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석기자 | 2015.12.29 09:04:36
대륙침략을 위해 기획된 조선의 남북축 국토계획
일본은 1876년부터 1910년 사이에 부산과 인천, 원산, 목포, 군산, 청진, 신의주 등 11개 항구를 개항해 침탈의 거점을 확보한다. 이어 36년간 38개항을 수축한다. 이들 항만 중 나진항은 특기할 만하다. 나진은 성진, 청진과 더불어 일본의 대륙침투루트, 즉 북선루트의 거점으로 일본의 니가타와 마이즈루를 기점으로 동해를 횡단해 나진, 웅기를 거쳐 거쳐 만주로 들어가는 노선이다.
앞서 일제는 대륙침략을 위해 동래가 아닌 부산을 기점으로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철도노선을 완성한다. 이어 호남선과 경원선, 함경선 등을 잇달아 완공하면서 식민통치를 위한 남북종단 X자형 국토구조의 기초를 다진다.
일제의 대륙침략루트는 크게 세 개로 구성된다.
하나는 시모노세키~부산~서울~신의주~심양을 연결하는 중앙루트이고, 둘째는 오사카~세토나이카이~부산~목포~인천~다사도~천진~청도에 이르는 황해발해루트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마이즈루와 니카타~동해~나진~동북만주를 잇은 북선루트다.
한반도의 철도와 도로는 이 세 개의 루트로 배치됐다. 국토의 균형개발을 중심으로 한 계획과는 관계없이 일본과 중국 대륙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신작로 역시 민란이나 폭동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진압할 군대나 경찰, 헌병을 신속히 투입할 수 있는 차선을 확보하기 위한 치안유지용에 불과했다. 일제는 통치 36년간 2만 5500㎞에 이르는 신작로를 건설했다.
이러한 남북종단 X자형 국토구조는, 해방 이후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한 경제발전을 이끌게 됐고, 결과적으로 동서축 개발을 더디게 하는 원인이 됐다. 이런 결과 서남해안과 동해안, 특히 강원도가 개발에서 제외되는 결과로 작용했다.
일제의 남북축 국토계획의 배경에는 수도이전 구상도 영향을 미쳤다.
일제는 1920년대 평양천도론을 시작으로 1930년 경성천도론에 이어 1940년대 국토계획으로 수도이전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게 된다. 수도이전 후보지 중 한 곳은 당시 조선의 경성부로,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김포지구와 남한산성에서 용인에 이르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외 오카야마현 오쿠군 미유키촌 중심지구와 후쿠오카현 야메군 후쿠시마정 중심지구 세 곳이 후보지였다.
하지만 현재도 이러한 남북축 중심의 국토계획은 여전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8월 5일 백마고지역에서 경원선의 남측 구간이 백마고지~남방한계선 11.7㎞를 복원하기 위한 기공식을 갖고 착공에 들어갔다. 경원선 복원은 통일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현의 출발이라는 의미가 있다. 경원선은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최단노선으로, 현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실현하는 핵심 노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남측 구간을 백마고지역에서 월정역까지를 우선 연결하고 북한과의 협상 등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나머지 구간을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경원선은 북방의 물자를 일본과 서울로 반출하기 위해 1914년에 부설한, 용산~철원~원산에 이르는 223.7㎞의 철도다.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미군정의 국토관리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동량 수송을 위한 새로운 수송시설로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한다. 1967년 3월 서울~인천간 고속도로를 착공한 데 이어 1968년 2월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을 갖는다. 개국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인 경부고속도로는 착공한 지 2년 5개월만인 1970년 7월 7일 준공됐다.
경부고속도로는 당시 우리나라 인구 63%와 GNP 66%, 공업생산액 81%를 차지하는 한강 경제권과 낙동강 경제권을 연결하면서 국민경제를 부흥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최초의 공업도시인 울산과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경부축은 국부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한다. 시쳇말로, ‘배부른 대한민국’을 가능케 한 것이다.
앞서 미군정은 1947년 7월 제천~풍기간 전철공사를 완공한 데 이어 서울~강릉간 횡단도로와 함께 서울~부산간 국도 보수공사를 착수한 바 있다.
남북축 중심의 국토계획의 최대 피해지역 강원도
하지만 남북축 구조인 경부축 개발은 동서축 구조의 약화로 이어지고, 이는 곧 서남해안과 동해안, 특히 강원도의 발전전략이 지연되는 결과로 작용하게 된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으로 영동고속도로 건설과 태백권의 무연탄을 신속하게 운반하기 위해 정선~나전간 태백선을 비롯해 북평~묵호간 영동선 복선, 나진~여량간 정선선 등 산업철도가 개통됐다.
