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부국장) 총선 7개월을 앞둔 19대 국회가 이른바 ‘롯데 국감’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롯데가(家)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과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볼썽사나운 경영권분쟁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재벌개혁이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를 증인 채택하는 것과 관련해 논의가 한창이다.
특히 전문경영인을 출석시켜 따지던 예전과 달리 재벌총수를 직접 국감장에 세울 태세다.
롯데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재벌가의 민낯은 땀흘려 일하는 이들을 실망시키고 좌절시켰다.
상법에 규정한 이사회나 주주총회 결의 대신 총괄회장의 지시서로 임원 인사를 좌우하는 전근대적 행태, 작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출자의 고리, 부모형제도 안중에 없는 경영권 다툼 등 중세시대 왕권 국가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분노를 넘어 허탈하고 허무했다.
재탕·삼탕 우려먹기 ‘식상’
하지만 국회의 현재 모습 또한 이 못지않게 실망스럽다. 중국발 쇼크 등 글로벌 위기로 국내 대기업의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이때에 총수들을 국감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하려는 요구가 빗발쳐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재벌개혁을 하겠다는 국회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증인으로 회자되는 인물들이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재계 스타’란 점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이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각각의 상임위가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들여다보면 더 예감이 좋지 않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여야 모두가 롯데그룹 지분 구조 등과 관련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및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요구하고 있고, 기획재정위원회는 야당을 중심으로 면세점 독과점 논란과 관련해 신 회장 증인 채택을 논의 중이다.
이미 롯데는 대국민사과를 하고, 순환출자 해소, 기업공개, 임금피크제 전면실시 등 획기적인 혁신안을 국민 앞에 약속한 상태다. 실제 TF팀을 꾸려 개혁에 착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 회장을 앞에 놓고 윽박지르고 망신 주는 일이 과연 맞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과 그의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국감대에 세우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땅콩회항 사건을 일으킨 조 전 부사장은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고 143일간 수감생활 후 출소해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지난 5월 22일 출소 후 한 번도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사람을 카메라 앞에 세워 뭘 하자는 건가.
조양호 회장 또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어 증인 채택이 해외에 알려지면 국가 신인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골목상권 침해 등 유통대기업의 동반성장과 관련해 산업위 증인 출석을 요구받고 있다.
골목상권 얘기는 ‘재벌이 동네슈퍼를 장악한다’는 식상한 레퍼토리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상생을 모색해야 하고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그럼에도 국감 때마다 유통대기업 오너를 앞에 두고 호통 치고 면박을 주는 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걸로 보인다.
정몽구 회장도 국감 때마다 증인 단골손님으로 거론되는 재벌 총수 중 한 명이다. 자동차그룹 특성상 환경, 노동, 산업 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신선하지 않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재계 대중스타들을 포기하고 주목 받지 못하더라도 전문경영인을 국감장에 세워 그들로부터 재벌경영에 대한 전문성 있는 정보를 얻기 바란다. 문어발식 지배구조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고려하고 분석해 정책을 입안해 내야한다.
세계 각국은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아베 일본 총리가 추진 중인 경기부양책 ‘아베노믹스’를 통해 경기불황의 늪에서 확실히 몸을 빼고 있다. 미국은 오랜 통화팽창 시대로부터의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쇼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만 언제까지 경제에 아무 실익 없는 이들을 불러내느냐 마느냐를 놓고 소모전을 펴야 하는가. 배우(의원)는 스포트라이트를 포기하고 고통 받는 국민 속으로 들어가주길 간절히 바란다.
(CNB=도기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