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와 직원으로 만나는 단순한 일자리 개념을 떠나 삶의 보람과 애환이 묻어나는 훈훈한 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CNB가 신개념 택배사업장인 ‘SH라이프센터’를 찾았다. (CNB=이성호 기자)
민-관-기업 손잡고 일자리 창출
어르신들 ‘시니어 사랑방’ 탈바꿈
건강 챙기고 용돈 벌고 ‘일석이조’
주민들 따뜻한 배려…동력으로 작용
최근 오픈한 ‘SH라이프센터’는 어르신들이 택배원으로 일하는 것은 물론 입주민들에게 생활 공구를 빌려주는 등 복지사업까지 병행해 발을 넓히고 있다.
CNB 취재진은 지난 5일 서울 구로구 천왕이펜하우스 3단지 지하주차장 내에 소재한 ‘SH라이프센터’로 발걸음을 향했다.
지난 8월 오픈한 이 센터는 CJ대한통운이 핵심사업인 실버택배 배송장비 지원과 택배 물량 공급, 참여자 직무교육과 운영 컨설팅 업무를 맡고 SH공사가 임대주택 단지 내 택배거점을 확보해 각종 행정적 지원을 꾀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인력 공급 및 수행기관과의 연계를 담당하고 있다.
센터에 도착해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설명을 듣는 사이, 실버택배원인 어르신들이 속속 출근해 사무실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물량을 실은 택배차량이 도착하지 않아 대기 상태인 것. 이때다 싶어 양해를 구하고 일하시는데 어려움은 없냐고 정중히 여쭤봤다.
지하철택배일 하다가 실버택배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 모 할아버지는 “집에서 놀면 뭐해 운동 삼아 하는 거지”라며 “하루에 2~3시간 일하는데 그리 힘들 것은 없어”라고 정정함을 과시하셨다.
다른 할아버지들도 “괜찮다”, “고되지 않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20kg 이하 물건을 취급하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운반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다는 것. 특히 20kg 이상 중량이 나가는 택배는 상주해 있는 센터 관계자가 도와준다고 귀띔했다.
김 할아버지는 “모여서 담배피고 장기나 두고 이런 것보다 움직이며 일하니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다들 웃으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대화도 많이 하게 돼 여러 가지로 일석이조야”라고 환하게 웃었다.
실버택배원은 60세 이상이 지원해 할 수 있는데 센터에는 현재 11명의 시니어가 근무하고 있다. 일부는 이곳에 사는 입주민이며 모두 구로구에 거주하고 있다. 연령이 가장 적으신 분이 72세이고 최고령이 85세였다. 연세가 많으셔서 일이 힘에 부치진 않을까했지만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실버택배원은 주 6일 근무제로 1인당 월 약 500개의 택배를 맡는다. 급여는 지자체 보조금과 배달하는 택배량을 더해 월 20만원에서 30만원 사이다.
센터 관계자는 “사실 큰돈은 아니지만 소일거리 삼아 운동 겸 일을 하니 건강해졌다며 더 일하게 택배량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계신다”며 “어르신들이 일을 하면서 보람도 찾고 많이 활기차 지셨다”고 전했다.
서울시-CJ대한통운 업무협약, 실버택배 확산
지난 8월 아파트에 센터가 들어서고 실버택배가 본격적으로 가동됐을 당시만 해도 일반 택배원이 아닌 고연령층이라 대하기 어렵고 불편해 하는 주민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오픈 후 3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주민들과 얼굴도 익히고 서로 오가며 인사하는 등 관계가 좋아졌다. 실버택배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주민들의 따뜻한 배려가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 모 할아버지는 “일을 하면서 주민들과 많이 친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낮이고 밤이고 아무 때나 택배가 오는 게 아니라 늘 고정된 시간에 같은 얼굴이 배달을 하기 때문에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다”고 은근히 장점을 자랑했다.
남 모 할아버지도 “세상이 무섭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젊은 여성이 집안에 있는 경우 벨을 눌러도 문을 안 열어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얼굴을 알아보고 물건을 건네받는 주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들은 전국적으로 실버택배가 점점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아직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며 이러한 기회가 다른 시니어들에게도 많이 주어지길 바랬다. 더 일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눈빛에서 건재함과 식지 않는 열정이 느껴졌다.