또 수도권 공업지역의 부족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춘천댐, 의암댐, 소양댐이 건설됐고, 춘천 후평공업단지, 원주 우산산업공업단지가 들어섰다.
하지만 당시 도내 공업화율은 9.2%로, 전국 평균 20.3%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1976)에는 격차가 더 커져, 도내 공업화율(8.6%)은 전국 공업화율(26.9%)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런 상황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속초간 동서고속화철도 사업도 그중 한 사례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서울~속초간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4년 4월부터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중으로, 지난 9월 첫 점검회의를 개최한 이후 검토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춘천~속초간 93.95㎞ 구간을 단선으로 연결하는 서울~속초 동서고속화 철도 건설사업은 사업비만 2조 2114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강원도는 서울~속초간 동서고속화철도 개통으로 북극항로, 대륙횡단 철도를 잇는 유라시아 물류의 거점 인프라가 마련되고, 수도권을 연결하는 철도망이 구축돼 낙후지역의 상생발전과 관광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한국교통연구원을 통해 서울~속초철도 대안노선 활성화 방안 연구용역을 시행해 이미 경제성을 확보(B/C 0.97)했으나 현재 기획재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중간보고회를 미루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제주신공항 건설과 서울-세종 고속도로 착공 등을 발표하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동서축 중심 해양지향형으로 '등 따신 대한민국' 만들어야
남북축 중심의 경부축 경제개발로 '배부른 대한민국'을 만든 서울을 비롯한 인천과 부산, 대구지역은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면서 국토균형발전 차원의 재편을 요구받고 있다. 동시에 동서축 중심의 환동해권 경제개발을 통한 '등 따신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新 지중해로 불리는 환동해경제권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그리고 북한의 경제-핵 병진노선과 함께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로 새로운 경제시장의 선점을 노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철도와 도로, 항만 등 인프라 구축을 중심으로 국가차원의 투자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일본도 그간 관망하던 것과는 달리 직접 투자로 입장이 급선회했다. 몽골 역시 동북아경제권에 참여하기 위해 주변국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동북아의 변화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연해주 자유항 지정으로 선점효과를 노리고 있다.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창했으나 이렇다 할 계획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북아지역의 국가전략은 중국이 포문을 열었다. 육상을 잇는 일대(一帶)와 해상을 잇는 일로(一路)를 통해 러시아, 한국, 일본 등 주변국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겠다는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이 그것이다. 세계 각국의 국가전략을 프로젝트 안에 끌어들여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브릭스개발은행인 NDB(New Development Bank)도 일대일로 정책의 하나다.
러시아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남북러 간 복합물류운송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중국의 동해출항을 저지하려는 러시아의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2011년 훈춘~나진항 고속도로를 개설했다. 이어 2013년 러시아와 중국은 하산과 훈춘을 잇는 중·러 국경철도를 재개통해 북·중·러 간 접경지역 도로·철도망을 구축했다.
러시아는 연해주 자유항 지정과 함께 아태지역 중계무역 중심지로 기능을 재편하고 있다.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통관을 간소화하는 게 핵심으로, 연해주의 물류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역내 국가들과 교역을 확대하고, 지역산업발전을 촉진해 향후 극동 러시아경제를 아태지역 경제권역으로 통합한다는 전략이다.
21세기 경제조류가 변하고 있다. 남북축 중심의 대륙지향형 국토계획과 병행해 동서축 중심의 해양지향형 국토계획으로 새로운 국부를 창출해야 한다. 부산과 서울~인천을 연결하는 경부축과 함께 속초와 인천을 연결하고, 여기에 속초와 부산을 연계하는 새로운 경제개발전략이 필요하다. 21세기 새로운 경제환경에서 '속초는 인천의 미래'가 돼야 한다.
강원발전연구원 김재진 부연구위원은 "북방시대 물류수송의 핵심은 북극해 및 극동 러시아 지역의 자원을 국내로 유입해 이를 가공수출하는 물류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국가물류 수송능력은 60%가 국토의 남쪽에 치우친 불균형 상태로 북방시대 물류수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국토의 북쪽을 중심으로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및 물류지원시설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최근의 우리나라 북쪽에서 벌어지는 러시아와 중국의 물류수송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더 이상 남의 집 일로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북방물류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 강원도의 교통물류 및 물류지원시설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도로·철도·항만·공항·물류기지 등을 모두 총괄하는 종합교통물류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