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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식족이지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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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16.01.05 17:59:01

전자책이 익숙한 시대가 됐지만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느낌·가독성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책 특유의 냄새도 좋지만 손때가 묻은 구수한 헌 책의 향내에 더 깊이 정신을 홀린다.

깨끗한 인테리어로 외관을 자랑하며 분류별로 도서들을 찾기 쉽게 딱딱 배치한 대형 중고서점보다 왠지 허름하고 어지러이 책들이 쌓여 있는 동네 헌책방에 애착이 간다.

처음으로 발을 들인 헌책방에는 책들이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 정도로 빽빽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원하는 서적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골라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무심해 보이는 책방 주인에게 원하는 책을 말하면 신기하게도 쉬이 찾아준다. 정리 안 된 듯 보이지만 주인 나름대로 정한 질서 아래 진열돼 있는 헌책방 구조를 이해하려면 몇 번을 들락거려야 한다. 단골이 된 후에야 어느 위치에 어떤 책이 새로 들어와 놓여 있는지 단번에 파악하는 수준이 된다.

헌책방 안에서 여기 저기 둘러보며 예전에 재밌게 읽었거나 보고 싶었던 책을 발견하는 희열에 어느덧 중독된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전에 없던 인연이 만들어지고 교감을 갖는다. 찾아내는 즐거움에 더해 좋은 가격에 원하는 서적을 속칭 ‘득템’까지 할 수 있다면 기쁨은 배가된다.

서두가 길었다. 최근 구비한 도서에서 관포지교로 잘 알려진 관중의 이야기를 읽다가 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전달자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관중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환공을 도와 부국강병을 이끈 위인이다. 여러 이웃 나라들이 난립하고 영토를 침범해오는 시대에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강조한 것이 ‘의식족이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이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것. 즉 백성들의 배가 굶주려 있는데 예와 법을 논하면 무엇하겠냐는 뜻이다. 막대한 군비 충당을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둬들일 생각보다 상업을 장려하는 등 먼저 베풀어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면 나라 또한 부강해진다는 것.

현재 시점으로 돌려 2016년 대한민국은 이른바 ‘헬조선’이다.

일자리는 없고 국민들은 빚에 허덕인다. 가계부채는 1200조 원으로 불어났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부동산 대출규제를 완화해 빚내서 집을 사라고 권할 땐 언제고 가계부채가 늘어나자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어느새 만연된 책임 회피주의가 팽배하다. 

올해도 경제 전망은 비관적이다. 주요 연구기관들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었던 2015년보다 더 안 좋아지고, 한국 경제도 지난해보다 성장률이 떨어져 2%대에 머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먹고 살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 앞에 정치권에서 민생은 뒷전이다. 국회에는 산적한 민생 관련 법안이 고이 모셔져 있다. 입법 기능은 마비된 지 오래다. 본인의 안위를 결정짓는 4월 총선만이 눈앞에 드리워 있는 듯하다.

새해 벽두부터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공통교육 과정) 예산 미편성으로 ‘보육대란’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민생이 화두에 올라야 한다. 민생을 저버린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민심을 저버리면 반드시 역풍을 맞게 돼 있다. 저마다 국민들을 위한다며 감언이설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행은 요원하다. 시위소찬(尸位素餐), 높은 자리에 앉아 책임은 다하지 않고 녹만 먹고 있다. 

배반의 정치가 한동안 회자됐었다. 하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다. 볼썽 사나운 이전투구를 지양하고 민생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는 부탁이 아니다. 국민들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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