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석기자 | 2015.07.27 16:41:39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공약 중 하나인 '지역통화 유통사업 추진'이 고립무원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내에서 생산된 부(富)의 역외유출을 막아 지역내부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성공가능성이 낮고 130억 원 이상의 초기 사업비를 그대로 날릴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강원도의원들의 사업 포기를 촉구하는 파상공세와 언론의 피상적인 보도는 도청 내 담당 공무원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 최문순 도지사는 중단 없는 추진을 고수하고 있지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부정적인 여론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내년 4월로 예정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과정에서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후보들의 도정 경제정책을 공격할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을 조기에 안정화 시킬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문순 도지사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이에 따라 강원화폐로 대표되는, 강원도가 추진 중인 지역통화 유통사업 추진의 배경과 방법, 문제점과 대안 등을 총 9회에 걸쳐 짚어본다.
◆ 글 싣는 순서
1. 강원화폐 탄생 배경
2. 강원화폐와 사회적경제과 신설
3. 강원화폐의 역할과 기대효과
4. 강원화폐 유통 시스템
5. 국내외 지역통화 구축사례
6. 강원화폐 발행 반대 목소리
7. 강원화폐 발행과 Fintech
8. 강원화폐 유통 성공조건
9. 강원화폐 추진 대안
지역화폐는 일정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이자가 붙지 않거나 감가하는 돈이다. 시민 또는 시민단체가 발행하고 운영경비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무이자 또는 마이너스 이자(감가)라는 특징이 있다. 현재 국내 50여 개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5000여 개의 지역화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정통화에 비해 사용이 제한적이고 발행가액보다 사용가치가 더 줄어드는 마이너스 이자를 감수하면서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것은 화폐 자체가 인간의 얼굴을 한 '공동체 돈'이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는 신용창조와 자본축적을 저지하는 대신 적극적인 교환매개 수단의 역할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순환형 경제를 확립한다. 또 호혜적 교환을 통해 상호부조적 공동의 관계나 윤리를 가능케 한다.
노동시간과 연계된 타임달러는 아이돌보기를 시간당 1만 원으로 책정한 경우 노동을 제공한 사람은 이에 대한 노동의 대가로 타임달러를 받고, 이를 가맹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자신이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노동, 즉 집수리 등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인이나 주부 등 유휴노동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고, 시장경제에서는 화폐가치로 인정받지 못하는 공원에서 애완견과 놀아주기 등 시민의 기술과 재능은 지역화폐는 교환가치를 인정된다. 이는 시민들이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기술과 재능을 펼치는 동시에 학습하는 등 자기계발의 기회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지역화폐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경제와 맞닿아 있다. 사회적경제는 과거 공동체 속에서 해결하던 서비스 등을 시장경제 속에서 화폐로 거래하면서 나타난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문화로 해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이사를 할 경우 이웃 간 도움으로 가능했으나 시장경제에 편입되면서 이사전문업체에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됐다. 하지만 이는 돈과 서비스만 존재할 뿐 이웃 공동체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함께 공동체문화의 복원을 통한 해결을 시도하게 됐고, 이러한 움직임은 사회적경제의 토대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역화폐는 1998년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든 미래화폐(fm)로부터 시작됐다. 현재 전국적으로 50여 개 지역화폐가 운영되고 있으나 안정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은 많지 않다. 전국적인 네트워크화가 안 돼 정보교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운영매뉴얼이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지방정부나 공동재단이 주도하는 경우 소수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업무 과중으로 조직이 붕괴하거나 담당공무원의 보직 변경과 관심 저하로 전체 시스템이 붕괴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강원화폐 역시 이러한 현실적인 난맥상을 모두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된 지역화폐는 2000년 창립된 지역품앗이 한밭레츠로, 화폐명은 두루다. 