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넉넉지 않은 인수 자금, 오랜 앙숙이 돼 버린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의 관계, 호반건설을 비롯해 금호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투자자 등 인수까지는 상당한 난관이 예고돼 있다.
그룹의 불투명한 회계구조를 살피고 있는 검찰과 정치권도 부담이다. 박 회장이 이런 난관을 딛고 금호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CNB가 금호가(家) 안팎을 전방위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그룹사활 건 금호산업 인수전, 복병 만나
호반건설 3대주주 등극…속내 파악 ‘촉각’
오랜 앙숙 ‘동생 박찬구 회장’ 역할 주목
정권실세와 유착, 비자금설…‘산 넘어 산’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그룹)은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인수전 △아시아나항공 워크아웃 졸업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졸업 등 사활이 달린 굵직한 사안들을 마주하고 있다.
특히 금호산업 인수는 그룹 재건의 첫 단추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최근 크레디트스위스와 법무법인 태평양이 참여한 컨소시엄을 매각 주간사로 선정했다. 이달부터 매도 실사를 벌여 내년 1월 중 매각 공고를 내고 상반기에 매각을 완료할 계획이다.
금호산업은 그룹의 모기업이다. 1946년 광주택시로 창립해 60~70년대 경부선과 호남선 고속버스 사업에 뛰어들어 ‘금호 신화’를 창조한 기업이다. 1995년 중국 우한에 첫 합작회사를 설립해 해외 운수시장에 진출했다. 1999년 사업구조 재편에 따라 금호타이어(주)와 합병해 지금의 금호산업을 출범시켰다. 이후 토목·건축을 비롯해 공항․물류시설, SOC, 환경, 주택 등 건설 전 분야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쳤다.
인천국제공항, 무안국제공항,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등 굵직한 SOC사업에 참여해 명성을 날렸으며, 신공항고속도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민자사업에도 손을 댔다.
또 금호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금호터미널, 금호리조트 등 금호가(家) 10개 계열사의 상당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호산업은 대우건설 인수 등 무리한 M&A(인수합병)로 유동성 위기를 겪다 지난 2010년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가 사실상 주인 없는 기업이 됐다.
현재 채권단은 산업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과 재무적 투자자 등 50여 곳이며, 워크아웃 과정에서 감자와 출자전환으로 금호산업 지분 57.5%를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 일가가 보유한 금호산업 지분은 10.4%다. 박 회장이 5.3%(176만446주)를, 박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5.1%(169만5733주)를 갖고 있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으려면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중 최소 39.6% 이상의 지분을 가져와야 한다. ‘50%+1주’ 이상이 확보돼야 경영권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채권단 보유 지분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는 박 회장이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우선매수청구권은 채권 소유자가 주식을 제3자에게 매도하기 전에 채무자(박 회장)가 같은 조건으로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이른다.
문제는 박 회장이 얼마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지다. 물류․건설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금호산업은 항공, 터미널, 리조트, 주택 등 다양한 사업군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때문에 이번 인수전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금호산업의 시가총액이 5천억원을 넘고,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의 현재 가치만 3천억원을 웃돌고 있다는 점에서, 인수전이 가열될 경우 최대 1조원까지 실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박 회장 측이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가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2012년에 사재 2200억원을 투자해 금호산업 유상증자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때 이미 실탄의 상당부분이 소진됐을 수 있다.
박 회장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과거 금호석유화학 지분 5.3%를 매각해 확보한 2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아들인 박세창 부사장이 보유 중인 금호산업(5.1%)과 금호타이어(5.22%) 지분은 이미 담보대출을 받은 바 있어 추가로 대출받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호반건설의 금호산업 지분매입 등으로 주가가 치솟은 상황이라 인수자금이 더 들어갈 수도 있다. 호반건설은 최근 금호산업 주식 204만8천주를 사들여 지분율이 6.16%에 이른다. 박삼구 회장과 특수관계인(10.6%), 미래에셋삼호(8.8%)에 이어 3대주주 자리에 올라섰다.
호반건설의 등장으로 금호산업 주가는 급상승했다. 지난달 초 1만2000원을 오르내리던 주가는 한때 2만원을 돌파했다가 현재 15250원(4일 종가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호반건설은 ‘단순 투자 차원’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호반이 사실상 인수전에 참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호반이 공시의무를 지니는 ‘5%룰’을 넘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5%룰’은 상장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게 된 경우, 이때부터 해당 법인 주식 총수의 1%이상 변동되면 5일 이내에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등에 보고토록 의무화한 제도다. 투기펀드의 기업사냥, 기업 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대응책으로 2005년 도입됐다.
