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천기자 | 2015.03.10 10:08:07
호반건설은 지난해 11월 금호산업의 지분 6.16%를 사들이며 ‘다크호스’로 부상한 바 있다.
증권거래법상 5% 이상(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을 보유하면 보유목적을 금융당국에 알려야 하고 지분 변동이 있을 때도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5% 넘게 주식을 사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 때문에 투자업계는 호반을 금호산업의 유력한 인수후보로 점쳤다.
하지만 호반은 지난 1월 금호산업 주식 34만8000주(1.21%)를 팔아 수십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단순투자 목적’이었다며 인수전 참여를 부인했다.
그러자 시장의 관심도 호반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갔다. 인수전의 초점은 대기업들의 참여여부에 쏠렸다.
이런 가운데 호반은 인수의향서(LOI) 접수마감일인 지난달 25일 의향서를 접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유 주식의 몸값을 높여 처분하려는 의도로 비춰졌다.
하지만 호반은 LOI 제출 직전, 이미 지분 4.95%를 모두 매각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호반건설의 금호산업 주식 평균 매입단가는 주당 1만2392원. 호반이 남은 지분을 전량 처분한 지난달 25일 직전의 주가는 2만6000~2만7000원대였다. 이때는 롯데 신세계 등 대기업들의 참여가 점쳐지며 주가가 한창 치솟을 시기였다. 이후 대기업들의 불참사실이 알려지며 현재는 2만2000원대까지 내려간 상태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투자 석 달 만에 투자금(254억)을 뛰어넘는 280억원 안팎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까지는 주가차익을 노린 단순 지분 투자로 보였다. 인수전 분위기를 한껏 달군 뒤 쏠쏠한 재미를 보고 빠져나온 것.
하지만 호반건설은 지분을 전량 매각해 놓고도 오히려 이전보다 금호산업 인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호반 측은 “시세차익을 노린 주식투자라는 일각의 의혹을 해소함과 아울러 인수전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주식을 처분했다”고 밝혔다.
인수합병 업계에서는 호반의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인수의향서를 낸 기업은 △호반건설 △MBK파트너스 △IMM PE △자베즈파트너스 △IBKS-케이스톤 사모투재펀드 등 5개사다. 사모펀드를 제외하면 호반이 유일하다.
투자업계는 호반의 자금력으로 볼 때, 금호산업을 단독으로 인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다른 기업과 컨소시엄을 형성하려면 지분을 갖고 있어야 유리한데, 지분을 모두 매각한 상태에서 투자자를 모으겠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력기업인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금호터미널, 금호리조트 등 금호가(家) 10개 계열사의 상당 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금호산업은 그룹 경영의 꼭지점에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주식 30.08%를 가진 최대주주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 이르며, 5000억원 규모인 금호고속의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어 이를 행사할 경우 몸집은 더 커진다. 시공능력평가 20위 중견건설사인 호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또한 모 기업을 되찾겠다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의지가 워낙 강해 다른 기업들은 도의 상 인수전 참여를 접은 상태다.
박 회장은 채권단 보유 주식 중 ‘50%+1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이 있다. 인수전에 뛰어든 경쟁자들이 제시한 가격을 보고 1원이라도 더 많은 값을 써내면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가져가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호반건설과의 컨소시엄이 점쳐지던 기업들은 하나둘씩 손을 들고 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과 우오현 삼라마이더스(SM) 회장이 같은 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거론되던 SM그룹은 “애초부터 금호산업에 관심이 없었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에도 이런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최진식 심펙(SIMPAC) 대표도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호반건설과의 컨소시엄에 참여한다는 소문은 사실무근”이라고 공시했다.
한때 롯데와 신세계가 금호산업 인수 후보로 유력시되기도 했지만 이는 양측이 서로 경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신세계는 유통업계 앙숙인 롯데의 참여 가능성을 의식해 인수의향서를 써냈다가 뒤늦게 롯데가 불참한 사실을 알고 하루 만에 의향서를 철회했다.
기업들이 호반과의 컨소시엄을 꺼리는 데는 ‘금호산업은 금호가(家) 소유’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금호산업은 1946년 광주택시로 창립해 60~70년대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들어 ‘금호 신화’를 창조한 기업이다. 토목·건축을 비롯해 공항․물류시설, SOC, 환경, 주택 등 건설 전 분야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치다가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지난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 물류, 항공, 관광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들은 금호산업에 관심이 크겠지만 금호가와의 상도의를 생각해 전부 입찰을 접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호남지역 대표 기업인 금호아시아나를 지키기 위해 호반건설이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역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금호는 산업기반이 약한 호남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지난 70년간 자리매김 해왔다. 지역의 고용창출, 인재육성, 문화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평이다. 또 많은 지역협력업체들과 연관을 맺고 있어 지역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지역사회에서는 금호와 마찬가지로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호반건설이 금호와 맞붙어 이로울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자칫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매각가격만 높아주는 결과를 초래할라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주변 상황이 호반건설에게 우호적이지 않음에도 인수 의지를 굽히지 않자,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만간 치러질 광주상공회의소 차기 회장 선거가 박흥석 현 회장(럭키산업 회장)과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2파전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김 회장이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금호산업 인수 카드를 놓지 않고 있다는 설이다.
금호가 기업들이 박 회장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라 도전장을 낸 김 회장으로서는 금호산업 카드를 거머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20일로 예정된 회장 선거에 앞서 치러질 의원 선거에는 금호계 기업인 금호터미널·금호고속·금호리조트 등과 호반건설 계열인 호반베르디움·호반비오토·호반토건 등이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반건설이 실제 금호산업을 인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금호산업 지분 매각을 컨소시엄 구성에 사용할 실탄 비축을 위한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다. 호반이 KBC광주방송 투자주주들과 인수전 협력을 모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호반이 토목·레저분야 강자인 금호산업을 인수할 경우, 단번에 건설업계 10위권 내로 진입하게 된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CNB에 “채권단 소유 지분 57%가 하나로 묶여 매물로 나온 상황에서 4.95%를 갖고 있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처분하게 된 것이며, 컨소시엄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인수전에 임하려 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광주상의 선거가 금호산업 인수전과 묘하게 맞물리며 돌아가고 있는데, 현지에서는 박삼구 금호 회장이 김상열 회장을 밀어주고, 대신 김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에서 손을 떼는 식으로 두 사람 간 빅딜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산업은행은 입찰적격자들을 상대로 9일부터 5주간 예비실사를 거친 뒤 다음달 말 입찰제안서를 받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올해 6월까지 금호산업 매각 절차가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