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현대증권 매각에 나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사진자료=현대상선)
현대그룹의 사활이 달린 현대증권 매각이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증권업계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는 현대증권 인수전에 여섯 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면서 일단 매각에 파란불이 켜졌다.
현대증권 매각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현대그룹이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증권을 팔아 돌파구를 찾게 될지 주목된다. (CNB=이성호 기자)
현대그룹 주력계열사 현대상선 위기
알짜 현대증권 매각으로 유동성 확보
6개 금융사 입찰참여…인수전 파란불
글로벌 경기악화로 인한 해운업의 위기는 현대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저유가 기조로 인해 운임 연료비가 줄었지만 글로벌 해운시장이 4대 해운동맹(얼라이언스)으로 재편되면서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졌다.
글로벌 해운시장은 머스크와 MSC가 합작한 ‘2M’, CMA CGM·차이나쉬핑·UASC 등 3개의 선사가 설립한 ‘O3’, 또 현대상선이 속해 있는 ‘G6’과 ‘CKYHE’ 등 4대 해운동맹으로 판이 짜여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중대형 컨테이너 해운 4개사(CMA CGM, COSCO, Evergreen, OOCL)가 새로운 해운동맹 일명 ‘2CEO’ 형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투자증권 등에 따르면 얼라이언스가 형성되면 회원사들은 선박을 갹출해 노선을 구성하게 되며 각사 선박의 공간을 상호 교환해 사용하게 된다. 즉, 각 해운사는 서비스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운영하는 선박의 수를 줄일 수 있어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해운사들이 이합집산을 꾀하며 변모하고 있는 가운데, 문제는 초대형 선박이 없고 재무능력이 떨어지는 업체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운동맹 내에서 각 업체들이 선복량(하물적재 가능총량) 확대를 위해 초대형 선박 및 연비 효율이 높은 최신 선박 확보에 매진하고 있는데 현대상선 등 국내 해운사의 경우 선박 투자를 위한 재무여력이 없어 이 같은 글로벌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될 우려마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정은 회장, 현대상선 유독 ‘애착’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진자료=현대그룹)
현대상선의 지난해 말 기준 자본총계 대비 자본금 비율은 36.8%로 절반 이상인 63.2%의 자본잠식 상태를 보였다. 2014년 65.2%에서 반 토막 난 수치다.
부채 규모가 6조원 대에 달하고 있으며 당장 오는 4월과 7월에 약 5000억원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돌아오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현대그룹은 지난달 자구책을 발표하며 주력사인 현대상선 살리기에 나섰다.
2013년 12월에 마련한 3조3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를 골자로 한 선제적 자구안을 발표한 후 2년여 만에 목표치 대부분을 이행했지만 좀체 살아나지 않는 해운업황 등으로 인해 기존 자구방안만으로는 유동성 위기를 해소할 수 없다며 추가 자구안을 내놓은 것.
현대상선이 보유중인 현대증권 지분 담보대출과 현대아산 지분 매각으로 700억원을 조달하는 등을 통해 현대상선에 1000억원의 긴급 유동성을 즉각 공급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현정은 회장이 별도로 3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한 데 이어 현대상선 팀장 이상 간부들도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결사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백훈 현대상선 대표는 지난달 26일 전체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저를 비롯한 현대상선 임원, 팀장 등 간부급 사원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현재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향후 거취와 처우 일체를 이사회에 맡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백의종군의 심정으로 자구노력 이행을 통해 회사의 조속한 정상화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으로, 임직원들이 사즉생의 각오로 자구안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현대그룹, 줄이고 팔고…부채 줄이기 ‘사활’
현대상선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가로 시집오기 전 아버지가 창업한 기업으로, 현 회장의 애착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자구책으로 자산매각은 물론 용선료 삭감과 채무 재조정에 나서고 있는데 무엇보다 자구안의 핵심은 현대증권 재매각 추진이다. 지난해 오릭스 프라이빗에쿼티로의 매각이 추진됐으나 일본계 자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 부담 등이 영향을 끼치면서 무산된 바 있고 이번에 재도전에 나선 것이다.
현대증권의 최대주주인 현대상선은 자구 계획에 따라 신탁회사들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현대증권 보통주식(5307만736주, 22.43%) 및 기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보통주(30만9674주, 0.13%) 등 총 5338만410주(22.56%)의 지분을 매각키로 했다.
인수의향서 접수결과 한국금융지주, KB금융지주가 먼저 달려들었다. 앞서 대형 매물이었던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미래에셋에게 밀려 고배를 마신 한국금융 및 KB금융이 각기 현대증권을 품에 안을 경우 거대 증권사로의 도약이 가능해진다.
이들 지주사 외에도 파인스트리트·LK투자파트너스·글로벌원자산운용·액티스 등 국내외 사모펀드 4곳도 현대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 양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증권은 자기자본 3조원이 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체로 지난해 순이익 2790억원을 기록해 2014년 대비 646% 증가한 우량 회사다.
관건은 인수 가격인데 일단 키는 현대그룹의 현대엘리베이터가 쥐고 있다. 하나금융투자 등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지난해 1월·11월 현대증권 지분 22.4%를 담보로 각각 327억원(2.6% 지분 담보)과 1392억원(19.8% 지분 담보)을 차입하면서,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지분을 매각할 경우 해당 지분에 대해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권리를 부여했다.
현대상선이 보유 지분 22.4%를 담보로 조달한 금액은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여금 1719억원과 3개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조달한 2500억원 등 총 4219억원으로 알려졌다. 즉,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증권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함에 따라 현대증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현대엘리베이터가 제시한 기준가격보다 높게 입찰가를 제시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지난해 오릭스와 체결했던 매매계약 수준이 6500억원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현대그룹 측에서는 현대증권 매각 기준가를 6500억원 이상에서 7000억원대 수준으로 부르지 않겠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입찰자들이 기준가보다 적은 금액을 적어낼 경우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전에 불이 붙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메리트가 높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매각 금액인 2조원 대보다 낮은 가격으로 우량 증권사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기에 향후 누구의 손에 현대증권이 쥐어지게 될지 뜨거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3일 CNB에 “매각 주관사에서 현대증권 매각을 진행하고 있는데 당초 예상보다 많은 인수후보자가 나타나 충분한 실사기간이 필요하다”며 “정확한 일정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실사를 마치고 오는 24일경 본입찰을 개시, 5월 쯤 매각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준가에 대해선 노코멘트라면서도 “유동성 및 재무개선 효과 때문에 알짜기업을 매각하고 있는 상태라 얼마가 적정선이라고 제시되기보다는 부채비율 감소가 나타나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