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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엘 미스터리’ 일파만파…수천억 자금 어디로 갔나?

[심층취재]채권은행 vs 보험공사 책임공방 속 ‘의혹 눈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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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4.10.28 10:24:00

▲모뉴엘의 어느 직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제주 사옥 내 직원들의 모습. 회사의 갑작스런 법정관리 신청 발표가 있은 지난 20일 직후의 모습이다. 이 직원은 “그날 회사에 출근해서야 법정관리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사진=블로그 캡쳐)

잘나가던 중견업체 모뉴엘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금융당국이 모뉴엘의 거래은행들을 상대로 27일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검찰도 이번주 중 사건을 배당하고 정식 수사에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10개 시중은행이 모뉴엘에 빌려준 돈은 6768억원에 이르며, 무역보험공사, 서울보증보험 등이 수천억원대의 보증을 선 상태다. 사상초유의 금융사고가 우려되는 가운데 금융권은 올해 초 발생한 ‘KT ENS 대출사기’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CNB=도기천 기자)

여신 피해액 6700억원…돈 행방 ‘오리무중’
무역보험공사 3200억 보증, 사상 최대 규모
여신은행 vs 보증사, 수출채권 조작 책임공방
檢, 박 대표 리베이트·비자금 조성 여부 ‘주목’

금융감독원은 27일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10개 시중은행에 검사팀을 파견, 모뉴엘 여신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이들 은행이 모뉴엘에 6768억원의 여신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관련 서류를 제대로 검토했는지, 의사결정에 문제점이 없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모뉴엘에 대한 은행별 여신은 기업은행이 1508억원으로 가장 많고, 산업은행 1253억원, 수출입은행 1135억원, 외환은행 1098억원, 국민은행 760억원, 농협 753억원, 기타 261억원 등이다.

이중 담보여신은 3860억원이며 담보없는 신용대출도 2908억원이나 된다. 수출입은행은 여신 전액(1135억원)이 담보 없는 신용대출이었으며, 산업은행 499억원, 기업은행 453억원,외환 235억원, 국민 294억원, 농협 185억원, 기타 107억원 순으로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줬다. 모뉴엘이 파산하면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은 대규모 손실 처리가 불가피하다.

관세청, 수개월전 조작 정황 포착

당국은 이번 금감원의 검사착수 이전부터 모뉴엘의 수출채권 조작 등에 대한 혐의를 잡고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모뉴엘은 현지 수입업체와 짜고 신용장 등 수출서류를 거짓으로 작성한 뒤 이를 근거로 수출채권을 발행해 금융권에 할인 판매했다.

수출채권은 거래처에 납품하면서 나중에 돈을 받기로 하고 현금 대신 수출환어음으로 결재받는 것을 이른다. 모뉴엘은 이 어음을 은행 등에 할인해서 팔거나 담보로 잡혀 돈을 빌려왔다.

관세청은 모뉴엘이 수출액을 부풀려 관련 서류를 조작해온 정황을 수개월간 조사를 통해 확인했으며, 조만간 박홍석 모뉴엘 대표 등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수사당국은 실제 수입업체가 어느 정도 선에서 모뉴엘과 공모했는지, 채권 자체가 조작됐는지 아니면 관련 서류만 조작했는지 등을 면밀히 살필 예정이다. 또 이 과정에서 모뉴엘이 은행 등에 리베이트를 건넸는지, 비자금 등 불법 자금이 조성됐는지도 들여다볼 예정이다.

특히 당국은 담보대출 3860억원 중 일부 부동산 담보대출을 제외하고 3200억원 정도가 무역보험공사(무보)의 보증서를 근거로 여신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무보는 수출실적증명서, 현금입출금명세서 등을 근거로 모뉴엘의 여신은행들에 보증서(선적후신용보증)를 발급해줬다. 은행들은 이 보증서를 믿고 모뉴엘에 자금을 대줬다. 모뉴엘은 여신만기가 돌아오면 다시 서류를 조작(가공(架空)매출)해 채권을 발행하는 일종의 ‘돌려막기’를 해왔다.
 
