 신기하고 또 교훈으로 가득하다.
"50여 년 전 아버님께서 병으로 누워계신 할머니의 병 구환을 위해 꿀을 사 드렸다고 해요. 하지만 꿀이 너무 비싸서 매번 사드릴 수 없었죠. 그래서 직접 꿀을 떠보려고 두 통의 벌을 사서 키운 게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자칭 일벌인 윤상복 보조교사의 이야기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서 벌을 접하게 됐고, 직업이 됐다. 1962년 양봉을 시작한 이후 2대째 계속되고 있다.
여왕벌은 상황이 좀 다르다. 한애정 교사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곧장 벌꿀을 따기 위한 텐트생활에 들어갔다. 스물다섯 살 나이에 시작된 야외생활. 얼음을 깨 밥을 짓고 빨래를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신혼의 달콤함은 모든 상황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달콤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달콤한 꿀을 만드는 벌이 훼방꾼이 됐다.
"남편을 찾아갔어요. 혼자서 벌들을 돌보는 게 안쓰럽고 또 궁금해서요. 갑자기 벌 한 마리가 날아와 손등을 쏘고 달아났어요.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퉁퉁 부어오르는 손을 보면서 대성통곡을 했어요. 지금은요? 앗, 따가워! 이 정도? 붓지도 않아요.(웃음)"
한애정 교사는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하면서 안전을 가장 강조한다. 처음 벌에 쏘였던 당시 무서움과 아픔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에덴의 꿀벌학교는 2011년 농촌진흥청의 농촌교육농장에 선정됐다. 이듬해 전국 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7년부터 준비를 했던 탓이다. 이들 부부는 당시 농촌체험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서 체험 수요가 늘 것으로 보고 농촌교육농장 교사양성 기초·심화과정을 함께 수료했다.
2011년 농림축산식품부 양봉 현장 실습장으로 선정됐고, 2015년 6차산업인증도 받았다. 지난 2월 서울 성동구와 무지개 꿀벌학교 운영 협약을 체결했다. 도시 학생들에게 서울숲 등 지역자원을 교육과 연계한 환경생태교육을 비롯해 현장체험교육으로 학생들의 적성·진로 개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큰 위기가 가져온 결과다. 윤상복 에덴양봉원 대표에게 양봉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위기가 닥쳤다. 2000년 초 일이다. 겨울이면 남부지방에 가 4~5개월 간 텐트생활을 한다. 힘든 과정이지만 그만큼 수익이 높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꽃이 피어도 꿀이 들지 않았어요. 벌통을 열어보면 벌들이 사라지고 없었죠. 심지어 벌들이 꽃에 붙은 채 죽기도 했어요. 아직까지 원인을 몰라요. 다만 환경적인 영향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죠. 그렇게 7~8년이 계속됐어요.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지면서 양봉을 그만 둘 생각까지 했어요. 실제 저는 건설노동자로, 아내는 영어학원 강사로 취직할 준비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던 중 농촌교육농장을 알게 됐다. 이거다 싶었다. 학생들에게 벌의 소중함과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에덴의 꿀벌학교는 4958㎡ 부지에 생태학습장 3305㎡과, 꿀벌전시장, 벌꿀채밀학습장, 요리학습장, 프로폴리스 족욕장 등 각종 체험장 1652㎡로 꾸며져 있다. '꿀벌아 고마워'를 중심주제로 청소년에게 꿀벌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특히 환경교육을 강조한다. 꿀벌이 없으면 먹지 못하게 되는 것들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사람과 꿀벌이 함께 사는 길을 스스로 가꿀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꿀벌의 생태는 거의 대부분 교과목과 접목이 가능하다.
과학은 벌들이 6각형의 집을 짓기 위해 더듬이와 다리로 재서 밀납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학생들 스스로 밀납으로 양초를 만들어볼 수 있도록 한다. 수학은 벌집이 6각형인 것을 토대로 콤파스와 자를 이용해 도형을 그리는 과정이, 보건·의료는 천연항생제인 프로폴리스를 이용한 마스크팩과, 봉독을 이용한 통증 완화 등을 소개한다.
사회는 집단생활을 하는 벌들이 여왕벌, 일벌, 수벌 등 협력을 통해 각자 역할을 다하는 모습으로 협동과 배려를 설명한다. 여기에 꿀이 들어간 꿀떡볶이와 떡꼬치, 감자와 고구마가 들어간 피자에 꿀 찍어먹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꿀벌학교는 봄부터 겨울까지 40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다회차교육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이 대부분으로, 선도농가 실습농장에 선정돼 홍천농고생을 위한 직업체험과 진로지도 등을 맡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실습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친근한 꿀벌, 화목한 꿀벌, 신비한 꿀벌, 부지런한 꿀벌, 고마운 꿀벌, 지혜로운 꿀벌 등으로 진행된다.
친근한 꿀벌은 꿀벌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무섭게 느껴졌던 벌을 직접 보고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친근함을 갖도록 하고 있다. 화목한 꿀벌은 벌집을 관찰하면서 가족 구성원을 구분하고 이를 통해 협동하고 서로 돕는 가족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고마운 꿀벌은 딸기나 포도 등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돕는 벌들의 역할을 알려준다.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꽃밭을 가거나 벌통을 관찰할 때 안전복은 필수죠. 어린 유치원생들이 꿀벌에게 '고마워'하는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죠.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은 개발하고 연구하는 힘의 원천이죠."
지난해 에덴의 꿀벌학교를 찾은 교육생은 3200여 명에 이른다. 2014년에는 3000여 명이 다녀갔다. 재방문이 많고 유치원과 초중고등학생은 물론 가족 단위 방문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꿀벌은 꽃에서 꿀을 얻지만 꽃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아요. 꿀벌의 세계는 우리의 삶과 같죠. 교육농장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훌륭한 교육장입니다."
에덴의 꿀벌학교는 국내 최고의 양봉 교육농장을 만드는 게 목표다. 교육과 치유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진로·직업체험과 식생활 교육이 가능한 벌꿀요리학습장을 만든 이유다. 치유를 위한 프로폴리스 족욕장도 그런 이유에서 탄생했다. 꿀벌의 삶과 그 결과인 양봉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에덴의 꿀벌학교. 윤상복 보조교사가 직접 지었다. 성경에 나타난 에덴동산처럼 기계문명이 없고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꿀벌을 기르고 벌꿀을 생산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진실함과 성실함은 꿀벌의 삶의 방식이고, 자연의 모습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연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한애정-윤상복 부부 교사의 꿀벌 이야기는 노자의 도덕경을 생각케 한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인간의 법은 땅에서, 땅의 법은 하늘에서, 하늘의 법은 도에서, 그리고 마침내 도의 법은 자연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꿀벌과 사람의 삶을 수직이 아닌 수평의 관계로 이해하는 이들 부부의 삶이 바로 '가로' 놓인 땅, 횡성과 무척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