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 우리은행장이 민영화를 위한 지분 매각을 위해 내달 유럽 등지에서 투자설명회(IR)를 열 예정으로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자료=우리은행)
우리은행의 숙원인 민영화를 위해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직접 해외에서 투자자 모집에 나설 예정이라 눈길을 모은다.
이 행장은 내달 전세계 투자자들이 집중돼 있는 영국, 독일을 비롯해 싱가포르 등에서 투자설명회(IR)를 개최할 계획이다. 번번이 실패로 끝난 15년 매각 역사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까. (CNB=이성호 기자)
과점주주 매각방식 국내기업들 외면
저유가로 중동 투자자 주머니 ‘홀쭉’
마지막 희망은 유럽…사활건 이 행장
우리은행 관계자는 13일 CNB에 “아직 날짜가 확정된 건 아니지만 오는 2월 초 실적발표가 끝나는 대로 이광구 행장이 직접 영국·독일 등 유럽과 싱가포르에서 IR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적개선을 무기로 CEO가 직접 해외 투자자들에게 우리은행의 매력을 어필하겠다는 것.
우리은행의 지난해 3분기 순이익은 전분기 대비 43% 증가한 323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한해 3분기까지 누적은 8402억원으로 2014년 동기 대비 40.43%(2419억원)나 늘어났다. 다음 달 발표될 4분기 실적을 더하면 지난해 총 순이익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산건전성 관련 지표도 좋아지고 있다.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2013년 2.99%, 2014년 2.10%에서 2015년 말 기준 1% 중반까지 떨어졌다. 2조원 수준이던 대손비용도 1조원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은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우리은행을 소개하고 나아진 재무실적을 보여주면서 특히 현재 민영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방침”이라며 “관심을 이끌어내 가급적 많은 잠재적 투자후보군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기업설명은 IR부서에서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임기 내 민영화를 완수하겠다는 이 행장의 강한 의지가 적극적인 행보로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CEO가 직접 나서 “우리은행에 투자해도 좋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우리은행의 민영화 도전은 이번이 5번째다. 지난 2001년 3월 예금보험공사(이하)는 우리금융지주에 12조8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지원, 지분 100%를 취득했다.
금융당국은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키 위해 2010년부터 4차례에 걸쳐 우리은행 매각을 시도했었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데다 입찰 참여율이 저조해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는 등 여러 곡절을 겪으며 무산된 바 있다.
그동안 예보는 지분 매각·배당 등을 통해 공적자금을 일부 회수, 현재 우리은행 지분 51.04%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우리은행 민영화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5번째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기존의 경영권 지분 매각뿐만 아니라 ‘과점주주 방식’을 새로 도입했다. 은행 업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고 덩치가 큰 만큼 일괄매각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매각 대상은 2014년 우리은행 소수 지분 매각 때 투자자에게 부여된 콜옵션 행사 대비분 2.97%를 제외한 48.07%다. 30%~40% 지분을 묶어서 파는 경영권 지분 매각방식을 유지하되, 4%~10%씩 지분을 나눠 팔아 소수의 주요 주주가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 각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지배구조인 과점주주 매각방식을 병행 추진키로 한 것.
전략은 예보의 보유 지분을 과점주주 형성을 위해 매각하고, 잔여 지분인 최대 18.07%는 주가가 오르면 시장상황을 보면서 팔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1일 강원도 평창 대관령 소재 선자령 정상에서 우리은행 이광구 은행장(사진 앞줄 가운데)과 임직원 117명이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며 신년결의를 다지고 있다. (사진제공=우리은행)
유럽·중동 ‘두 마리 토끼’ 잡을까
문제는 이처럼 쪼개서 팔게 되면 경영권 메리트가 없어진다는 점. 특정 지배주주가 없음에 따라 경영권을 보장 받을 수 없기에 국내에서는 수요처를 찾기 힘든 모양새다.
이처럼 매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주가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주당 1만3500원은 돼야 투입된 공적자금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데, 2006년 2만원대 초반이던 주가는 현재 8000원대로 주저앉았다. 이대로라면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정부의 매각방침은 먼 나라 얘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고 수익성만을 따지며 우리은행에 눈독을 들여온 중동 투자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이마저도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중동 산유국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 행장이 유럽행에 나선 것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간 관심을 보여 온 아부다비투자공사(ADIC) 등 중동 지역 국부펀드와 우리은행 간의 매각협상이 지지부진해진 탓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우리은행으로서는 절박한 상황이 됐다.
지난 2014년 이 행장을 행장 자리에 앉혔던 ‘우리은행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는 “이광구 후보가 은행업 전반에 대한 폭 넓은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최대 현안인 민영화와 우리은행 경쟁력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올해 말로 임기가 끝나는 이 행장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처지다. 올해를 민영화 완수의 원년으로 삼았다.
금융업계에서는 이 행장이 전면에 나서 IR을 진행하는데 ‘2가지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우리은행이 유럽 등에서의 IR을 통해 해외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 여러 후보군이 포섭된다면, 칼자루를 거머쥐고 단기투자를 노리는 헤지펀드들로부터 자유로워 질수 있다. 국부펀드나 장기 배당성향을 가진 사모펀드 등을 놓고 저울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복지부동하던 중동 쪽을 자극할 수 있다. 중동 투자자들이 주판알을 튕기는 사이에 다른 곳에서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하면 주가가 뛰기 시작해 늦장부릴 여유가 없게 된다. 한마디로 새로운 투자자를 모색하면서 중동 쪽을 자극하려는 ‘두 마리 토끼’ 전략으로 풀이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CNB에 “유럽이나 싱가포르가 우리은행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번 기회에 투자가치가 있는 은행이라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투자자 발굴이 잘 이뤄져 민영화에 가시적인 성과가 있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