법정화폐 단위인 원과 등가로, 1000두루는 1000원이다. 화폐 발행은 신용을 토대로 회원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발행한다. 2013년 현재 1만 7308건이 거래됐으며, 두루거래액은 2억 920만원(54.8%)이고, 현금거래액은 1억 7220만원(45.2%)으로 총 3억 8145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회원 657가구가 참여한 것으로, 가구당 연간 58만원에 이른다. 창립 첫해인 2000년보다 거래 건수는 60.3배, 거래액은 37.1배가 증가했다. 특히 민들레의료생협이 창립된 2002년 이후 거래건수가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지역화폐인 미래화폐(fm)은 회원 450명이 농산물을 비롯한 각종 물품과 서비스 등 거래건수가 월 20건에 불과할 만큼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등 지역화폐 대부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춘천의 경우 2012년 7월 춘천녹색화폐센터가 가맹점 50여 곳에서 쌀 본위 지역화폐인 '이삭'을 발행했으나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강원화폐는 춘천녹색화폐센터가 지난 6.4지방선거 당시 최문순 도지사에게 지역통화 유통 추진을 제안했고, 이를 공약으로 채택하면서 현재 경제시책 중 하나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외 각국마다 지역화폐가 발행되거나 준비 중에 있다. 해외 사례는 '강원도 지역통화 유통방안 조사연구'를 수행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자료집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비어(WIR)는 1934년 스위스에서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자본금 4만 프랑으로 창업한 협동조합이 발행한 지역화폐다. 실물화폐는 없으며 비어를 통한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한다. 무이자 방식으로 운영되며, 기업 또는 개인 등 회원 간 계좌이체와 전자결제방식을 취하고 있다. 1936년 100만 프랑으로 성장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 1억 8000만 프랑, 1992년 20억 프랑 등 비약적 성장을 통해 정식 은행으로 발전했다. 현재 스위스 기업의 약 20%에 해당하는 6만 개 기업이 이용하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 파운드는 영국 브리스톨 시에서 유통되는 지역통화로, 현존하는 지역통화 중 가장 넓은 통화공간을 가진 화폐 가운데 하나다. 브리스톨 시는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도심인구 43만 명, 인근 지역까지 포함할 경우 약 1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중심이 돼 2012년 9월 본격적인 유통을 시작했으며, 상호신용통화인 브리스톨 파운드를 사용하고 있다. 국가통화와 등가 교환방식으로, 실물화폐 4종류와 브리스톨 신협과 계약을 체결해 온라인 및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브리스톨 시는 지역통화로 세금을 받기로 해 브리스톨 파운드가 안착하는데 큰 힘이 됐다. 사무국은 지역공동체기업이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 가맹점은 370여 개로 도시개발과 지역상권 활성화, 로컬푸드 정책과 연계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남서쪽 대성양 연안에 위치한 낭트 시와 인근 지역을 대상으로 실험 가동 중인 낭트화폐는 약 300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이름 공모대회를 거쳐 최종 선정됐다. 프랑스에서 6번째로 큰 도시인 낭트 시는 거주인구는 30만 명이고, 2013년 6월 정식화폐로 승인을 받았다. 현 프랑스 국무총리인 장 마르크 애로가 낭트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8년 모델 구축작업을 주도하면서 시작돼 현재 유럽 지역개발기금이 후원하고 있는 6개 지역통화 실험 프로젝트 중 하나다. 실물화폐는 발행하지 않고 디지털 거래방식 운영은 신용을 매개로 교환이 이뤄지고 있어 일종의 무현금 물물교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온라인 결제와 문자메시지를 활용한 모바일 뱅킹, 포스(POS) 단말기를 통한 스마트카드 결제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레스(The RES)는 벨기에 루벵 시와 인근 도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역화폐다, 주로 지역 소기업들과 상인들의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1996년 발행돼 유통되고 있다. 현재 5000 개 이상의 소기업과 상점이 네트워크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고, 4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회원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연간 3000만 유로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현존하는 유럽지역 지역통화 중 생존기간도 길고 사용인원도 많은 간판급 통화다. 레스 은행을 통해 계좌를 만든 모든 회원에게는 거래를 위한 지불카드가 지급되며, 네트워크에 가입돼 있는 가맹점 어느 곳에서든 사용이 가능하다. 주로 활용되는 결제수단은 충전식 선불 카드로, 언제든 재충전해 사용할 수 있고 지역통화 활성화를 위해 카드를 충전할 때마다 50% 할증된 값으로 교환을 해주고 있다. 즉 100유로를 충전하면 150레스가 지급되는 방식이다. 레스 가맹점으로 가입된 사업주들은 일정한 심사를 거친 후 레스 은행으로부터 레스로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담보물은 없으며, 대출 상환 역시 유로화가 아닌 레스로 하면 된다.
