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낮추자 제약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제약업계는 잦은 약가 인하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시민단체들은 ‘약가보다 리베이트 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CNB=김유림 기자)
제약사들 약값 인하에 볼멘소리
정부 “투명경영하면 해결될 일”
제약사-병원 먹이사슬 도마 위
보건복지부의 최근 ‘실거래가 약가인하’ 조치에 따라 214개 제약사 4655개 품목의 약가(약의 가격)가 평균 1.96% 인하된다. 정부는 매년 약가를 낮추겠다는 계획이어서 제약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의약품은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나뉜다.
전문의약품은 의료보험이 적용돼 62%를 정부에서 부담한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하는 항목이다 보니 가격 책정을 보건복지부가 전담하고 있다. 정부는 매년 보험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약가를 낮추고 있다.
‘실거래가 약가인하’는 실제 거래가를 파악해 매년 약가를 인하하는 제도다. 제약사로부터 약을 공급받은 의료기관(약국·병원)이 실제 거래가격을 당국에 신고하면 이를 기준으로 정부기준 약가가 책정된다. 이렇게 책정된 약가를 놓고 정부가 인하폭을 결정하고 있다.
제약사는 의료기관에 약을 공급할 때 정부가 정한 약가 이상을 받아선 안 된다. 기준 약가 이하로만 공급해야 한다.
따라서 겉으로만 보면 약가가 매년 내려가게 돼 제약사는 해가 갈수록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약사와 병원 간 뿌리깊은 먹이사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제약사가 기준약가 1000원짜리 의약품을 병원에 공급하면 병원은 당국(건강보험공단)에 1000원으로 신고한다. 당국은 이 중 건강보험수가인 620원(62%)을 제약사에 지급한다. 나머지 380원은 병원으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380원 전부를 받는 제약사는 드물다는 게 업게 정설이다. 380원 전부를 받은 뒤 그중 일부를 병원에 다시 돌려주거나, 아예 일정액을 차감하고 지급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경우든 사실상 리베이트에 해당된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매년 약가를 인하하더라도 제약사가 병원에 지급하는 리베이트를 줄이면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이번 약가인하를 두고 “투명한 유통구조를 통해 보험재정을 절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정부는 리베이트에 소요되는 비용에 비하면 약가인하폭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번 약가인하에서 디스그렌캅셀(명인제약), 플루메이트정(LG생명과학), 듀스틴정(삼진제약), 밤부톨정(일동제약) 등은 인하 폭이 1~2원에 불과했다.
제약사들 “싼 약값 해외 경쟁력 걸림돌”
하지만 제약사들은 정부의 매년 약값 인하로 인해 수익성 악화와 마케팅 전략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한다.
전문의약품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반복되는 약가 인하로 인해 장기적인 수익전략을 세우기가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부 제약사들은 “정부가 업계의 글로벌화를 막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 제약사가 해외시장에 약을 수출할 때 해당국의 수입 가격은 국내 약가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외국 수출 시 1000원을 받을 수 있는 약이 정부가 정한 국내 약가가 500원이기 때문에 가격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제약사들은 ‘실거래가 약가인하’ 주기를 2년 또는 3년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CNB에 “약가인하로 인한 매출 손실은 경영악화로 이어지고, 연구개발 투자를 하지 못하면 결실을 볼 수 없다”며 “특히 약을 수출할 때 가격 협상 시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단체는 약가인하를 두고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제약업계를 향해 “‘윤리경영’부터 실천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약품리베이트감시본부 관계자는 CNB에 “제약사들은 음성적으로 리베이트를 주고받으면서, 겉으로는 약가인하로 손해를 보고 있다며 앓는 소리를 한다”고 전했다.
의약품리베이트감시운동본부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3년 “제약사들의 불법 리베이트가 환자들의 약제비 부담을 증가시킨 셈”이라며 JW중외제약과 한국MSD, GSK등 제약사 5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해 패소하기도 했다.
당시 약제비 환급 소송을 진행한 법무법인 지향의 이은우 변호사는 CNB에 “제약사와 병원이 짜고 리베이트를 주고받으면서 실제 거래 가격보다 더 높은 것처럼 부풀리고, 그 약값을 환자가 부담했으니 돌려달라는 취지에서 소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보험공단이 제약사에 부담하는 약값은 국민의 세금이다. 국민 세금으로 회사 수익을 올린 뒤 이 돈으로 리베이트를 벌이고 있다. 결국 세금으로 리베이트를 벌이는 셈이므로 정부가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