모뉴엘의 매출 대부분이 수출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무보가 1차적인 책임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검찰과 금감원은 무보와 은행들을 상대로 서로 간에 오간 서류들을 전면 검토할 예정이다.  

▲IFA 2014 전시회 당시 모뉴엘 부스. (사진=모뉴엘)

무보 “피해액 집계 상당시일 소요”

무보와 여신은행들 간의 치열한 책임 공방도 예고된 상황이다.  

은행권에선 보증서 자체가 법적인 효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발급한 무보가 모뉴엘을 대신해  은행에 돈을 갚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법상 무보가 보증채무를 지게 된다는 것.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불법 차량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보상받지 못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선보상조치를 취한 뒤, 가해차량에 구상권을 청구하듯 이번 사건도 보증사인 무보가 은행에 우선 변제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밝혔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도 “공기업인 무보는 신용보증기금의 성격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증책임을 이행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보증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보가 은행으로부터 수출실적증명서, 선적서류, 현금입출금내역서 등을 받고 이를 근거로 보증서를 발급해 줬다는 점에서 은행도 책임범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2012년까지 모뉴엘의 주거래 은행이던 우리은행이 당시 850억원에 달하던 여신을 회수하고 모뉴엘과의 관계를 청산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은행 측은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도 해마다 50%씩 성장한 점, 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돈이 너무 많은 점 등이 의심스러웠다”고 밝혔다.

따라서 무보 측이 우리은행의 예를 근거로 나머지 은행들의 모럴해저드를 주장하며 소송전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보 관계자는 27일 CNB에 “아직 은행들로부터 사고 접수가 되지 않았으며, 당국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 가타부타 논할 시기가 아니다”며 “부실채권(피해액)의 전체적인 규모, 회수 가능한 채권(수입업체의 미결재 금액) 규모, 모뉴엘의 자산가치, 은행의 귀책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봐야 보상범위도 정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모뉴엘이 발행한 매출채권이 어디까지가 허위고 어디부터가 진짜인지 조차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신은행에 대한 피해보상 문제를 따지기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KT ENS 소송전 재현 되나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건이 ‘KT ENS 대출사기 사건’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올해 초 밝혀진 KT ENS 대출사기 사건에 연루된 대출은행들과 지급보증을 선 증권사들은 현재까지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은 KT ENS의 고위 간부가 2008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협력업체들과 짜고 세금계산서 등을 조작해 허위 매출채권을 발행하면서 비롯됐다. 협력업체들은 이 매출채권을 담보로 시중 은행들로부터 463차례에 걸쳐 총 1조8335억원의 부당대출을 받아왔다.

이중 2894억원이 상환되지 않아 여신은행들과 지급보증사는 책임범위를 놓고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이번 사건도 매출채권 발행건수가 수백 건에 이르는 만큼 건별로 피해액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

무보측은 “간단하고 명료한 수출채권인 경우는 보상책임범위도 명확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건별로 심사를 해봐야 안다. 일부는 법적판단을 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은행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수출입 거래 과정에서 오랫동안 부정대출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수입업체와 해외 페이퍼컴퍼니의 실체 여부까지 가려야 하는 만큼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까지는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어디까지가 정상대출이고 어디서부터가 불법대출이었는지는 물론 대출금의 용처, 리베이트 여부 등이 종합적으로 밝혀져야 금융사고인지 사기사건인지 구분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소형 가전업계의 혁신업체로 주목받던 중견기업 모뉴엘은 지난 20일 은행에 갚아야 할 수출환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모뉴엘은 지난해 매출이 1조2천억원, 영업이익이 11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재무 여건이 튼실한 강소기업으로 평가받아왔다. 최근까지 물걸레가 달린 로봇청소기 ‘클링클링’, 청각 장애인을 위한 아기 돌보미 ‘배블’, 제빵기기 등 독특한 제품을 연이어 내놓았다.  

지난 4월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실시한 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장부상 3년 연속 흑자를 냈고 이자보상배율이 1을 넘는 등 현금 흐름이 양호한 기업으로 알려져 왔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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