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안은 공정률에 따라 대금이 입금되는 건설업의 회계 특성상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데다, 건설업계 전반에 만연한 회계 관행에서 문제가 비롯됐다는 점에서 징계여부를 결정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략적인 분위기는 대우건설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건설업 회계 특성 반영…금감원 심의 ‘신중’
미수채권 등 변수 많아 ‘널뛰기 회계’ 불가피
악성제보로 ‘리스크 추정→회계 손실’로 둔갑
금감원 관계자는 7일 CNB에 “약 1년 2개월에 걸쳐 진행된 대우건설에 대한 회계감리가 마무리됐으며, 조만간 감리위원회에 심의를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번 달 보고서 검토를 마친 뒤, 금융위원회가 주관하는 감리위원회에 대우건설 건을 회부키로 했다. 징계여부는 감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금감원 측은 사안의 특성상 징계여부를 점치기가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사실 조사는 끝났지만 이 결과를 놓고 (감리위원회에서) 상당한 검토와 토론과정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안자체가 복잡한데다 건설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심의 과정에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감리위원회에 각계 전문가를 불러 건설업계의 회계 관행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가질 예정이다. 장기 기성에 따라 매출 및 손실이 발생하는 건설업의 회계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건설업계의 주장이 반영될 경우, 대우건설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의 또다른 관계자는 “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대우건설의) 고의성을 판단하기 쉽지 않아 제재 수위는 무겁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번 회계감리는 금감원이 지난 2013년 12월 대우건설이 국·내외 건설현장 수십곳에서 1조원 가량의 부실을 감췄다는 내부 제보를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금감원은 제보자로부터 2013~2017년까지 연도별로 예상되는 손실 등을 예측한 내부문건을 확보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측은 ‘내부자료 추정치’가 실제 ‘회계상 손실’로 잘못 해석되면서 빚어진 오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우건설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CNB에 “이번 사건은 회사 내 불만세력이 회사가 최악의 경영난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짜둔 것을 외부로 유출해 금감원과 언론에 제보하면서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고 귀뜸했다.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도 분식회계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지난해 2월 기자간담회에서 “대우건설이 향후 착공 예정인 건설사업에서 얼마까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리스크 관리 차원에 작성한 자료며, 이 자료는 산업은행과 회계법인 등에도 공유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대우건설 내부자료에 따르면, 대우건설 전략담당 부서는 수익 창출 가능 사업의 이익, 향후 원가절감 및 Claim 회수를 통한 수익 개선, 부동산 등 건설 경기 회복 시 발생 가능한 이익 증가분 등 미래가치를 일절 배제했다.
당시 건설경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다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 대형건설사들의 실적악화가 발표되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이 자료를 만들었다는 게 대우 측 주장이다.
금감원은 이 문건의 진위 여부는 물론 개별 사업장에서 실제 분식회계가 있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봤다. 조사 대상 사업장만 70여곳이 넘는데다, 대우건설과 회계법인이 제출한 자료까지 검증하면서 1년 이상 조사가 진행됐다.
분식회계는 기업이 재정 상태나 경영 실적을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려 계산하는 회계 방식을 이른다. 이는 주주와 채권자들의 판단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돼 있다.
건설사들은 공정률과 원가변동, 외상거래(미청구공사) 관행 등 건설업 특성을 고려할 때, 일반기업과는 회계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계방식이 워낙 복잡해 경영상태를 한 눈에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고의성이 전제되는 분식회계와는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건설업 특성상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협력업체에 자재를 공급하고도 물건값을 제때 결재 받지 못해 손실처리 됐다가 뒤늦게 자금이 들어와 이익으로 상계 되는 경우 등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실제로 최근 계속되고 있는 건설·조선업계의 어닝쇼크도 이런 회계방식이 배경이 됐다.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은 어닝쇼크 전인 2010년 7000억~8000억원이던 미수채권(미청구공사)이 2012년에 2조원을 넘어서면서 9000억~1조원의 영업손실이 터졌다. 지난해 수천억원의 손실을 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2010년 4조원대이던 미수채권이 지난해 5조~6조원으로 불었다. 반대로 현대건설은 2013년 업계가 어닝쇼크에 빠졌을 때도 800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냈다.
이처럼 일순간 수조억원대의 적자나 흑자를 내는 경우가 업계에서는 허다하다.
금감원이 대우건설에 대해 경징계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도 이런 건설업의 회계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우건설에 대한 감리가 분식회계로 결론 날 경우, 미래 손실을 추정해 대손충당금을 미리 설정하는 건설업계 회계 관행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어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금 거래로 원가와 이익을 곧바로 회계에 바로 반영하는 유통, 서비스, 제조업 등과는 전혀 다른 회계 구조를 갖고 있는 게 건설업종의 특성”이라며 “공정률에 따라 대금이 입금되는 만큼 실제 손익을 따지려면 공사가 끝나봐야 안다”고 전했다.
대형건설사의 기업회계를 맡고 있는 한 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기성에 따라 매출 및 손실이 반영되는 건설업체들에게 제조업과 동일한 회계기준을 적용하면 건설업계 전체가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만큼 (대우건설 징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