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부국장) 또 롯데다. 이번에는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94)의 집무실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두고 맞붙었다. 지난 7월 27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를 일본행 비행기에 태우면서 시작된 롯데가(家) 골육상쟁(骨肉相爭)이 오늘로 86일째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롯데가 얘기가 뉴스사이트에 오르내렸다. 권좌에서 밀려난 형(신동주)의 반란, 동생(신동빈)의 진압, 다시 형의 반격, 국정감사, 아버지(신격호)의 격노, 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L투자회사 등 생소한 회사들의 등장, 한일(韓日) 롯데의 정체성 논란, 숨겨진 지분구조의 비밀 등 이틀이 멀다하고 뉴스가 쏟아졌다. 국민들은 누가 경영권을 손에 쥘지를 축구경기처럼 지켜봐야 했으며, 수백의 언론이 취재경쟁을 벌여야 했다.
1000만 비정규직, 수백만 청년실업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딛고 있는 자영업자들, 아직도 결식아동이 4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는 시대에 수백조원대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고 있는 롯데의 얘기는 딴 세상이다. 3부자(父子) 간 권력다툼은 주주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재벌가의 전횡이다.
지금은 낱낱이 밝힐 때… 왜 안내놓나
이미 ‘그만 할 때’를 넘었다. 지난 9월17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불려나간 신동빈 회장은 “(왕자의 난이) 끝났다”고 답했다. 두 번씩이나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지겨운 ‘국가적 소모전’을 끝내는 방법은 한 가지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권좌에서 밀려난 형의 반란에서 시작됐다. 형이 앙심을 품게 된 이유부터 따져보자.
형은 지난해 12월 롯데 부회장,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해임된데 이어 올해초 지주회사인 일본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도 추가로 해임됐다.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퇴출된 것. 이전까지는 ‘일본=신동주, 한국=신동빈’으로 힘의 균형이 유지됐었다.
형이 왜 퇴출 됐는지에 대해 롯데는 함구했다. 쓰쿠바 다카유키 롯데홀딩스 사장과의 불화설, 실적을 중시했던 아버지가 일본 롯데의 부진을 문제 삼아 장남을 경질했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설일 뿐이었다.
동생 손을 들어줬던 아버지가 왜 다시 형 쪽으로 돌아섰는지는 더 의문이다.
알려진 얘기는 신동빈 회장이 롯데쇼핑(롯데백화점, 롯데마트)을 통해 중국에 투자한 사업이 큰 손실을 봤는데 이를 감춰오다 들켰고, 이로 인해 아버지가 등을 돌렸다는 정도다.
두 형제의 경우를 잘 조합해보면 하나는 분명해진다. 아버지는 실적을 중시하는 인물이라는 점. 그렇다면 문제해결의 키도 결국 ‘숫자’에 있다.
형의 경질에는 한국 롯데그룹이 승승장구하면서 2013년 기준으로 74개 계열사에 83조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반면 일본에서는 37개 계열사에 매출도 5조7천원에 불과해 성과 차이가 크다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생은 중국사업이 아킬레스 건이다.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중국에서 1조원 가량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 사업에서 생긴 누적 적자가 3200억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롯데는 진위를 밝혀야 한다. 롯데사태가 전 국민에게 충격과 우려를 안기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두 사람의 경영능력을 객관적으로 공개해 주길 바란다.
총괄회장의 지시서 한 장으로 이사들을 해임하고, 1% 안되는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전근대적인 행태가 오늘날 롯데사태를 불러왔다. 지금도 94세의 총괄회장은 “아직 10년, 20년 더 일할 생각”이라며 롯데호텔 34층에서 상왕(上王) 노릇을 하고 있다.
엄폐와 은폐로 점철된 롯데의 경영방식이 큰 화근을 불렀다는 점에서 해결책은 명료하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경영평가서가 나와야 하며, 이것이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일본롯데홀딩스 주주들의 판단근거가 돼야 한다.
(CNB=도기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