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을 자유항으로 지정했다. 러시아의 시선이 유럽에서 극동아시아로 이동한 결과다. 이는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동북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동북아는 경제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터인 동시에 세계 정치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 간 힘겨루기 현장이 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철도와 도로, 항만 등 인프라 구축을 중심으로 국가차원의 투자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일본도 그간 관망하던 것과는 달리 직접 투자로 입장이 급선회했다. 몽골 역시 동북아경제권에 참여하기 위해 주변국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국가차원의 전략이 부재한 가운데 강원도가 동북아경제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자유항 지정과 관련해 동북아의 환경변화와 강원도 차원의 대응전략을 중심으로 3회에 걸쳐 살펴본다.
◆ 글 싣는 순서
1. 러시아 자유항 지정, 중국 경제력과 미국 군사력 저지로 동북아 패권 노린다
2. 커지는 동북아 시장,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3. 러시아 자유항 지정과 강원도의 대응방안과 문제점
新 지중해로 불리는 환동해경제의 성장세에 주목한 동북아 주변국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그리고 북한의 경제-핵 병진노선과 함께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로 새로운 경제시장의 선점을 노리고 있다.
국가별 전략 중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은 신실크로드 경제벨트와 해상 실크로드의 통칭으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통한 신규 투자수요를 창출하고 중국 중서부 지역 개발을 통한 신 성장거점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극동바이칼 지역의 사회경제발전 계획으로,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유라시아 경제연합(EEU) 결성 등을 통해 아태지역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신실크로드 전략은 아프가니스탄의 정세 안정을 위해 주변국가인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과 인도, 파키스탄 등과 물리적 연계성을 확보해 통상과 교류 등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의 전략은 중앙아시아와 일본 다이얼로그로, 중앙아시아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농업, 방재, 여성의 역할 확대, 마약 대책, 국경관리,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군축과 비확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 역시 중앙아시아 5개국과 정무·안보를 비롯해 에너지와 자원, 보건과 교육 및 문화, 인적교류, 정보통신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 전략을 추진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으나 유라시아 대륙을 단일한 경제공동체로 묶어 경제 활성화의 기반을 만들고,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 기장을 완화하는 한편 유라시아를 평화의 대륙으로 구축하는 방안이다.
동북아 주변국 중 중국의 움직임은 단연 돋보인다.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과 주변국간 협력을 위한 세부추진 방안으로 5통(通)을 실행하고 있다.
5통이란 정책소통, 기반시설연통, 무역창통, 자금융통, 민심상통으로,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유럽의 신유럽투자계획, 인도네시아의 글로벌 해양거점 전략, 카자흐스탄의 광명대도 등 인접국의 인프라 개발계획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계속해서 제안하고 있다.
특히 판(板. plate)과 벨트가 결합하는 지역발전 전략을 추진중으로, 동중서(東中西)와 동북이라는 4대 판 전략과 함께 일대일로, 베이징-톈진-허베이의 약칭인 징진지(京津冀) 협력발전, 창장(長江) 경제지대 3대전략 등 3개 지지벨트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동북지역 지방정부들은 최근 북한과 중국, 러시아, 몽골 등 4개국간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 동해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북극해 항로 개척을 추진하는 계획 등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결과 중국 지린성 훈춘시는 북한 나선특별시와 러시아 프리모르시키시와 더불어 지방정부 차원의 프로젝트 추진 실무협의를 거쳐 두만강 삼각주 국제관광합작구를 공동으로 건설하는 데 합의하고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두만강 삼각주 국제관광합작구는 관광캠프장, 리조트와 민속촌, 국제면세점 등을 갖추게 되며, 무비자 왕래가 가능하고 면세 등을 통해 국가간 인문교류와 함께 무역거래가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북한 나선특별시와 러시아 하산간 철도 54㎞ 구간을 잇는 나진-하산 프로젝트 추진으로 나진항과 시베이아 횡단철도(TSR)를 연계하는 유라시아 복합물류 운송사업의 첫발을 떼기도 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나진항 개항을 위해 국경통과 절차를 간소화하는 한편 항만국제화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나진항을 통해 러시아산 석탄을 중국 동남부로 시범수출하는 등 의미있는 결과를 이뤄가고 있다.
러시아 푸틴대통령은 지난 7월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정에 서명하면서 주변국들을 놀라게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은 연방법을 근거로 기업 활동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다양한 지원과 특혜를 부여하는 것으로, 연해주의 지리적, 경제적 장점인 물류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이 기본 골자다. 홍콩, 싱가포르와 유사한 자유무역지대가 모델로, 대상구역은 연해주 중심의 항만과 육로 등 국경 인근도시다. 별도의 특구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하는 도시 전체에 적용하는 개념이다.
무엇보다 통관 간소화를 통해 얻어지는 특혜로 연해주 중심으로 아태지역의 물동량 유치를 확대하고 선도개발구역 생산제품 수출 인프라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선도개발구역에서 생산제품의 부자재 반입 또한 완제품을 수출하는데 무관세 통관을 적용해준다는 의미다. 향후 극동 러시아경제를 아태지역 경제권역으로 통합하는 데 있어 역내 국가들과 교역확대 및 지역산업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1862년부터 1909년까지 자유항이었던 곳으로, 소련시대는 태평양함대의 사령부가 설치돼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무역항의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올해 자유항으로 지정되면서 106년 만에 부활했다.
