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주거래 은행을 변경하려면 자동이체 출금계좌를 요금청구 기관별로 일일이 해지하고 타 은행 계좌에 새로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원스톱으로 손쉽게 변경이 가능해지는 것. 이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주거래 고객을 빼앗기지 않거나 빼앗으려는 ‘계좌이동 전쟁’이 불붙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
은행들 저금리 기조 속 혜택은 제한적
기존 고객 이탈 막고 새고객 확보 ‘총력’
금융지도 흔들…‘제살 깎아먹기’ 우려도
계좌이동제는 고객이 주거래 계좌를 타 은행으로 옮기면, 기존 계좌에 연결돼 있던 공과금·급여·통신비·카드 결제 등 자동이체 목록이 타 은행 계좌로 한 번에 이전되는 시스템을 이른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CNB에 “내달 30일부터 자동이체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단계적으로 계좌이동제가 도입된다”며 “은행 각 지점에서 이전해주는 것은 내년 2월부터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결제원의 자동이체통합관리시스템(페이인포, www.payinfo.or.kr)은 은행 등 52개 금융사 계좌에 등록된 요금청구기관(7만여개)의 약 7억개 자동납부, 은행 간 약 5000만개 자동송금 정보를 통합관리하고 있다.
우선 페이인포 사이트에서 본인이 직접 기존 계좌에 연결된 자동납부 내역을 신규 계좌로 변경신청하면 해당 은행에서는 5영업일내로 반영하게 된다.
내년 2월부터는 이 제도가 확대돼 이동통신사의 번호 이동제와 같이 전국 은행지점(오프라인)에서도 자동납부는 물론 적금·월세·회비 등 고객 스스로 설정한 자동송금까지 한꺼번에 새로 개설하는 계좌로 이동해줘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한층 편리해질 전망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이체 건수는 26억1000만건으로 금액으로 따지면 799억8000억원 규모다. 국민 1인당 월평균 이체건수는 8건, 건당 평균 이체금액은 31만원으로 추정되
고 있다.
올해 3월말 기준으로 자동이체 등록이 가능한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잔액은 개인예금은 226조3000억원으로 이는 총예금 1092조5000억원의 20.7%를 차지한다.
연간 약 800조원의 자동이체 시장에 계좌이동제가 도입됨에 따라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25~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계좌이동제 대해 조사한 결과 ‘실제 주거래 은행을 변경했다’는 응답자는 17.8%, ‘변경하고 싶었으나 못했다’
는 33.4%였다. 절반 넘는 은행 고객이 기존 계좌의 변경을 원하고 있었던 셈이다.
거래 은행 변경을 원했던 이유는 ‘가까운 영업점이 없어서’가 43.4%로 가장 높았고 이어 ‘다른 은행의 우대 서비스가 좋아 보여서’ 38.3%, 예·적금 금리(20.3%), 대출 금리(15.2%) 순으로 집계됐다.
주거래 은행을 변경하지 못한 이유로는 ‘영업점을 방문할 시간이 없고 바빠서’가 58.1%, ‘자동이체 항목을 직접 변경해야 해서(33.5%)’, ‘주거래 고객 우대 혜택이 소멸돼서(17.4%)’ 순으로 나타나 계좌이동제가 도입되면 고객들의 이동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주거래 고객 확보 ‘비상’
계좌이동제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은 한결 편리해지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쟁체제에 돌입해야 한다.
기존 계좌는 살아있으되, 타 은행 계좌로 자동이체 항목이 이전됨에 따라 주거래 계좌의 기능은 없어지게 되는 것으로 은행들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이에 은행권에서는 앞 다퉈 주거래 고객 이탈을 막고 신규 확보를 위한 신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 3월 은행권에서는 가장 먼저 입출식·카드·신용대출 상품인 주거래 패키지를 출시했고, 8월에 예적금 결합상품인 주거래 예금에 이어 9월 들어서는 3번째 계좌이동제 대비 상품인 ‘우리주거래 통신, 관리비 통장대출’을 선보였다.
‘우리주거래 통신, 관리비통장대출’은 주거래 통장에서 주요 생활비가 연체되지 않도록, 통신비나 관리비 같이 실생활에 필요하지만 연체가 잦은 지출비용에 대해 자동납부일에 통장 잔액이 부족한 경우 마이너스 통장방식으로 출금해 납부 가능토록 했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주거래 통장의 현재 잔액은 1조5000억원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7월 출시한 ‘신한 주거래 우대통장’을 최근 업그레이드했다. 신한카드(체크카드 포함) 1원 이상 결제 또는 공과금 이체 1건만 하더라도 수수료 3종(전자금융수수료, 신한은행CD/ATM기 인출수수료, 타행 자동이체)에 대해 무제한 면제 혜택이 주어진다.
신한 주거래 우대통장을 통해 우대요건을 충족한 경우, 신한 주거래 우대통장 뿐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입출금 계좌 대상으로 우대 혜택이 적용된다.
KB국민은행이 7월 선보인 ‘KB국민ONE통장’은 영업 18일 만에 10만명을 돌파했다. 이 상품은 빅데이터 분석, 고객 설문, 인터뷰 등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담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으로 고객의 은행거래 실적에 따라 다양한 수수료 면제 혜택을 준다.
KEB하나은행은 9월 2일 정기예적금, 주거래 통장, 중소기업대출 등으로 구성된 ‘행복투게더 패키지’를 내놨다.
‘행복노하우 주거래 우대통장’은 ▲급여이체 ▲연금이체 ▲카드결제 ▲아파트관리비 등 주거래 요건 중 1개만 충족해도 전자금융수수료와 KEB하나은행 자동화기기 타 은행 이체 수수료가 무제한 면제된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8월부터 계좌이동제를 대비해 주거래고객에게 우대혜택을 강화한 패키지 예금상품 ‘IBK평생한가족통장’을 판매하고 있다. 주거래 조건이 충족되면 입출식통장의 경우 전자금융 수수료, 자동화기기 출금·이체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 면제 및 환전, 송금시 70% 환율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NH농협은행도 최근 ‘NH 주거래우대 패키지’를 출시하고 오는 11월 30일까지 가입 고객에게 OTP(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 또는 NH 안심보안카드를 무료로 지급하며, 한국씨티은행도 계좌이동제 시행을 앞두고 지난 9월 21일 자산을 모을수록 높은 금리를 주는 ‘씨티 자산관리 통장’을 내놨다.
은행별로 아직까지는 수수료 면제 등 엇비슷한 수준의 메리트를 내세우고 있는 상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CNB에 “초저금리 시대에 은행에서 획기적으로 가격 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수수료 혜택이라든지 금리를 조금 더 주는 상품은 있을 수 있겠지만 1%~2% 더 줄 순 없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객들이 계좌이동제 도입 초기부터 10%나 20%씩 대규모로 이동한다고 보진 않으나 아무래도 시간이 경과되면 은행 간 경쟁은 치열해지고 고객은 니즈에 맞는 상품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며 “대형은행보다는 중소은행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