에코머니(ECHO-MONEY)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것으로, 지역 자원 순환의 매개물로서 지역통화에 주목해 자원재활용, 보육이나 돌봄 등 사회서비스, 소외계층 대상 교육, 지역예술가 지원 등 문화 등 주로 서비스 영역에서 인적자원 교환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역통화다. 상품(Goods) 교환은 하지 않고 교환품목을 품앗이 형태의 서비스 영역으로 한정돼 있다. 일본 정부는 지역통화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미국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지방정부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킴가우어(CHIEMGAUER)는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인근의 소도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통화로, 2003년 이 지역의 한 교사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업용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후, 임상실험에 성공해 현재까지 유통되고 있는 지역통화다. 2013년 기준 가입 회원 수는 3600여 명이고 통화사용이 가능한 가맹점 수는 620여 개이며, 지금까지 발행된 총 금액은 55만 킴가우어 수준이다. 통화 단위는 킴가우어를 쓰며, 유로화와 등가이다. 킴가우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감가방식을 취하고 있다. 킴가우어는 매 3개월마다 이자가 -2%씩 붙는 구조로 돼 있어서 돈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플러스 금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마이너스 금리를 물어야 한다. 이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은 채 1년을 보관할 경우 액면 금액의 8%를 손해 본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 지역 사업체,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통화 유통시스템에 통합해내고 있다.
커뮤니티 웨이(Community Way) 달러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의 작은 섬인 코목스 밸리에서 통용되고 있는 기부 연계 통화로, 할인쿠폰을 매개로 한 지역통화 모델이다. 통화발행자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업체들로, 통상적인 쿠폰이 소비자들에게 가격할인 혜택을 줌으로써 매출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이 통화는 지역상인 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 주민 등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업체들은 할인통화를 발행해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는 단체나 학교, 프로젝트 추진그룹에게 기부한다. 단체는 기부 받은 통화를 직원들 초과근무 수당 등 급여나 지역 협력사업 수행그룹에 대금 지급,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보상금 등의 방식으로 전달하면 통화를 받은 사람들이 통화 발행처인 가맹점으로 등록된 음식점이나 점포 등에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마키(Makkie)는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 동부지역에 위치한 마카사스퀘어 지역에서 유통되고 있는 통화다. 이 지역은 암스테르담에서도 가장 못사는 지역으로 교육, 문화, 삶의 질에서 최하위에 머물고 있고 빈곤층 규모와 실업률, 범죄율이 높아 주민들은 새 판을 짜기로 하고 지역재생과 지역통화를 연결했다.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준 대가로 받는 쿠폰이 바로 마키다. 일종의 품앗이 통화인 마키는 온라인 플랫폼 방식으로 주민들의 각종 서비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고 있다. 서비스를 받고 싶거나 제공해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온라인 플랫폼인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보를 검색하고, 상대에게 요청하면 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간봉사를 하고 그 대가로 쿠폰을 받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지역 안에서 얻는 자원 순환방식이다.
강원도는 국내외 지역화폐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한 후 도내 실정에 맞는 방식을 채택해 강원화폐에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한재천 춘천녹색화폐센터 대표는 "강원지역화폐에는 지역본위, 지역순환성, 기한 내 사용하는 것, 그리고 주민 상호연대 등 여러 가치가 들어가야 할 것"이라며 "불황일수록 돈이 돌아야하는데 돈이 돌지 않는다. 빚도 갚고 순환할 수 있는 현명한 지혜 수단이 바로 지역화폐로, 돈의 변화 없이 경제살림의 근본 변화는 없다"고 강조했다.
강원발전연구원 지경배 일자리사회적경제센터장은 "강원도는 수도권과 인접해 있어 소비와 노동력의 역외유출이 심각한 만큼 지역 내에서 원재료를 조달해 생산을 유발하고 지역 내에서 소비되는 지속가능 지역경제 구축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역화폐를 통해 도민 상호 간 품과 물품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상생의 공간을 마련해 사회적경제와 지역 소상공인의 자원연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사회적경제의 판로개척을 지원해 지역순환경제 활성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