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기자 | 2015.01.16 20:00:34
(CNB=최원석 기자) 경마에서 성적이 좋은 말은 은퇴하고 나서도 값이 크게 뛴다. 그 이유는 씨를 주는 씨수말이 되기 때문이다.
경마에서는 혈통이 좋은 말의 우승확률이 높기 때문에 혈통을 까다롭게 따진다. 씨수말에서 나온 자마(새끼말)들이 경마에서 거둔 성적에 따라 씨수말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
지난 11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본부장 김병진)에서 펼쳐진 5경주(1600m)에서 ‘돌아온현표(3세, 수말)’는 1600M 첫 도전에 나선 3세 새내기의 걸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력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2위마와 9마신(22m)차 대승을 이끌었다. 체중도 불어 516kg의 건장한 체형을 보여줘 여느 1군마 못 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마필관계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여기에 ‘돌아온현표’의 아버지 민간씨수말 ‘컬러즈플라잉’ 역시 최근 자마들의 활약으로 올해 교배료가 400만원으로 지난해 보다 100% 인상됐다. 그만큼 혈통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
지난해 ‘컬러즈플라잉’의 자마들은 지난해 브리더스컵(GⅢ)에서 고가의 메니피의 자마들을 제치고 1, 2위를 차지했다. 2세마 유망주를 발굴하는 브리더스컵에서 ‘컬러즈플라잉’의 자마들이 싹쓸이한 것은 그동안 2세마 경주에서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메니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일대사건이었다.
이들 외에도 지난 11월 29일 4경주에 출전한 ‘로열스타’는 1000M를 1분 00.9초의 호기록에 2위마를 무려 11마신차로 제쳐 이슈가 됐다. 현재 경주에 출전한 ‘컬러즈플라잉’의 자마들은 모두 32두이고, 이 중 11마리가 우승을 기록할 정도로 한국경마 빛낼 혈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컬러즈플라잉’은 현역시절 평범한 경주마였다. 7번을 경주에 출전해 1승 2위1회 3위 3회의 성적을 거뒀다. 한국경마의 대상·특별경주 격인 블랙타입 경주 우승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평범한 ‘컬러즈플라잉’인데, 그 자마들이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부마와 모마로부터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컬러즈플라잉’의 아버지는 1회 교배료가 15만 달러에 달했던 전설적인 씨수마 ‘에이피인디(A.P.Indy)’다. 미국 삼관마인 ‘시애틀 슬루(Seattle Slew)’의 자마로 태어나 2011년 씨수마 생활을 은퇴한 ‘에이피인디’는 현역시절 ‘벨몬트 스테익스’, ‘브리더스컵 클래식’ 등에서 우승을 하며 올해의 경주마에 선정됐고, 은퇴 후에는 약 20년간 씨수말로 활동하며 총 135두의 그레이드(Grade)급 경주 우승마를 배출하며 두 번이나 미국 리딩사이어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컬러즈플라잉의 자마들은 지난해부터 데뷔했기 때문에 주로 단거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혈통 특성상 장거리에서도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며 “메니피의 자마들이 2천미터 이상의 장거리 경주에 유독 약한 면을 보여 한국경마를 대표하는 혈맥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국내는 ‘메니피’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씨수말의 관심이 ‘메니피’에게 집중된 바 있다. 실질적으로 현재까지 보여준 ‘메니피’의 성적은 막강하다. 2007년 국내에서 첫 교배를 시작한 ‘메니피’는 2010년 퍼스트크롭(first crop) 리딩사이어에 올랐고, 2011년에는 리딩사이어 2위에 오른 바 있다.
이후 2012~2014년에 3년 연속 리딩사이어에 선정됐다. ‘메니피’의 자마는 부상이나 질병 등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한 1억 원을 보장 받을 정도로 ‘메니피’ 광풍은 거세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씨수말 부문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렛츠런파크 부경에서 뜨고 있는 ‘컬러즈플라잉’ 등 최근 유능하고 기대치 높은 씨수말이 대거 도입돼 이슈가 된 바 있다. 2013년에는 ‘록하드텐’, ‘채플로열’이 도입돼 씨수말로 활동 중이고, 최근에는 ‘티즈원더풀’과 ‘한센’이 도입됐다. 도입된 씨수말들은 단순히 이름값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부문도 있지만 이들이 더욱더 환영을 받고 있는 이유는 ‘메니피’를 능가할 만한 혈통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경주마 생산에 있어 가장 큰 열망은 우수한 경주마를 생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수한 경주마를 생산하기 위한 정도와 방법은 없다. 다양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우수한 경주마를 생산할 수 있다.
국내에선 지난 2005년 이후부터 고가 씨수말을 도입해 경주마 생산에 노력을 기울였고, 경주마의 전력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메니피’를 필두로 특정 소수의 씨수말에 의존해 교배가 이뤄진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된다. 혈통에 있어 정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물 안 개구리식의 경주마 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단,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우수 씨수말과 씨암말이 대거 도입됨으로써 경주마 생산에 있어 다양성을 구축할 수 있고,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돼있다.
가까운 일본은 ‘선데이사일런스’라는 씨수말로 인해 경마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과연 국내에서도 한국형 ‘선데이사일런스’가 탄생할 수 있을지 향후 국내 씨수말들의 활약에 더욱더 기대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