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에서 후퇴했다. 아쉽다. 그렇지만 위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최초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해당 법안에 대해 10일 밝힌 견해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국회가 처리한 김영란법이 졸속입법 및 위헌논란을 빚는 것과 관련해 10일 오전 서울 신수동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김영란 "반쪽법안… 아쉽지만 시행 전 개정 시도는 성급"최근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등의 내용으로 위헌 논란을 유발했다. 지난 2012년 8월 김영란법이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을 때는 언론인 등이 적용대상에 없었다. 하지만 정무위원회를 거치면서 적용대상이 확대됐고 법제사법위원회 등과 적잖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이날 서강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실 원안에 없던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 등이 적용대상에 포함돼 깜짝 놀랐다”고 운을 뗐다.
김 전 위원장은 “그러나 국민 69.8%가 사립학교 언론인이 포함된 데 대해 ‘바람직하다’고 평했다는 여론조사가 있다. 그런 것을 볼 때 과잉입법이나 비례원칙 위배라고 보기 어렵다”며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민간에서 일부 개혁하려는 마당에 이를 잘못됐다고 비판만 할 수 없다”며 “특히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 확대한 것이라서 평등권 침해라고 생각하지 안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간분야 부패도 매우 심각하다. 공직사회 부패를 새롭게 개혁하고 이차적으로 기업, 언론, 금융, 사회단체를 포함하는 모든 민간분야로 확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범위와 속도, 방법의 문제는 따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언론인이 포함된 데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해선 깊이 고려할 여지가 있다.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언론의 자유는 특별히 보호돼야 하는 중요한 민주적 가치이자, 꼭 필수적인 자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가 선출직 공직자의 부정청탁을 예외대상으로 두면서 ‘제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데 대해서는 “자칫 잘못하면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을 브로커처럼 활용할 수 있는, 브로커 현상을 용인하는 결과의 초래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정청탁의) 문을 열어놓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든 취지로 보면 (선출직 공직자) 본인 스스로에게 걸러주는 것을 맡기는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당초 김영란법 원안에 부정청탁금지, 금품수수금지 이해충돌방지 등 세 가지 규정 중 이해충돌방지가 빠진 것과 관련해서는 “원안에서 일부 후퇴한 부분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통과된 법은 3가지 분야 중 가장 비중이 큰 한 가지(이해충돌 방지)가 빠졌고, 그런 의미에서 반쪽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밖에도 적용대상에서 가족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한 점, 100만원 이하 금품수수의 경우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만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한 점, 부정청탁의 개념을 축소한 점 등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현 시점에서 개정은 성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렇다고 시행도 전에 개정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며 “시행하면서 부패문화를 바꿔보고 그래도 개선이 안 되면 보다 더 강화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 여야, "존중한다"면서도 온도차… 대한변협 "헌법소원 계속 다툴 것"김영란 전 위원장이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이 위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쉽다”고 한 데 대해 여야는 한 목소리로 “존중한다”면서도 온도차를 보였다.
새누리당은 향후 보완 필요성을 언급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의 뜻을 들어 원론적인 반응만 내놓았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김 전 위원장의 의견을 기본적으로 존중한다. 앞으로 국회에서 필요하다면 보완하는 과정에서 잘 참고하겠다”며 “김 전 위원장이 법의 적용대상이 민간분야로 확대된 데 대해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은 국회의 뜻을 존중한 것으로 평가하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에도 공감을 표한다”며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내용이 빠진 것과 관련해선 앞으로 국회에서 보완하는 과정에서 추후 논의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적용대상 중 가족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한 것이 아쉽다는 평가에 대해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국회도 깊이 고민한 결과라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김 전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법 적용대상을 넓힌 것에 대해서는 위헌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고, 법 시행 전에 고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며 “이해충돌방지에 관해 법률규정에서 빠진 것은 아쉽다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변인은 “법제정 과정에서 이해충돌방지와 관련해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등 위헌의 소지를 제거하고 4월 국회에서 계속 논의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면서 “세상에 100% 만족스러운 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만큼 1년 6개월이라는 시행시기를 넉넉히 둔 것도 시행령 등의 제정과정에서 명확한 부분을 명시하자는 의미였다는 점을 상기하며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김영란 전 위원장이 입장 표명에 나섰지만 이미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황이라 한동안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5일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는 김영란법 규제 대상에 언론사를 포함시킨 제2조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들어 김영란법에 대한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인은 대한변협신문 편집인인 강신업 공보이사, 한국기자협회와 대한변협신문 전 편집인인 박형연 씨 등이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대한변협의 헌법소원에 대해 10일 기자회견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변협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한상훈 변호사는 이날 CNB와 통화에서 “김 전 위원장이 안타깝지만 위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 것은 처음 제안자로서 당연한 입장”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 변호사는 “김영란법은 법조계 내부에서도 위헌이다, 아니다를 놓고 이견이 있다”며 “변협에서는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 헌법소원으로 계속 다툴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