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석기자 | 2015.06.24 00:00:40
박철호 강원대 의생명과학대학 교수는 강원발전연구원이 23일 오후 개최한 '희소잡곡 산업화 발전방안' 강원포럼에서 이같이 말하고 "국내외 시장에서 잡곡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잡곡산업를 위한 적극적인 행정을 촉구했다.
박철호 교수는 이날 '희소잡곡류의 산업경쟁력 제고 방안' 주제발표에서 "과거 화전민의 주식이었던 잡곡은 미래의 땅 강원도를 먹여 살릴 경제재가 될 것"이라며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대비해 레시피를 개발하고 특산 가공식품 개발을 위한 잡곡의 활용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잡곡의 소비가 증가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도내 잡곡 생산과 유통량도 증가하고 있다.
2013년말 현재 도내 미곡, 맥류, 잡곡 등 주곡 생산량은 19만2000톤으로 이중 잡곡은 3만3000천톤으로 17.2%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평균 1.6%보다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산업적경제적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전국 총 잡곡생산량 9만5002톤 가운데 도내 생산량은 3만3046톤으로 34.8%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옥수수가 3만톤으로 전체 잡곡 생산량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조와 기장, 수수 등 소립종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
최근 15년간 강원도농업기술원 시험보고서를 살펴보면 1468건의 연구정보 가운데 잡곡류 시험보고서는 137건 9.3%에 불과하다. 이중 옥수수가 108건 7.4%를 차지했고, 조와 수수, 기장은 29건 2.0%에 머물렀다.
웰빙과 로하스, 힐링 등 소비자가 추구하는 건강 지향의 시장 흐름이 가속화하고 있는 데 비해 잡곡류의 기능성 물질과 효능에 대한 연구 비중은 낮은 셈이다.
박철호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강원도민의 의식변화"라면서 "잡곡은 이제 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생명의 양식이라는 확신과 그것을 위한 의지가 필요하다. 도내 잡곡의 발전을 위해서는 명품 브랜드화, 고부가가치 산업화, 남북통일상품화, 한류상품화 등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잡곡이란 문자 그대로 잡(雜)다한 곡(穀)물이다. 조, 기장, 수수, 피, 메밀, 율무 등 잡곡은 벼, 밀, 옥수수 등 주곡작물과 비교할 때 대단히 마이너(minor)한 작물이다. 생산과 소비 면에서 비중이 적다는 의미다. 20세기 들어 쓰임새가 적어 크게 쇠퇴했다가 요즘 다시 관심을 끌고 있기는 하지만 잡곡이 식생활의 주류를 이루던 과거에 비하면 생산량, 소비량 등 이용 면에서 여전히 미미(minor)한 수준이다.
'잡곡은 보물이다'라는 의미에서 '보곡(寶穀)'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잡곡 중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을 섭취해 우리 몸의 면역계, 내분비계, 신경계, 순환계, 소화계 등 생리계통을 조절해 질병을 예방하는 건강 유지와 질병을 치유하는 건강 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현대인들은 암을 비롯해 당뇨병과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비만, 고지혈증, 지방간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장시일 동안의 계속적인 편식과 잘못된 식습관, 과잉 칼로리 섭취로 인해 체내에 지방질이 과다하게 축적되고 항산화 활성물질의 섭취가 부족해 세포 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이다. 또한 양질의 단백질 섭취 부족으로 인해 생체 재편성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도 관련이 깊다.
현대인의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잡곡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잡곡에는 양질의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등 여러 가지 미량영양소가 인체에 필요에 맞게 들어 있다. 잡곡의 작은 알곡에는 모든 필수아미노산이 들어 있으며, 식이섬유, 미네랄, 비타민B군도 풍부하다. 한국의 풍토에서 자란 토종 잡곡에는 5대 영양소 외에도 비타민B, 마그네슘 등 한국인의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고르게 들어 있어 채소와 육류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현대인의 식생활에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의 귀중한 공급원이 되고 있다.
잡곡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영양, 즉 건강의 측면에서 잡곡이 갖는 가능성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의학인 한방에서 생약재로 이용되는 잡곡의 용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발달된 현대 과학기술로 잡곡 성분의 약리적 효능을 구명해 잡곡이 의약품 및 기능성 식품의약의 원료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잡곡은 '지구의 양분을 동식물을 통하여 받아들인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와 '먹거리는 곧 약'이라는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고 하는 유교정신의 식(食) 사상과 부합한 작물이다. 그래서 잡곡을 건강과 평화를 지켜주는 미래식의 주요 식재로 취급되기도 한다.
자연식 연구가인 강순남씨는 그의 저서 '밥상이 썩었다. 당신의 몸이 썩고 있다'에서 현대인들의 지나친 동물성 지방의 섭취와 5백(白)식품인 흰쌀, 흰밀가루, 흰설탕, 흰소금, 흰조미료의 과다섭취를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대신 곡류와 전분류를 먹고 곡류 중에서도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밀을 먹을 것 등 여덟 가지 밥상개선책을 제시했다.
박철호 강원대 교수는 "농촌어메니티산업과 힐링산업을 위한 핵심소재로서 잡곡의 가능성은 주목할 만하다"면서 "조리는 물론 민속, 민간요법 등 잡곡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해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드라마와 영화, 테마파크 등 콘텐츠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잡곡 시장의 확대와 잡곡산업으로 피드백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100세 시대와 함께 인구 고령화와 건과 건강식에 대한 청장년층의 관심이 증가하는 등 사회여건 변화는 물론 6차산업 등 문화와 연계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는 등 농업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능성 잡곡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박철호 교수는 "'판'을 크게 한 번 바꾸는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질서를 답습하는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서 "대구가 국내 대표적인 약령시인 것처럼 강원도를 아시아의 대표적인 '약곡도(藥穀道. Medicinal Grain's Province)'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강원발전연구원은 23일 오후2시 연구원 1층 대회의실에서 도내 잡곡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희소잡곡 산업화 발전방안'을 주제로 강원포럼을 개최했으며, 이날 포럼에는 육동한 강원발전연구원장, 이이재 국회농수산분과위원, 임상종 국립식량과학원 원장을 비롯한 각 분야 전문가와 생산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