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석기자 | 2016.04.04 21:22:59
누리과정 예산편성 논란이 4.13 국회의원 선거 강원지역 이슈로 떠올랐다. 만3세부터 고교 3학년까지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공통관심사인 까닭으로, 여당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당 간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부가 시도교육청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했으며, 시도교육청이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진보교육감들이 아이들을 볼모로 정치적 꼼수를 부린다고 비판한다.
반면 전국 시도 교육감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예산 지원은 없었고,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일부에선 특히 정부와 새누리당이 지방교육정책지원특별회계법을 제정해 교육감 주민직선제 폐지 등 지방교육자치를 말살하려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의 원인과 과정, 핵심 쟁점을 살펴본다. (CNB뉴스=유경석 기자)
글 싣는 순서
① 개관
② 돈 문제 앞서 법 문제
③ 정치문제 아닌 교육문제
④ 해법은
누리과정 예산 갈등의 본질은 무엇일까. 두 가지 기준으로 누리과정은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누리과정을 추진한 주체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재정의 안정성 확보다. 교육은 지속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결국 돈 문제다' 또는 '아이들을 볼모로 한 정치 꼼수다'라는 프레임에 매몰되면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누리과정은 돈 문제가 아니다. 그에 앞서 법 문제다. 아이들을 볼모로 한 정치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다. 이에 따라 시도 교육감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교육특별법 제정 발표로 '누리과정 물타기'
4·13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방교육정책지원특별회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예산안부터 누리과정 예산을 특별회계에서 편성·지원해 누리과정 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예산의 총액에는 변함이 없고, 보통교부금 중 10%를 누리과정 예산으로 편성한다는 게 핵심이다.
지방교육특별법의 제정은 그 자체로 정부와 새누리당 스스로 그간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등을 개정하고 시도 교육감에게 개정된 시행령을 근거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시도 교육감은 상위 법률에 위배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시행령과 모법의 법적 위계를 뒤집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러한 시도교육감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다. 시도교육감의 주장이 관련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4·13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일반법에 우선하는 특별법 제정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정부 스스로 그간 시행령 개정으로 모법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잘못됐음을 자인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4·13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새누리당이 발표한 지방교육특별법의 제정은 양날의 검이다. 유권자들의 판단에 따라 손해가 될 수도,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2014년 말 현재 도내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 이용 아동은 3만 6000여 명으로, 이들의 부모는 7만여 명이다. 특히 춘천·원주·강릉 등 시 단위 지역 유권자가 많아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
나아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으로 교육경비가 축소될 경우 초·중·고교 학부모의 표심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파장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2014년 말 현재 도내 초등학생 수는 7만 8000여 명이고, 중학생 4만 8000여 명, 고교생 5만 4000여 명이다. 이들 부모는 25만 명~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내년 12월로 예정된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육감 주민직선제 폐지 가능성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새누리당이 특별법의 제정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유치원·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동의 부모가 유권자라는 점이다. 기존처럼 법적 위계를 전도하는 방식으로 논란이 지속될 경우 선거전에서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다른 하나는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누리과정 논란 과정에서 등장하는 용어는 법원에서 다룰 정도로 전문적인 것들이다.
헌법-법률-시행령-시행규칙 등 법적 위계와 함께 예산편성과 집행 주체를 파악해야만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이는 '결국은 돈 문제다', '아이들을 볼모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등 표현을 더 쉽게 이해하는 배경이다.
지방교육특별법 제정은 두 가지가 핵심이다. 하나는 지방교육자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교육의 부실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지방교육특별법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직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게 골자다. 4.13 총선 이후 지방교육특별법이 제정되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을 근간으로 한 시도 교육감들의 총액 예산편성권은 제한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비율은 내국세의 20.27%로, 보통교부금 96%와 특별교부금 4%로 구성된다. 시도 교육감은 교부금 총액에 대한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다. 지방교육자치 실현 등을 위해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방교육특별법 제정을 통해 지방교육정책지원특별회계를 설치해 보통교부세 중 10%를 교육세로 분리, 누리과정 예산의 용도로 특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한 추가적인 재정 지원은 없다.
시도 교육청의 예산 중 85% 이상이 인건비 등 반드시 지출해야만 하는 경직성 경비다.
실제 강원도교육청의 올해 예산은 2조 3805억 원이다. 인건비만 1조 6426억 원으로, 69.0%를 차지한다. 여기에 학교운영비 1735억 원(7.2%)과 시설사업비 380억 원(1.5%), 기관운영비 139억 원(0.5%) 등 경직성 경비의 비율만 85% 내외에 이른다.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659억 원으로, 교육사업비 600억 원 등 가용재원 942억 원의 70%를 차지한다. 나머지 283억 원으로 학교안전이나 석면 교체 등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아울러 지방교육특별법은 헌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 헌법은 지방자치 실현 등을 위해 교육재정 등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했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교육감에게 교육재정 총액에 대한 예산편성권을 보장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지방교육특별법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직접 교육예산을 직접 편성할 경우 이는 헌법과 충돌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시도 교육감들은 재량권 제한과 이에 따른 역할이 축소될 경우 결국 주민직선제 폐지로 진행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헌법의 체계정당성의 원칙을 위반한다고 보고 있다. 헌법의 입법원칙 중 체계정당성의 원칙에 따라 법률 조문 상호간, 법률과 법률 사이의 모순이 없어야 하는데, 지방교육특별법은 이를 위반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