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 삼양 간짬뽕을 불짬뽕으로 변경
중국서 불짬뽕 상표등록 선점…분쟁 예고
라면 수출 기업들, ‘불짬뽕’ 사용 못할 수도
라면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잇따라 출시된 프리미엄 ‘짬뽕라면’ 판매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오뚜기 ‘진짬뽕’, 팔도 ‘불짬뽕’, 삼양식품 ‘갓짬뽕’, 농심 ‘맛짬뽕’은 소비자들로부터 ‘짬뽕 4대 천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짬뽕라면은 해외시장까지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농심 맛짬뽕은 이미 미국 중소형 마켓 위주로 판매되고 있으며, 중국, 호주, 대만 등으로도 수출할 예정이며, 팔도 불짬뽕은 올 상반기 중 중국을 비롯한 20여개 국가에 5만 박스를 수출할 계획이다. 오뚜기와 삼양식품은 당분간 국내 시장에 전념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아직 중국 수출 협의 단계인 ‘팔도 불짬뽕’이 이미 지난해부터 중국에서는 ‘삼양 불짬뽕’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CNB 확인 결과, 중국 불짬뽕 포장지에는 삼양식품의 영어 로고와 한글로 ‘불짬뽕’이라고 정확하게 명시돼있으며, 누가 봐도 삼양식품의 라면이다.
삼양식품 측은 “의뢰인이 해달라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사연은 이렇다. 삼양식품은 중국 유통기업 유해구일무역유한공사(구일)와 손잡고 지난해 연말 중국에 보낼 간짬뽕을 생산했다. 구일이 삼양식품에게 삼양식품이 국내에 판매하고 있는 간짬뽕을 중국에서 보급하고 싶다고 의뢰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런데 구일은 삼양식품에게 제품 이름을 ‘불짬뽕’으로 해줄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포장지에 ‘SAMYANG-九日 불짬뽕’으로 표기됐고, 현재 중국에서 판매 중이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팔도가 ‘팔도 불짬뽕’을 중국에 수출할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불짬뽕’ 명칭을 놓고 상표 분쟁이 붙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 상표법은 외국 브랜드라도 먼저 중국에 상표 출원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부여되는 ‘선출원주의’를 적용한다. 그런데 이미 지난해 12월 구일은 중국에서 ‘불짬뽕’ 상표 출원을 마쳤으며, 심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팔도는 중국에서 불짬뽕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 특허청은 ‘불짬뽕’을 누구나 사용하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에 식별력이 없다고 판단, 개인의 상표 소유권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명 기업이름 삼양, 팔도 등을 결합하면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표로 인정한다. ‘농심 불짬뽕’, ‘오뚜기 불짬뽕’, ‘풀무원 불짬뽕’ 등 일반인이 구분 가능한 기업명과 결합하면 상표등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면 중국 상표등록은 심사기준이 한국과 다르다. 중국에서는 ‘한글’을 ‘문자’로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랍어를 봤을 때 읽을 수도 없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불짬뽕’ 또한 글자로 보지 않고 도형이나 그림으로 보기 때문에 상표 등록이 가능하단 얘기다. 전문가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구일 측에서 ‘불짬뽕’ 상표 소유권을 가져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특허법인 고려의 중국전문가 김태수 변리사는 CNB에 “한글 상표 ‘불짬뽕’을 중국 기업이 중국에서 상표권을 획득한다면, 팔도는 ‘불짬뽕’을 중국에 수출할 때 겉포장에 ‘불짬뽕’ 사용을 하지 못한다. 다만 상표 위치가 아니라 제품 뒷면에 조그맣게 ‘불짬뽕이다’라고 설명을 적는 것은 문제가 안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중국에는 한국 기업이 진출하기 전 한글 브랜드를 제품 포장 겉면에 사용한 짝퉁이 많다. 이런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중국 진출 계획이 있는 기업은 한글 브랜드의 중국 현지 상표등록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팔도 “현지 상황 몰랐다”
하지만 팔도 측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팔도는 중국 특허청에 불짬뽕과 관련된 상표 출원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다.
팔도 관계자는 “해외 수출을 위해서는 각 국가별 기준에 맞게 준비해야 한다. 아직 준비 단계이며, 중국에 삼양 불짬뽕이 판매되고 있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칫 팔도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현행법으로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중국 속지주의(자국법 우선) 원칙에 따라 ‘불짬뽕’을 가장 먼저 출원 한 구일이 팔도에 상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적인 권한을 행사할 경우, 현행법상으로는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도가 불짬뽕을 중국에 수출할 때 ‘불짬뽕’ 상표를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브랜드 네이밍’을 통해 불짬뽕을 알릴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브랜드 네이밍’은 우리 상표를 중국식 이름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한글은 소리의 표현을 1만1000여개 이상 낼 수 있지만, 중국어(한자)는 400여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중국어는 소리 나는 데로 ‘애플’을 표현할 수 있는 한자가 없다. 이 때문에 애플社는 중국어 브랜드 네이밍을 통해 ‘핑궈(苹果)’를 현지 기업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핑궈’는 직역하면 사과를 뜻하며, 애플社는 ‘사과’로 불리고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 네이밍의 성공 사례는 신세계 이마트를 꼽을 수 있다. 이마트는 중국식 이름으로 이마이더(易买得)를 사용하고 있는데, ‘쉽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 성공적인 브랜드 현지화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 해외협력팀 추형준 팀장은 CNB에 “중국에서 한글 상표 등록도 중요하지만, 결국 ‘브랜드 네이밍’이 관건이다. 한글 상표는 중국 소비자들이 그 상표에 대한 인지를 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어차피 중국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식음료·프랜차이즈 기업들은, 반드시 한글 상표와 함께 영문 또는 중국어 상표를 만드는 브랜드 네이밍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