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밤이 찾아오자 찬바람을 맞고 있던 낙타는 주인에게 사정을 한다.
"너무 추우니 머리만이라도 따뜻하게 천막 안에 들어갈 수 없냐"고 했다. 주인은 불쌍하기도 했고 “그 정도쯤은”이라고 생각하고 허락을 했다.
머리 디밀기에 성공한 낙타는 점점 목·다리·몸통을 들여놓더니 결국 비좁다며 주인을 천막 밖으로 쫒아 내버렸다.
잘 알려진 우화인데 현재 속속 들어서고 있는 은행 복합점포와 보험설계사들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위한다는 취지로 은행·증권이 결합된 기존 복합점포에 보험까지 추가 허용, 금융지주사별로 은행·증권보험이 결합된 복합점포를 3개 이내로 2017년 6월까지 약 2년 간 시범운영 후 확대 여부를 검토키로 했다.
이 정책에 따라 지난 8월 NH농협금융지주의 ‘광화문NH농협금융PLUS+센터’에 NH농협생명, 하나금융지주 ‘압구정PB센터’에 하나생명이 각각 입점했고, 9월에는 KB금융그룹도 가세해 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복합점포에 KB손해보험과 KB생명보험이 영업을 개시하고 있다.
KB를 제외하고 먼저 문을 연 농협과 하나의 8월 한 달 간 복합점포에서의 보험 계약 실적은 각각 6건, 1건으로 두 곳을 모두 합쳐 7건으로 극히 미약하다. 이는 사실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제약을 걸어놨기 때문이다. 복합점포에서 은행·증권은 같은 상담창구에서 영업을 할 수 있지만 보험은 별도의 공간에서만 운영할 수 있다.
고객이 자발적으로 점포 내 보험 창구로 찾아올 경우만 영업이 가능한 것으로 보험 직원이 창구 밖으로 나와 방문하는 고객을 상대로 상품 권유를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아웃바인드 영업도 막혀 있어 계약건수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는 이미 보험사와의 제휴를 통해 일반 은행 창구에서 보험 상품을 파는 방카슈랑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방카슈랑스의 경우 연금·저축보험 등에 한정돼 있으나 새로 생겨난 복합점포에서는 자동차·종신보험 등도 취급할 수 있다.
방카슈랑스를 통해 은행들은 지금도 연간 약 1조 원이 넘는 수수료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복합점포라는 판매채널이 또 하나 생겨나면 보험설계사들의 일자리는 더욱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에 금융위는 시범사업 실시에 앞서 국회 상임위에 금융지주에서 은행·증권·보험 3개 영역을 모아 마구잡이로 복합점포를 내기 어렵고 주로 거점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보험설계사들의 영역을 침범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복합점포가 약 40만명으로 추산되는 보험설계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진 않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단편적인 시각일 뿐이다.
아직까지는 시범사업이기 때문이다. 복합점포에 보험 입점을 반대하는 한국보험대리점협회에서도 시범운영 기간에는 제약도 있고 금융당국의 감독·감시가 있어서 금융지주에서 조심스러워하고 있지만 정식 허용되면 설계사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이란 조직이 목표달성에 대한 마인드가 강하기 때문에 실적 압박이 내려지게 되고, 법망을 피해 우회해서 보험을 팔거나 ‘꺾기’ 등 전사적인 영업을 강화해 결국 설계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게 될 것이라는 부연이다.
보험대리점협회에서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접수한 1차 복합점포 반대서명에는 8만명이 참여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보험산업은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세계 8위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15년 보험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당 보험가입률은 2014년 보다 2.2%포인트 오른 99.7%다.
이처럼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인 가운데 새로운 판매채널 형태의 하나로 복합점포가 생겨난 것. 정식 허용될 경우 비은행계 보험사는 제외되고 은행계 보험사만 혜택을 보게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최근 김을동 의원(새누리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호주의 경우 지난 1990년대에 방카슈랑스를 적극 허용한 결과, 현재 상위 5개 보험사 중 4개사가 은행계 보험사로 재편됐고 전속 설계사 수도 1만4000명에서 4500명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국회에는 복합점포에 보험사 입점을 막는 법안 2개가 올라와 있는데 법안 심의를 앞두고 있어 지속가능 여부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객반위주(客反爲主), 낙타의 머리 디밀기처럼 복합점포가 시범기간을 거쳐 서서히 전체 보험업계에 격변을 일으키게 될지 아니면 극히 한정된 영역에서 별 다른 마찰 없이 파장(?)없는 영업을 이어나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