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6일 국회에 처음 제출된 지 928일 만이 빛을 보게되는 ‘김영란법’은 모든 공직자는 1년6개월 뒤인 내년 9월부터는 자신이나 배우자가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1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으면 처벌을 면치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금품 수수나 부정청탁이 모두 범죄로 바뀌게 돼 공직사회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강력한 입법 체계가 마련되는 셈이다. 그렇지만 부정청탁의 유형이 여전히 모호한 점, 금품수수 금지의 대상이 민간 영역인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임직원까지 포함된 점 등은 위헌 소지가 있어 향후에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원내 지도부는 애초 김영란법 처리 시한으로 약속한 2월 임시국회가 3일로 끝남에 따라 여야 모두 시한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2일 ‘김영란법’ 처리를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새누리당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수정을 요구한 조항들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날 오전 수용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타결 기대감이 커졌다.
특히 새누리당이 최대 쟁점이었던 ‘언론인과 사립 교원에 대한 법 적용’은 더 문제 삼지 않기로 했는데 특히 이 부분이 여야 협상에 숨통을 터주자 새정치연합은 오후 의원총회를 열어 여당의 협상안을 얼마나 수용할지 등을 두고 막판 당론 수렴에 나섰다.
그리고 위헌 소지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체로 4월 임시회로 처리를 미뤄선 안 된다는 기류가 주를 이뤘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1시간 30분가량의 논의 끝에 새정치연합은 김영란법 처리 여부를 원내 지도부 협상에 일임하기로 한 것이다.
여야 막판 협상은 오후 5시30분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양당 원내대표와 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 법사위 간사가 한자리에 모인 ‘4+4’ 회동이었지만 인사말만 짧게 공개한 여야 지도부는 곧바로 비공개 협상에 들어갔지만 협상은 쉽지 않았다.
여야는 1시간 40분가량 진행된 1차 협상에서 다른 쟁점들은 대체로 합의를 이뤘지만 직무 관련성 조항에서 여야 입장이 갈리며 막판 진통을 겪다가 결국 1시간20분가량 회동을 중지한 뒤 저녁 8시께 다시 머리를 맞댔고, 2시간 20분이 지난 오후 10시 20분께 최종 협상 타결 소식을 전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굵직한 원내현안과 관련한 첫 협상이었는데, 비교적 성공리에 협상을 마친 셈이 됐으며,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의 향후 협상에 기대를 가져보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김영란법을 심의·의결한 뒤 오후 본회의로 넘겨 이 법을 처리할 계획이다. 위헌 소지 및 과잉입법 논란 등을 이유로 적용범위 확대에 반대해온 새정치연합 소속인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여야 합의가 이뤄질 경우 이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본회의 전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막판 진통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한편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9월부터 정식으로 시행되면 주요 표적인 공직사회는 물론 이를 매개로 얽혀있는 사회 각 부문에 걸친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거듭된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이 사실상 통과되자 재계에서는 앞으로 대관 접촉 관행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김영란법이 오히려 불법과 편법을 조장하고 정치권에 기업이 휘둘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의 한 고위간부는 “공무원을 만나는 것은 청탁을 하고 뇌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것인데 사람을 만나면 밥을 먹고 돈을 쓰면서 어떻게 그것을 100만원 미만으로 따져가면서 쓰라는건지 현실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김영란법이 발효되면 불법적인 도청, 도촬이 판을 치게 되면서 마구잡이식의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되기 때문에 기업 손보기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어 이를 방지할 수단이 먼저 구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