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정경부장) 지난달 23일은 우리 항공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긋는 날이었다. 한국항공대학교 연습용비행기 8대가 수색비행장을 이륙해 제주에 새둥지를 틀었다. 실로 60여년만의 ‘외출’이었다.
항공대는 1955년부터 학생들의 비행훈련 목적으로 학교 앞 수색비행장(경기도 고양시 소재)을 이용해 왔는데, 비행훈련장소를 이날 대한항공이 운영하고 있는 제주 정석비행장으로 옮겼다.
이번 일은 북한과 인접한 수도권 훈련기지가 후방으로 이전했다는 점에서 비행훈련시스템의 변화 뿐 아니라 군사전략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문제는 이전이 급작스럽게 이뤄져 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수도권 개발로 인해 비행교육환경이 나빠졌기 때문에 부득이 훈련장을 옮기게 됐다고 밝혔지만, 훈련생들은 인근 주민들의 소음 민원에 밀려 이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전 결정이 국정감사 직전에 이뤄져, 지역 정치인들이 국감을 구실로 외압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고 있다.
설왕설래(說往說來)가 무성한 연유는 학교 측과 학생들 간의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수년전부터 이전을 준비해 왔다지만 훈련생들은 갑자기 이동 통보를 받았다. 훈련장소가 정석비행장으로 바뀌면서 4학년생 대부분이 제주도로 내려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3학년생들은 아예 비행훈련이 중단됐다. 숙식과 운항횟수 등 제주 현지 사정상 4학년생들이 졸업해야 비행훈련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전이 결정되던 날까지도 아무 말을 듣기 못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관련기사 : [단독]소음은 멎었지만…항공대 비행장 이전 ‘빛과 그림자’)
이러한 훈련생들의 사기 저하는 군 전력 약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항공대는 운항과 3,4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연간 120시간(군 입대학생 기준) 안팎의 비행훈련을 실시하고 있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졸업과 동시에 공군 파일럿으로 복무한다.
굳이 군의 사기 문제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좀 더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 세월호 사건 등 최근 발생한 국가적 참사는 어른들이 만들어 둔 ‘일방통행 세상’으로 인해 발생했다. 채 피지도 못한 꽃들이 스러져갔다는 죄스러움에 한동안 등교하는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이번 항공대 문제의 취재과정에서도 어른들의 무심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것이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으로 불거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학교 측은 지금이라도 훈련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훈련 차질이 없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함은 물론 부모 곁을 떠나 먼 타지에서 식은 밥을 먹게 된 청년들을 어떻게 위로해 줄까를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
예산이 모자라면 항공대 학교법인인 정석인하재단을 소유하고 있는 대한항공(한진그룹)에라도 도움을 구해야 한다.
항공대는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 조국 하늘을 지키고자 나선 수많은 청년들의 피와 땀이 밴 우리나라 항공역사의 산 전당이다.
언젠가 우리 손으로 비행기를 만들 날이 올 것이라는 꿈 하나로 정비복 한 벌 갖춰 입지 못한 채 주린 배 움켜쥐고 기름밥으로 견뎠던 60여년전 젊은이들의 순결한 조국애가 오늘의 항공대를 만들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 자신을 위해 이 학교에 온 것이 아니라 조국에 몸 바치기 위해 왔다”는 한 훈련생의 외침에 답할 차례다.
(CNB=도기천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