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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박원순 시장, ‘가락시장 현대화’ 농어민 입장에서 숙고하길

‘유통·거래구조 다양화’만이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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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4.12.16 15:43:19

(CNB=도기천 정경부장) CNB가 지난 12일 단독보도한 <박원순 서울시장 ‘도매시장 경매 축소’ 논란 일파만파>제하 기사의 반향이 뜨겁다.

보도가 나간 뒤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서울시의회, (사)수산비상장품목협회, 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등 이해당사자들의 전화가 빗발쳤고 여기저기서 해명자료를 보내왔다. 내막을 전혀 몰랐던 시민들의 문의가 쏟아졌고, SNS를 통해 기사가 퍼날라지고 있다.

이번 보도는 전국 최대규모인 가락동농수산물시장 내에서 그물처럼 얽혀있는 농수산물의 유통망을 언론 최초로 심층보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출하주,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시장도매인 등 듣기에도 생소한 이들 간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생생하게 취재했다. 

보도의 요지는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의 관리주체인 서울시가 지난 30년간 진행돼온 농수산물의 경매방식을 직거래방식 등으로 다양화하면서 농어업인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다.  

가락시장은 1985년 개장한 이래 지난 30년간 경매를 통해 산지출하 물량을 소비시장에 공급해 왔다.

현행 농수산물안정법(농안법)은 농어업인 보호와 공정한 농수산물가격 형성을 위해 도매시장법인이 출하주(농어업인 등)로부터 위탁 받은 농수산물을 경매 또는 정가수의 거래를 통해 중도매인에게 넘기도록 하고 있다.

정가수의 거래는 최고가 낙찰인 경매와 달리 출하주가 가격을 정해 도매시장법인에 생산품을 넘기면 시장법인이 이 가격에 사겠다는 중도매인에게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시장에서는 경매와 정가수의를 묶어서 ‘상장거래’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서울시는 상장거래품목을 꾸준히 줄이고 있다. 한때 가락시장 내 거의 모든 품목(164개)이 상장을 통해 거래됐지만 현재는 104개(63%)로 줄었다. 

서울시는 유통단계가 줄면 비용이 절감돼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직거래인 시장도매인제도를 장기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시장도매인제도는 기존의 ‘출하주-도매시장법인-중도매인’으로 형성된 거래구조를 ‘출하주-시장도매인’으로 줄이는 것이다. 사실상 상장 없이 출하주와 도매인간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현재는 중도매인이 대형마트, 재래시장 등 소비자 시장에 물량을 공급하고 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출하주가 직접 유통업체, 재래시장법인과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서울시는 가락동도매시장 현대화(재건축)시설을 설계하면서 거래 장소를 경매(상장)장, 출하주-중도매인 거래소, 출하주-시장도매인 거래소 등 3가지로 구분 설계했다. 

현지 농어민 편에서 면밀히 살펴야

이처럼 거래방식이 다양화될 경우,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결정권을 시장법인이 아닌 중도매인(또는 시장도매인)이 쥐게 돼 공정성을 보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출하량과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경매와 달리, 상장예외품목은 거래내역을 중도매인이 도매시장 개설자(서울시)에 자진 신고토록 돼 있기 때문에 얼마나 성실하게 신고할 지도 의문이다. 관리가 허술해진 틈을 타 원산지 허위 표시 등 불법행위도 우려된다.

서울시는 공적기관인 시장관리운영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공사와 중도매인이 함께 참여하는 정산법인(결재·회계전문회사)을 설립해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정책방향은 농어민이 아닌 도매인과 소비자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농어민들 입장에서 보면 현재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생산물을 처분해야 한다.

기존 경매(상장)방식, 출하주-중도매인 간 직거래, 출하주-시장도매인 간 직거래 등 거래구조가 여러 갈래로 넓혀질 경우, 현지 출하주(농어민 등)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을 선택하기 위해 상당한 정보력을 동원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

도매인들 간의 담합, 매점매석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열려있다. 생산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빠른 처분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보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현재의 경매방식을 고집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논란의 시작은 형식적인 경매, 물량조절 기능의 저하 등 경매를 맡아온 시장법인들이 제 역할을 못한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독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가수의매매 품목을 탄력적으로 확대하고 시장관리위원회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출하주로부터 떼는 경매수수료율을 낮추는 등 변화가 필요하다. 산지 물량관리에도 법인들이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서울시는 가락시장의 유통가격이 전국 도매물량가격의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거래구조 다원화에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잘못된 것은 고쳐 쓰면 되지, 판을 뒤집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의 눈에 농어민들은 ‘서울시 유권자’가 아니라서 뒷전이 된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CNB=도기천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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