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3차 민중총궐기 소요문화제’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복면금지법안’에 항의하는 뜻으로 고양이가면 등을 쓰고 집회를 이어갔지만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사진자료=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 국회에는 ‘복면금지법’을 비롯한 각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집시법 개정안)이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야권이 적극 반대하고 있는데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이 일고 있어 실제 통과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시민들은 가면 시위를 이어가며 정부·여당의 집시법 개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
2·3차 민중대회 평화집회…복면금지법 무색
시민들 “예뻐질 권리도 막냐” 마스크팩 시위
총선 앞둔 국회 곧 개점휴업…해프닝으로 끝날 듯
집회 또는 시위를 할 때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일명 마스크착용금지법을 최초 발의한 이는 정갑윤 국회부의장(새누리당)이다. 정 부의장은 지난달 25일 동료의원 31명과 함께 집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다음날인 26일에는 같은 당 이노근 의원도 복면착용을 금지토록 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내놨다.
지난 14일에는 박인숙 의원(새누리당)이 서상기·홍지만·박명재·김을동·주호영·이정현·김한표·손인춘·문대성·이이재 의원 등과 함께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이 낸 개정안의 공통된 취지는 집회 및 시위 때 참가자가 복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 하더라도 참가자가 복면 등을 착용, 신원을 알기 어려움을 악용해 공공의 안녕질서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의 개정안에 따르면,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가면·마스크 등의 복면도구를 착용하거나 착용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단, ▲집회 또는 시위의 성격에 비춰 참가자의 신원이 노출되면 참가자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집회 또는 시위의 목적·규모·일시 및 장소를 고려할 때 공공질서를 침해할 위험이 현저하게 낮은 경우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 등이 있을 시에는 복면도구를 착용할 수 있게 허용했다.
특히 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복면시위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명시했다.
평화시위 계속되자 여론 ‘시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따르면 복면시위의 금지에 대한 논의는 2004년 집시법 개정논의에서부터 제기됐다. 17대 국회에서 추진했던 바 있고 18대 국회에서는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는데 그동안 법안 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있어왔다.
우선 복면·마스크 등으로 자신의 신원을 숨길 경우에 과격화 경향을 불러 일으켜 불법폭력시위로 발전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에서 복면시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반면 침묵시위 등에서 마스크를 착용해 의사를 표시하는데 이때 신원확인을 피하기 위한 목적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 2003년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장소·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주최자는 집회의 대상·목적·장소·시간에 관해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더욱이 지난달 14일 폭력사태로 번진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때와는 달리 지난 5일과 19일 열린 2차, 3차 민중총궐기 때는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얼굴을 가렸음에도 평화롭게 행사가 끝나 복면금지법을 추지하고 있는 정부·여당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시위대는 ‘복면금지법안’에 항의하는 뜻으로 고양이가면·아이언마스크 등을 쓰고 집회를 이어갔지만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특히 일부 여성참가자들은 피부미용용 마스크팩을 쓰고 “정부가 예뻐질 권리마저 앗아 간다”며 퍼포먼스를 벌여 당국을 당황케 했다.
이처럼 평화시위가 이어지자 당초 복면금지법 추진에 찬성했던 여론이 시들해지면서 법안통과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14일 민주노총 등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개최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참가자들이 행진하던 중 경찰과 대치하면서 밤늦게까지 충돌을 빚었다. 경찰이 경찰버스를 발로 차고 있는 시위자를 향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로 조준 사격하고 있다. (사진=CNB포토뱅크)
野 “폴리스라인서 차벽 제외” 차벽금지법 맞불
여기에다 야당은 ‘차벽금지법’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경찰의 무리한 집회 봉쇄가 화근이 된 만큼 경찰의 폴리스라인을 최소화해 집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승남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차벽·폴리스라인 등 질서유지선(폴리스라인)을 경찰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시위대가 이에 반발해 불법 및 과격시위로 변질되는데 주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난 7일 대표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은 질서유지선 설정에 관한 결정권을 현행 관할 경찰서장이 아닌 관할경찰서의 ‘집회·시위자문위원회’에서 결정하고 경찰서장은 이에 따르도록 해 평화적 집회 및 시위여건을 보장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같은 당 진선미 의원도 지난달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인한 차벽 남용이 지속되고 있다며 차량·바리케이드 등 사람의 통행을 원천적으로 막는 장비는 질서유지선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적시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논란 끝에 국회가 여러 건의 집시법 개정안을 냈지만, 이 같은 앞뒤 상황으로 볼 때 통과는 힘들어 보인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2~3월이면 사실상 국회가 종료되고 선거 체제로 접어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시간이 한 달 남짓한 상황이다.
더구나 노동법 개정안 등 첨예한 쟁점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 복면금지법은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