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하기
  •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 오탈자제보

[뉴스토리] 재계 오너들, 정초에 직원들과 산에 가는 이유

하이브리드 리더십? 무리한 새해 산행 “왜”

  •  

cnbnews 도기천기자 |  2016.01.09 08:49:25

▲새해 시무식을 대신해 산행으로 ‘소통 경영’에 나선 기업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KEB하나은행, 아시아나항공, 우리은행, 삼성생명의 신년 등반행사 모습. (사진=각 기업 제공)

올해도 어김없이 산행으로 시무식을 대신하는 기업들이 화제다. 한파에도 불구하고 수백명이 함께 정상에 오르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기업문화가 집단중심에서 개인중심으로 바뀌면서 과거에 비해 단체 산행이 줄고 있는 추세지만, 반대로 불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산행으로 표출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단체 산행에는 ‘스킨십 경영’의 긍정론과 ‘강제동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공존한다. 겨울산행은 혈관을 급격히 수축시키기 때문에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실제 사고도 잇따르고 있지만 기업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기업 단체산행, 스킨십·강제성 ‘동전의 양면’
오너-직원 함께 산 오르며 위기극복 ‘소통’ 
전문가들 “겨울산행 위험…다른 방식 찾아야”

CNB가 최근 몇 년 동안의 기사를 검색해보니, 새해 시무식을 산행으로 대체하는 기업의 수는 줄고 있는 추세였다. 과거에는 여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보도자료를 뿌리며 단체산행 소식을 알렸지만, 현재는 대략 20여개 기업의 산행 소식이 검색되는 정도다.  
  
산행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해마다 이맘때면 거르지 않고 각 계열사별로 산행을 실시하고 있다. 2일엔 금호고속, 3일엔 아시아나항공 임직원과 서울 근교의 산에 올랐다. 1월 한 달간 매주 토‧일요일 계열사 임직원들과의 산행이 잡혀있다. 산행에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팀장급 이상 간부, 신입사원들이 동참한다. 자발적으로 산을 오르겠다는 직원들도 함께 한다.

특히 올해는 그룹이 창립 70주년을 맞는데다 6년 만에 모(母)기업인 금호산업을 되찾은 만큼, 1946년 택시 2대로 창업한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금호아시아나를 만들겠다는 ‘창업초심(創業初心)’을 화두로 내세웠다. 박 회장은 올해 72세의 고령임에도 매년 선봉에 서서 산을 오르고 있다. 

금융사들도 산행에 열심이다. 특히 외환은행과의 통합을 이룬 하나금융그룹이 가장 적극적이다. 하나금융은 매년 거르지 않고 산행으로 새해를 열고 있다.

▲기업들의 단체 산행은 주로 휴일에 진행되다보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회사업무의 연장이 될 수도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회사 단체 등반 중 숨진 김모 차장이 산행 직전에 형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지리산 천왕봉에 끌려간다’ 등 마지못해 참여하는 심경을 담고 있다.

지난해 외환은행과의 전격통합을 이끌어 내는 데 산행 소통이 크게 한몫했다. 단체 등산과 함께 북한산 둘레길 걷기, 비전캠프 등 잇단 임직원 행사를 통해 하나와 외환 간 이질감이 많이 극복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올해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을 비롯, 700여명의 임직원이 새해 첫날 약 3시간 동안 산을 오르며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하나-외환 양행 간 전산이 합쳐지는 통합 원년의 첫 산행이었다. 

민영화라는 최대 난제를 맞닥뜨린 우리은행의 올해 산행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은행은 1일 강원도 평창 대관령 선자령에서 임직원 117명이 참석한 신년맞이 결의 행사를 열었다. 등반자를 117명으로 정한 것은 올해가 창립 117년 되는 해기 때문. 참가자들은 무박 2일 일정으로 야간 눈길산행을 강행한 뒤 선자령 정상에서 일출을 맞았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산에 올라 “성공적인 민영화를 통해 종합금융그룹으로 재도약하는 한해로 만들자. 임직원 모두 강한 은행을 만들기 위해 각자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춰 달라”고 주문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4차례의 우리은행 매각 실패를 거듭하자, 과점주주 매각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삼성생명은 새해 첫날 김창수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120여명이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위치한 삼성산에 올라 신년 각오를 다졌다. ‘질적 성장을 통한 회사가치 극대화’를 새해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무려 7.2km 구간을 등반했다. 핀테크, 경기침체 등으로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데 따른 위기감의 발로였다.

김 사장은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고난을 극복해 목적지에 도달한다)의 한 해가 되자”고 강조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해외점포를 과감히 정리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통폐합을 단행했으며, 휴직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해 인력을 줄이는 등 사실상 위기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치킨업계 오너들도 산 사랑이 각별하다. 제너시스BBQ 윤홍근 회장은 지난 4일 전직원과 함께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설봉산에 올랐다. 교촌F&B(교촌치킨) 권원강 회장 역시 이날 전직원과 함께 시무식을 대신해 태백산행을 택했다. 굽네치킨 홍경호 회장은 팀장급 이상 임직원 20여명과 함께 지난 6일 대전에 위치한 계룡산에 올랐다. 이들은 해마다 ‘등산 시무식’을 이어가고 있다.

팀워크 다지는데 등산이 최고?

기업들의 단체 산행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다. 스킨십을 통한 인화단결이라는 긍정론과 ‘강제성’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함께한다. 주로 휴일이나 주말에 등반이 진행되다보니 직원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회사업무의 연장이 될 수도 있다.

또 겨울철 산행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보그룹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직원 단합 및 체력 강화를 위해 지리산 등산행사를 벌였는데 등산을 시작한지 4시간여 만에 김모 차장이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경찰 등은 사인을 심근경색(심장마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가족과 김 차장의 동료들은 무리한 산행이 사고를 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전남 광양시 국가산단 입주기업인 라파즈한라시멘트 소속 직원 김모씨가 회사 공식 일정에 따라 산행 도중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추운 겨울엔 되도록이면 산행을 피할 것을 조언한다. 기온이 낮아지면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오르면서 심장이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3년간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14건 가운데 9건은 심장 돌연사였다.

▲전문가들은 기온이 낮아지면 혈관이 수축해 심장이 압박을 받기 때문에 겨울엔 되도록이면 산행을 피할 것을 조언한다. 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가 지난달 24일 등반 도중 골절상을 입은 등산객을 헬기로 이송하고 있다. (사진=119 특수구조단 제공)

그럼에도 기업들이 산행을 멈추지 않는 것은 팀워크을 다지는데 등산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함께 고통을 견디며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동료애와 애사심이 커진다. 정상에 서면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한편으로는 하이브리드(Hybrid) 경영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기와 휘발유를 연료로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유래된 이 경영기법은 전혀 다른 성격의 개인들을 융화시키는 리더십을 이른다. 학연이나 지연, 획일화된 조직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다.

특히 지난해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 등 삼성계열사 4곳의 한화그룹 편입, 롯데의 삼성SDI의 케미컬 부문 합병,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굵직한 통폐합·인수합병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기업문화들이 섞이면서 하이브리드 경영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고, 이를 실현하는 도구로 ‘단체 산행’이 선택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기업 CEO출신의 한 인사는 “소통에 주력해 하나-외환은행 간 조기통합이라는 열매를 맺은 하나금융의 사례가 대표적”이라며 “예전에는 산행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 들어서는 콘서트, 신년음악회, 세뱃돈 행사, 부부동반 둘레길 걷기 등 오너와 임직원이 마주보는 소통경영 행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