이야기 도중 한 할아버지의 “왔다”라는 소리와 함께 물건을 가득 실은 택배차량이 도착했다. 실버택배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탑차 후미에 일렬로 정렬해 분류작업에 들어갔다.
각자 맡은 구역의 물건들을 한곳에 쌓아놓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젊은 사람 못지않은 숙련된 모습을 보였다. 탑차가 떠나자 할아버지들은 자기 구역의 택배들을 카트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배달에 나섰다.
그 뒷모습은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어깨에는 나이가 많아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고마움과 자부심에 더해 일하면서 찾는 성취감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한분 한분에게 “수고하십시오”라고 인사를 드렸다.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서둘러 목적지로 향하는 걸음걸음은 무척 활기에 차 있었다.
소중한 일터, 생활의 활력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생활의 활력을 위한 소중한 일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1월 본지에서는 서울 응암동에 소재한 ‘실버택배 서울1호점’ 현장을 취재한 바 있다. (관련기사:[르포]당찬 제2인생…혹한 녹이는 CJ대한통운 ‘실버택배’)
서울1호점 실버택배원들에게서 느꼈던 아직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일터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 그리고 건강에 찬 기운들은 이곳에서도 역시 충분히 전해지고 있었다.
한편, ‘SH라이프센터’에서는 실버택배 뿐만 아니라 생활 공구도 무상으로 입주민들에게 대여 해주고 있다.
SH공사 양천권역주거복지센터 관계자는 CNB에 “고령자를 위한 복지사업을 고민하다가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CJ대한통운과 콘텐츠를 교환해 라이프센터를 오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는 3단지에서만 시행되고 있지만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며 라이프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복지 활성화에도 중점을 둬 입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도 적극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CJ대한통운,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시니어클럽 서울지회 등 4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실버택배 사업을 시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SH공사에서 하고 있는 라이프센터를 서울시 전체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것.
서울시청 인생이모작사업팀 관계자는 CNB에 “SH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임대아파트에 우선적으로 실버택배를 도입, 긍정적인 효과가 발현되면 향후 민영아파트에도 확대해 나갈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내년까지 시니어 일자리 1000개 목표
이른바 100세 시대로 진입하고 있지만 노인들은 정신·체력적으로 부담이 없는 상황에서 자의반 타의반 은퇴자로 내몰리게 됐고, 더 일하고 싶은 욕구는 높아져 가지만 막상 일할 곳은 없거나 극히 한정돼 있는 실정이다.
실버택배의 경우 용돈 정도를 버는 수준이지만 하루 2~3시간 신체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의 업무량을 볼 때 타 일자리에 비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실버택배원 대부분이 수익 보다는 동료들과 같이 일하는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2013년부터 실버택배 사업을 운영해왔다. 민간기업, 지자체, 공기업 등이 함께 손잡고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서울·부산 등 32개 시·구 지역에서 60개의 거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약 470여명의 시니어 인력들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서울 은평구·성북구, 파주시 및 부산 동구·연제구 등 지자체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SH공사, 대한노인회 등 국가기관이나 단체와 업무제휴를 맺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자체 등에서는 시니어 일자리 창출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CJ대한통운 역시 택배기사가 부족한 상황과 배송난 지역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시니어들은 일자리와 사회참여 기회, 소득을 얻는다.
지역·사회·기업이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공유가치창출형 사업모델은 실버택배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여성 시니어가 택배터미널에서 근무하는 택배기사나 인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간편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소형 카페인 ‘은빛누리 카페’는 최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2호점을 오픈했다.
부산 영도구의 LH커뮤니티 센터는 기존 아파트 단지 내 실버택배 사업에 더해 마트에서 구입한 상품을 가정으로 배달해주는 ‘장바구니 배달’ 서비스도 꾀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2016년까지 실버택배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 1000개를 만든다는 요량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CNB에 “실버택배 사업의 밸류체인 확대 차원에서 부산시의 제안에 따라 관광쪽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 ‘이바구 자전거’고 택배터미널 카페는 여성 시니어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일자리 형태”라고 말했다.
택배터미널이 대부분 외진데 있어 택배기사들이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은데 카페를 개설해 회사 입장에선 택배기사들의 복지, 시니어들에게는 일자리 제공, 인근 직장인에게도 편의를 제공하는 등 1석3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실버택배는 각 지자체 등이 원하는 부문과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라며 “시니어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전제 아래 참여하는 주체들의 니즈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하며 현재 여러 곳과 협의가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