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우측은 이재오 의원.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여의도에서 부는 개헌 논의에 제동을 걸면서 새누리당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장기간 표류하던 국회가 정상화돼 이제 민생법안과 경제살리기에 주력해야 하는데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도 경제살리기에 우선할 수 없다”며 “경제회생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국민 안전과 공직사회 혁신 등 국가 대혁신 과제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개헌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 때 한 차례 언급한 이후 9개월 만이다.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당분간 개헌 논의가 나오지 않도록 쐐기를 박은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 내에서 개헌을 주도하는 인사는 친이(친 이명박)계 좌장으로 꼽힌 이재오 의원이다. 이 의원은 박 대통령과 다소 불편한 관계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확정됐을 때는 지지연설을 했다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인사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수요일마다 열리는 최고중진연석회의는 매주 참석하지 않는다. 그가 참석한 날은 작정하고 정부여당에 직격탄을 날리는 날이다.
박 대통령이 개헌에 제동을 건 다음날인 7일 이 의원은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금년에 논의하면 블랙홀이고, 내년에 논의하면 블랙홀이 아닌 게 되느냐”며 “새로 들어선 정권이 ‘경제 살리기도 급한데 무슨 개헌 논의냐’ 이렇게 하면 개헌을 또 못한다”고 말했다.
또 “다음 총선과 대선을 멀리 남겨 놓고 선거가 없는 지금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며 “김무성 대표도 국정감사, 정기국회가 마무리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 개헌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회의 참석 때마다 정부여당에 날을 세워온 터라 8일 열린 회의에서도 개헌에 대한 언급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이 의원은 이날 공개석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날 라디오인터뷰에서도 박 대통령의 개헌 논의 제동에 반발했던 그였지만 공개 회의에서 침묵을 지켰다.
개헌 논의에 동의했던 김태호 최고위원도 이날은 정기국회 뒤로 미루자는 입장을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개헌 필요성에 대해서는 상당수 국회의원이 찬성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한 뒤 “사실상 대통령도 개헌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정기국회만이라도 경제살리기에 여야가 올인하는 모습이 먼저”라며 “지금 현재 국회에서 계류돼 있는 법안에 대해 여야가 꼭 합의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선진화법이 규정하고 있는 12월2일까지 예산안이 법적기한내에 통과돼야 한다”며 “그런 다음에 여야가 개헌특위를 구성해서 조용히 합의하면 된다. 그래야 국민들이 신뢰와 성원을 보낼 것이고 개헌논의에 관한 블랙홀 우려도 불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과 관련해 김무성 대표는 “개헌 논의는 이번 (정기) 국회가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고 언급했고,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도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대표나 김 위원장이 개헌 논의를 뒤로 미루자는 뜻을 밝힌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언급 이후 당 지도부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당내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도 짐작된다.
이런 가운데 김무성 대표와 이재오 의원, 김문수 위원장은 조만간 중국 베이징에서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은 각각 천펑샹(陳鳳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의 별도 초청으로 오는 13일부터 17일까지 중국을 방문하며, 국회 외교통일위원인 이 의원은 주중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13일과 14일 중국에 머무른다.
이들은 베이징에서 만나 당 운영과 정치혁신 방안 등 정국 현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이며, 이 자리에서 개헌 문제를 언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