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춘천시의회가 과거와는 다른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마디로 확 달라졌다. 새해 예산을 다루는 현장은 말 그대로 청문회를 연상케 했다. 이런저런 친분으로 얽힌 예산의 정글은 초선 의원의 날카로운 공격에 추풍낙엽이었다. 다선의원들은 뒷문을 단단히 잠그며 초선의원을 지원했다. 당황해 하는 행정부의 모습도 쉽게 목격됐다. 그간 금기시 되던 관변단체의 예산에도 칼질이 가해졌다. 한 초선의원은 이를 두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 수 있지만...."이라고 담담하게 심경을 토로했다. 한 표가 아쉬운 선출직으로서 행정부 언저리를 서성이는 단체나 협회 등 예산 삭감은 곧 적을 더 늘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춘천시의회는 지난 1일부터 19일까지 제252회 정례회를 열고 상임위원회별 조례안 심사와 소관 국소별 업무보고를 가졌다. 또 2015년 당초 예산안과 기금,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의·의결했다.
이번 정례회는 민선6기 들어 처음으로 당초 예산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
특히 새해 예산안을 심의·의결하고 계수조정을 담당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중일. 부위원장 황찬중)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이번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모두 9명으로 구성됐다.
한중일 예결특위 위원장을 필두로 황찬중 부위원장, 유호순·남상규·박순자·변관우·손우철·이대주·이상민 의원이 그들이다.
예결특위 가운데 유호순(3선)·한중일·황찬중(재선)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초선이었다.
초선의원이 주축이 된 이번 예결특위는 구성과 함께 본격적인 예산분석에 들어갔다.
'밤을 잊은 시의회'라고 할 만큼 '밤샘학습'은 계속됐다. 주말에도 자정을 넘기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런 결과는 예산 심사에 그대로 반영됐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계수조정 심의를 통해 내년도 예산안 중 35건 23억3000만원을 삭감하고 전액 예비비로 전환했다. 이는 앞서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에서 삭감된 79건 89억원에 비해 크게 줄어든 액수다.
관변단체 두 곳의 예산 9000만원이 전액 삭감됐다.
이들 관변단체들은 전국대회에 참가하는 여비와 봉사활동비, 교육비 등을 시 예산을 받아 사용하려다 발목이 잡혔다. 관변단체의 예산 삭감은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역대 의회에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통과시키곤 했다.
노동계 예산 5000만원도 전액 삭감됐다.
이 단체는 태백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키 위해 이동하는 버스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행사장에서 저녁 회식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50분 만에 태백에서 춘천까지 돌아오는 신기를 연출했다고 보고했다. 태백~춘천 구간은 통상적으로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이런 불가능한 상황이 예산안에 녹아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양한 행사 예산을 지원받은 후 시일에 쫓기자 한 번에 실시한 것처럼 회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헤프닝으로 예산서 속에 숨겨진 꼼수의 전형적인 사례다.
잘 숨겨진 꼼수 예산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예산안의 속살까지 살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만 한다. 이번 예결특위 위원들의 학습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속칭, '복지 장사꾼'의 사례도 예산 삭감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A복지기관은 안정적인 노인복지를 앞세워 국비와 도비 및 시비가 연계된 신규사업 예산을 신청했다.
한 번 지원하면 해마다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것으로, 일부 복지기관은 이런 프로그램 진행을 명목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인건비는 예산으로 해결하고 있다.
시 외곽에 설립된 A복지기관은 직원 2명 인건비와 출퇴근 교통비 5743만원을 시 예산으로 지원해 달라고 신청했다. 일반 사업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복지기관은 특별하지 않은 현상이다. 물론 전액 삭감됐다.
B장애인단체가 신청한 예산 7073만원도 송두리째 잘려나갔다.
38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이 단체는 20여 명의 회원이 각기 다른 사업에 중복 참여해 사업비를 수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 회장은 예결특위 위원에게 '무슨 원수라도 진 게 있느냐'는 식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예결특위 위원 가운데 일부 의원은 주관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에서 삭감된 예산을 본심사 과정에서 되살리는데 주력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또 예결특위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의원은 자신과 관계된 예산이 반영되도록 동료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익단체들의 실력 행사도 있었다.
브랜드콜 택시와 관계된 개인 및 법인택시관계자들은 일주일 간 시의장 면담과 시의회 방청 및 귀빈실에 모여 심의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등 예산안 심사 전 과정을 지켜봤다. 브랜드콜택시 3억원은 당초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에서 삭감됐으나 본심사에서 편성됐다.
새마을운동 춘천시지회 회원 30여명은 시의회를 방문해 의원들과 개별 접촉하는 등 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내일을여는멋진여성 강원협회·춘천시지회도 18일 예결위원들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낸 데 이어 19일 시의회를 방문해 의원들을 대상으로 입장을 설명했다.
대한노인회 춘천시지회 회원 20여명도 18일 예산이 삭감된 데 불만을 품고 시의회를 항의방문한 데 이어 본회의가 열린 19일 오전 시의회 로비에 자리를 펴고 입회하는 의원들에게 '잘못 뽑아서 죄송하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 부모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신 의원님들' 운운하며 시위했다.
하지만 제9대 시의회는 출범 후 첫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 과정에서 기준과 원칙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남상규 의원(초선. 소양동·조운동·약사명동·근화동·신사우동)은 "예산의 적정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다룬다는 원칙을 세우고 활동에 들어갔다. 선배 의원들의 자문과 동료 의원들 간 학습이 큰 도움이 됐다"면서 "다만 복지단체와 기관단체의 사업을 다루면서 참담한 마음이 들었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회유와 압박도 있었다. 이를 수용하는 것은 기준이 흔들리는 것인 만큼 의정활동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업비를 삭감하면 파생되는 효과, 즉 복지예산의 경우 대부분 인건비인데, 이를 삭감하면 당사자는 생업이 흔들리는 것이어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한편 춘천시의회는 19일 제252회 정례회 제3차 본회의를 열고 조례안 15건과 공유재산관리계획안 1건, 2014년도 제2회 추가경정세입세출안, 2015년도 당초 세입세출예산안, 2015년도 기금운용계획안을 원안 가결하고 폐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