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업계의 뇌관인 자살보험금 지급 소송이 장기화로 이어져 결국 유족들이 보험금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생보업계에 따르면 최근 법원에서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판결도 나오고 있지만 생보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해 결국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려는 분위기다.
대법 최종 판결까지 3년 정도 소요된다고 봤을 때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가 2년인 관계로 결국 소송전에 유리한 것은 생보사들인 것. CNB가 내막을 들여다봤다. (CNB=이성호 기자)
재해사망특약에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명시
생보사 유족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소송 장기화…소멸시효 완료돼 청구권 상실
A씨는 지난 2003년 ING생명보험의 ‘무배당 종신보험 표준형’ 보험에 가입했다. 2014년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보험사에서는 일반사망보험금은 지급했지만 자살보험금(재해사망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계약 당시 책임개시일 후 2년이 경과된 뒤 자살할 경우 자살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재해사망특약을 체결했지만 주지 않은 것. ING생명은 유족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이들을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자살이 원칙적으로 우발성이 결여돼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예외적으로 특약에서 특별히 보험사고에 포함, 보험금 지급사유라는 취지로 당사자끼리 약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또 약관 해석에 있어서 이를 작성한 회사에게 불리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 부합하는 등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생보사들과 유족들의 소송은 현재진행형이다.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현재까지 자살보험금 분쟁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ING생명을 상대로 15명이 공동소송을 제기했다. 이밖에도 알리안츠, KDB, 삼성, 신한, 동부생명 등을 상대로 약 20여개 재판부에서 100여명이 공동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생명보험업계의 최대 화두인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은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ING생명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 560억원(428건)의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을 적발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와 별도로 금감원은 분쟁조정국에 접수된 민원 39건에 대해 현대라이프·에이스·ING·삼성·교보·한화·동양·동부·알리안츠·농협·메트라이프·신한생명 등 12개사에게 지급할 것을 통보했다. 액수가 적은 현대라이프·에이스생명은 이에 응했지만 나머지 10개 생보사는 민원인을 상대로 보험금을 줄 수 없다며 채무부존재 소송을 건 상태다.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의 핵심은 ‘특약’이다.
지난 2010년 4월 이전 거의 모든 생보사들은 재해사망특약에서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 이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준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2010년 4월 이후부터 판매한 보험상품에 대해서는 자살보험금이 아닌 책임준비금(적립금)을 주는 것으로 바꿨다.
문제는 2010년 4월 이전에 판매했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계약에 대해서는 특약에 따라 자살 시에 보험금을 줘야 한다는 것인데, 생보사들은 자살은 재해가 아니며 표기상 실수라고 주장하며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자살보험금 특약이 포함된 계약은 전체 281만7173건이다. 미지급된 자살보험금은 2179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거액의 지출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생보사들 입장에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법원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소비자단체에서는 보험금 청구 소멸시효가 발목을 잡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피해자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CNB에 “생보사들은 지급해야 할 자살보험금 단위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갈 것”이라며 “결국 2년의 소멸시효가 끝나 보험사들만 유리하게(?) 될 공산이 커 민법상 (소멸시효) 10년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보험금 소멸시효는 2년으로 최근 3년으로 늘어났지만 이 건들은 해당이 안 돼, 3심까지 지리한 소송전 결과를 지켜보던 잠재적 소송인들은 소멸시효가 완료돼 보험금을 청구할 권리가 아예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생보사 측 입장에서는 최종적으로 패소해도 소송을 건 당사자(유족)에게만 보험금을 주면 되고, 비용 등의 부담으로 유족들이 소송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게 돼 손해 보지 않는 셈법이라는 주장이다.
이 처장은 “앞서 지난 2월 삼성생명과 이달 ING·메트라이프생명 등 소송에서 소비자가 승소했다”며 “그러나 타 생보사의 경우 소멸시효 문제 등으로 소비자가 졌다는 소식도 있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