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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미선이와 효순이, 그리고 조중필

이태원 살인의 진짜 주범은 ‘불평등한 한미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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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5.10.08 16:55:19

(CNB=도기천 부국장) 포르투갈과의 월드컵 축구경기를 하루 앞둔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의 한 국도변을 두 소녀가 걸어가고 있다. 친구 다희의 생일파티에 가는 길이다. 케익을 자르고 난 뒤 의정부 시내에 함께 나가기로 약속했다. 제일 예쁜 옷을 챙겨 입은 열다섯 소녀들은 재잘대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오늘 뭐하고 놀까? 어딜 갈까? 이제 막 세상에 얼굴을 내민 초여름 들꽃들은 수줍은 소녀들의 설레임을 닮았다. 그날따라 세상은 참 푸르렀다.

어디선가 장갑차 굉음이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진다. 자주 접하는 소리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몇 초 뒤 아이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중학교 2학년 신효순과 심미선이다.    

이들의 어이없는 죽음은 월드컵 열기에 묻혔다. 사고 장갑차 관제병인 페르난도 니노 병장과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은 기소됐지만 미군 법정에서 모두 무죄 평결을 받았다.

당시 사고는 문제의 장갑차가 맞은편에서 오던 또 다른 장갑차를 피하다 일어났다. 미군 측은 굽은 도로라 아이들을 보지 못햇고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늦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도로는 직선도로였고 장갑차는 규정속도 20킬로를 넘어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뒷날 마크 워커의 변호사는 “관제병 페르난도가 ‘미선과 효순 양을 봤으나 당황해 어쩔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털어놨다.

1997년 4월 3일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는 더 기막힌 일이 있었다.

스물두살의 평범한 대학생 조중필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흉기에 9번이나 찔려 사망했다. 그 자리에는 미군 군무원 소속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가 있었다.

리는 살인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됐고, 패터슨은 증거인멸 혐의만 적용돼 고작 7개월을 복역하다 8.15특사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도주했다.   

그들이 조중필을 죽인 이유는 기가 막힌다. “사람 죽여 봤냐? 내가 진정한 갱스터”라며 칼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단지 누가 조씨를 직접 찔렀는지만 풀지 못한 숙제다.    

검찰은 조씨 유족들의 패터슨에 대한 소 제기와 끈질긴 진상규명 요구에 밀려 2002년이 돼서야 패터슨을 수배했다.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큰 논란을 빚자 정부는 그제서야 미국 법무부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그러고도 6년이 지나 한국으로 송환된 패터슨은 8일 한국 법정에 다시 섰다. 사건발생 18년 만이다. 

그들은 왜 조중필을 죽였나

누가 조씨를 찔렀는지에 대한 실증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미선이, 효선이, 조중필… 이 꽃같은 젊음들의 죽음이 미국이라는 나라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는 사실이다.

주둔군 지위를 인정하는 소파(SOFA) 협정 탓에 미군 범죄가 일벌백계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경우, 패터슨의 아버지가 미군 군무원이라 미군범죄수사대가 수사를 관할했고 그래서 초동 수사가 미온적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나토협정과 미일협정에서는 파견국 군대의 구성원 및 군속의 가족은 협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소파 협약에는 가족까지 적용을 받는다. 패터슨은 이런 혜택을 누린 것이다. 

미군 피의자의 신병인도 권한도 미군수사대가 갖고 있다. 그쪽에서 먼저 조사를 진행한 뒤 기소해야 한국 사법당국이 재판을 열 수 있다. 그나마도 우리 정부가 미 당국에 통보해야 한다는 전제가 달렸다. 미선이 효순이의 경우, 우리 당국의 별다른 조치가 없는 틈을 타 미 군사법정이 사건을 종료했다.  

윤금이씨 피살 사건, 매향리 폭격장과 한강 독극물 방류, 탄저균 실험 사건 등 수많은 미군 범죄들이 저질러져 왔지만 우리 사법당국이 이를 제대로 문제 삼지 못한 것도 소파 협정 때문이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 10년이 지난 2012년 한미 양국은 미군 범죄 피의자의 신병을 우리 정부가 우선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소파를 개정하기로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진척이 없다.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지만 그 희한한 소파는 꿈적하지 않고 있다.

이번 패터슨 사건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차원을 넘어 불평등한 소파 문제를 개정하는 촉매제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미선이 효순이 조중필… 빚진 자의 심정으로 미군범죄에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CNB=도기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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