러시아는 2012년 5월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현재 극동지역개발은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2014년부터 극동개발의 핵심이 되는 정책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
현재 극동연방관구 전권대표인 유리 트루드네프와 극동개발부 장관인 알렉산드르 갈루시카의 지휘 아래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민간자본, 특히 외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극동한정의 새로운 경제특구를 비롯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주변의 자유항 지정, 국민들에게 극동의 유휴지 1헥타르(3000평)를 무상으로 공여하는 제도를 만드는 등 러시아의 동방이동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18일 러시아연방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국방안보 분야를 총괄하는 드미트리 로고진 부총리와 극동개발을 총괄하는 유리 트루트네프 부총리를 비롯한 교육, 국방, 에너지, 극동개발 등 주요 정부부처 수장들과 함께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방문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연해주 발쇼이카멘 지역에서 건설 중인 즈베즈다 조선소 건설현장을 직접 시찰한 데 이어 극동러시아 개발전략과 관련해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강행군을 펼쳤다.
지난 2012년부터 연해주 발쇼이카멘 지역에 건설 중인 즈베즈다 조선소는 특수선, 유전시추 플랫폼 등 신조뿐 아니라 기술연구개발, 인력교육센터 등 관련 인프라 건설을 목표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향후 즈베즈다 조선소를 국가적 차원에서 최첨단 조선 클러스터로 발전시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각종 상용화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연방 뿐만 아니라 아태지역의 조선 관련 산업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급변하는 동북아 경제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응전략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0월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함께 우리 정부의 3대 대외 구상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 물류·교통·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통한 단일시장 실현을 목표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실현하고 북극항로를 통한 유라시아 동쪽 끝과 해양을 연결하는 에너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그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한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러시아나 중국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남북간 철도 및 육상교통로를 개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이후 현재까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은 채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강원도와 부산특별시 등 지방정부 차원의 교류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강원도는 속초항과 중국 훈춘시, 러시아 자루비노항 등을 연결하는 백두산 관광을 재개하기 위해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
현재 강원도는 정부 차원에서 GTI 지역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선점을 위한 장기개발 전략을 추진하기를 바라고 있다. GTI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모두가 대륙국가로 가는 전략으로, 중앙정부와 강원도가 지혜를 모아 중국의 창지투개발계획과 같은 실현가능한 프로젝트를 개발해 국가적 차원에서 집중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GTI(Greater Tumen Initiative.광역두만개발계획)는 UNDP(유엔개발계획)가 후원하는 다국간지역 개발협력사업으로, 개발사업의 대상은 중국의 동북3성 및 내몽골, 몽골의 동부지역, 러시아 연해주, 우리나라 동해안지역에 위치한 강원도와 경북, 울산, 부산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 자유항 지정에 따른 국내 기업의 진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이상목 국제경제과장은 지난 17일 열린 러시아 연해주 자유항 지정에 따른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입주하는 기업은 세제, 고용, 행정 등 특혜를 제공받기 때문에 연해주지역에서 블라디보스톡 자유항 제도를 활용한 우리기업의 진출수요가 확대될 것이라 본다"면서도 "투자환경 개선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투자에 있어 애로사항과 불확실성은 상존하고 있는 만큼 한-러 양국 정부간 협력과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시공을 초월한 국가차원의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 양창영 국회의원은 "중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경제협력의 기틀을 마련했고, 북한과 중국·러시아간 접경지역 관광지특구, 훈춘·자루비노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통한 나진~훈춘~하산의 3각 벨트 구축을 통해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의 지역 개발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국가차원의 개발전략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으로 러시아 연해주의 자유항 지정은 분명히 우리에게 기회"라고 강조했다.
구정모 강원대 국제무역학부 교수는 "동북아시아의 부상과 중러의 동해출구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강원도 및 동해안의 GTI전략과 연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해의 노르비전처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연계한 정부 차원의 동북아 그랜드 디자인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태강 한림대 러시아연구소장은 "러시아는 종래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더해 유럽과 아시아를 북극해로 연결하는 해운의 적극적인 활용을 목표로 하고 있어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새로운 발전이 기대된다"며 "한반도의 평화체제 확립과 통일을 위해서라도 북러 접경지역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역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명수 전 LS네트웍스 블라디보스톡 지사장은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정책은 예상을 뒤엎는 파격적인 경제정책으로 성공적인 추진을 통해 아태지역의 통합촉진으로 극동개발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며 "초기에는 적잖은 시행착오가 있겠으나 과거보다 한층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극동개발부를 주축으로 극동 관구 지방정부는 연방정부의 관심과 지지에 힘입어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모든 채널을 가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러시아 연해주 자유항 지정에 따른 대응전략 세미나가 지난 17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2층 제8간담회의실에서 새누리당 양창영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강원도가 후원한 가운데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