따라서 금융당국과 여론의 눈치를 봐야하는 기업들로서는 단순투자목적으로 5%이상 지분을 사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증권가 한 소식통은 “호반건설이 (최근 몇 년새) 한국토지주택공사(LH) 물량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경쟁사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5%룰을 넘기면서까지 지분을 매입한 것을 순수투자목적으로 보기는 석연치 않다”며 “박삼구 회장의 애타는 심정을 이용해 결정적인 순간 고가에 지분을 처분하려는 속셈이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실제로 호반의 지분 매입 이후 아시아나항공 등 금호 계열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박 회장이 호반건설의 지분 참여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그룹의 핵심라인을 경질했다는 소문도 있다.
지난달 그룹 임원들 중 상당수가 일제히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증권가에서는 호반건설의 등장으로 과열된 매각 분위기를 식히려는 박삼구 회장의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직원은 “호반건설이 금호산업 인수전에 뛰어든 지난달부터 회사 분위기가 살얼음판”이라고 전했다.
박 회장이 호반건설의 등장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동생 박찬구 회장과의 오랜 갈등이 배경이 되고 있다. 호반의 뒤에 박찬구 회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들 형제의 다툼은 재계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들은 수년간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소송과 고발, 고소를 남발해 왔다.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한때 형제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지만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견해 차이를 보이며 틀어졌다. 대우건설 등의 인수는 결국 그룹 전체를 뒤흔드는 유동성의 위기를 불러왔으며 형제간 갈등은 더 커졌다.
이후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의 계열분리를 시도하면서 지분 경쟁이 벌어졌고 2009년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둘 사이는 더욱 악화됐다.
마침내 2011년 박찬구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계열에서 제외해 줄 것을 신청하면서 형제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은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검찰에 기소됐는데 그 배경에 박삼구 회장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박찬구 회장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횡령·배임 등 혐의로 지난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박찬구 회장도 즉시 반격에 나섰다. 박 회장은 지난 9월 형 박삼구 회장을 40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양측은 현재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간 상표권 소송을 비롯, 아시아나항공 주식매각청구소송,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 결의 무효소송과 형사고발건 등으로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심지어 박삼구 회장이 박찬구 회장의 운전기사를 고소한 사건도 있다.
때문에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을 앞세워 호반건설과 손잡고 금호산업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박삼구 회장 측이 인수자금을 조달하는데 태클을 걸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금호석유가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12.61%를 보유한 2대주주인 만큼 박삼구 회장으로서는 호반의 동향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금호석유는 이런 시나리오에 손사레를 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4일 CNB에 “호반건설의 등장은 우리도 전자공시를 보고 처음 알았다”며 “현재 회사 사정상 인수전에 참여할 여력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정권실세와 끈끈한 인연… 덕 될까 독 될까
문제는 넉넉지 못한 인수자금, 호반건설의 등장 뿐이 아니다. 최근 사정당국이 회계문제 등을 구실로 그룹을 들여다보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검찰은 최근 박삼구 회장이 실체가 아리송한 시행사를 앞세워 부동산개발 사업을 빌미로 수백억원대의 회계 부정을 저지른 혐의를 잡고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치권과의 연루설이 음으로 양으로 증권가에 퍼지면서 주주들과 채권단, 야당으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김 실장의 부인 박화자 여사가 박 회장과 같은 광주 출신인데다, 박 여사의 오빠(김 실장의 처남)가 금호에서 임원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김 실장과 박 회장 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박 회장이 이사장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는 이홍구 전 총리와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이사진에 포진해 있거나 최근까지 이사를 역임했다. 자칫 금호산업 인수과정에서 특혜시비가 일 경우, 이런 배경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인수전을 계기로 형제간 극적인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금호산업이 제3자 손에 넘어갈 경우 사실상 금호그룹이 공중분해 되는 것인 만큼 결정적인 순간에 박찬구 회장이 ‘백기사’로 등장할 가능성이다. 금호석유가 직접 자금지원에 나서거나, 호반건설 등 주주들을 설득해 금호산업을 금호가(家) 품에 안착시키는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금호와 마찬가지로 호남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이기 때문에 인수전에서 오히려 우군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며 “금호산업이 다른 기업에 넘어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인수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금호산업 인수에 그룹 전체의 사활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어떻게든 인수에 성공하고 워크아웃을 졸업해 금호의 옛 명성을 회복하겠다는 게 전 임직원들의 확고한 각오와 의지”라고 강조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