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모레퍼시픽이 면접장에서 '갑질'을 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빠르게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장품 업계 1위 기업 ‘아모레퍼시픽’이 때아닌 ‘갑(甲)질’ 논란에 휘말렸다.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면접시험에서 응시자들의 정치성향을 검증하는 듯한 행태를 보인 것.
지난달 31일 한 응시자가 SNS를 통해 자신이 면접장에서 겪은 일을 폭로하면서 드러난 아모레퍼시픽의 ‘민낯’은 광고속 모델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영업관리 직원을 뽑는 자리에서 이 회사의 한 면접관은 응시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 중인 국정 교과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응시자가 부정적인 취지의 답변을 하자, 면접관은 재차 “그래서 국정교과서 찬성이에요, 반대에요?”라고 다그쳤다.
결국 이 응시자는 아모레퍼시픽 입사에 탈락했고, 자신이 겪은 일을 SNS에 올렸다. 네티즌들은 공분했고, 들끓는 비난은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졸지에 '제 2의 남양유업'이 된 셈.
논란이 불거지자 아모레퍼시픽 측은 부리나케 수습에 나섰다. “해당 질문은 지원자의 사회에 대한 관심과 답변 스킬, 결론 도출의 논리성 등을 평가하기 위함으로 그 외의 다른 어떤 의도도 없었으며, 지원자의 성향은 합격 여부에 절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것.
일종의 ‘압박 면접’을 진행한 것이지 차별이나 인격 비하가 아니라는 취지다. 교묘히 책임추궁을 비켜나간 답변에 네티즌들은 여전히 분노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모욕·천박 면접’이 다른 수많은 기업들에서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는 것.
취업 관련 사이트들에서 면접 후기를 검색해보면, ‘압박 면접’을 빙자해 인격과 성별, 학벌, 출신지를 무시하고, 외모 비하는 물론 심지어 부모님까지 모욕하는 질문을 받았다는 증언이 숱하게 나온다.
취업 정보 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구직자 3명 중 1명이 면접에서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으며, 구직자 중 76%는 “부당한 질문을 받았음에도 불쾌감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답했다.
일부 구직자들은 ‘멘탈 갑(甲)이 되어야 한다’며 ‘모욕스터디’까지 만들어 서로에게 험한 말을 하고 이를 참아내는 훈련을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런 전근대적인 행태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왜일까?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는 ‘압박 면접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인사 시스템 미비’ 때문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CNB와 통화에서 “압박 면접의 원래 취지는 지원자의 이력서에서 과대포장된 부분을 걸러내기 위해 실무와 관련한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 인격을 모독하거나 성별·지역·정치성향 등에 대한 비하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압박 면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함량미달’의 면접관이 면접을 진행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원자는 면접장을 나서는 순간 소비자로 바뀌는데, 잠재적 소비자에게 ‘갑질’을 한다는 건 어떤 기업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소비재 기업 고위 직원이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사 담당자는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압박 면접’을 ‘철 지난 유행’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인사 시스템이 자리잡지 못한 기업에서는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