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가 농식품부와 재단, 세무당국 등 루머에 연루된 관련기관들을 전방위 취재한 결과, 하나같이 ‘사실이 아니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한식세계화 사업과 관련된 ‘아픈 과거’가 이 참에 다시 회자되면서 곤혹스런 모습이다. CNB가 루머의 실체를 단독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대우조선 돈 수백억 한식재단에 들어갔다” 루머
정치권 “전 정권 밀착, 불투명 회계 의혹 키워”
농식품부·한식재단 “사실무근… 돈 받은 적 없어”
대우조선해양 “터무니없는 악성루머” 법적대응
이번 소문은 최근 국세청이 대우조선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6월 말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본사와 경남 거제 대우조선 조선소 등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세무조사는 2005년, 2010년에 이어 4년만에 실시된 정기세무조사로 알려졌다. 통상 국세청은 4~5년 단위로 대기업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세무조사를 각종 제보를 받고 투입되는 조사4국이 맡고 있는데다, 세무조사가 길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달 초 미주지역 한 언론이 “세무당국이 대우조선의 자금 중 회계처리가 정확히 되지 않은 돈이 한식재단 등 외부로 흘러나간 정황을 파악, 정확한 조사를 위해 최근 조사 인력을 충원하고 조사기간도 연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언론은 “대우조선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이명박 전 정권 사정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며 의혹을 키웠다.
지난 5일부터 포털사이트 각종 게시판에 퍼날라지기 시작한 해당 뉴스는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에 공유되면서 추석연휴(6~10일) 동안 급속히 확산됐다.
대부분 누리꾼들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대우조선 등을 비난하고 있다. 또 일부언론은 이를 그대로 인용보도해 논란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CNB 취재진이 11일 대우조선과 농식품부, 세무당국 등을 상대로 확인에 나선 결과, 이같은 소문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국세청 관계자는 CNB에 “개별납세자에 대한 정보는 국세기본법 81조에 의해 확인해 줄 수 없는 사항”이라며 “국세청을 통해 (대우조선의 불분명한 자금이 한식재단에 흘러간 것을) 확인했다는 식의 보도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피조사자(대우조선)에 대한 모든 사항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어 보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 돌고 있어 해당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010년경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일부 보도된 적이 있어 해당언론에 항의했으며 정정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며 “전임 사장 시절 있었던 불미스런 일이 말을 키운 것 같다”고 전했다.
대우조선은 지난 2010년 협력업체인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로부터 45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였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구속되면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당시 대우조선과 정권이 깊숙히 연관됐다는 의혹이 세간에 파다하게 퍼졌다.
여기다 대우조선이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점도 이번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다. 대우조선은 2001년 워크아웃을 졸업하면서 산업은행이 31.5%의 지분을 인수, 최대주주로 올라선 이후 실질적으로 주인이 없는 상태다. 2008년 3월 산업은행이 지분 매각을 추진하며 현대중공업, 포스코, 한화그룹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곧바로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산됐다.
대우조선의 주인 격인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라 과거 정권 때부터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2011년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면서 대우조선도 의혹의 중심이 돼 왔다.
이런 배경에서 당시 영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주도한 한식세계화 사업의 뒷돈을 대우조선이 댔을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불거진 MB비자금설 “왜”
한식재단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한식재단 관계자는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감사 때 당연히 나왔을 것”이라며 “(대우조선으로부터) 한 푼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식재단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위 위원장인 김우남 의원실 관계자도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소관부처인 농식품부 외식산업진흥과 관계자는 “보도가 나온 뒤 자체적으로 확인에 나섰지만 한식재단이 출범한 이래 (대우조선 뿐 아니라)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이 들어온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전했다.
앞뒤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대우조선이 한식재단에 거금을 후원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한식재단을 둘러싼 루머가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명박 정권 시절 한식세계화 사업에 수천억원대의 자금이 투입됐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자 여러 의혹이 일어왔기 때문이다.
‘한식세계화’는 전 정권이 야심차게 시작했던 사업이다. 농식품부는 이 전 대통령 취임 직후 ‘한식세계화’를 선포하면서 한식을 2017년까지 세계 5대 음식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09년에는 범부처 차원의 민관합동기구인 ‘한식세계화추진단’을 발족했으며,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을 맡으며 사업을 주도했다. 2010년에는 농식품부 산하 비영리재단법인인 ‘한식재단’으로 공식출범했고,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하지만 한식재단은 2011년 9월 한국과 미국에서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개설·운영사업 민간사업자 공모’를 실시했지만 참여 의사를 밝힌 민간기업이 단 한 곳도 나타나지 않자 위기를 맞게 된다.
플래그십 프로젝트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성격이라 민간 참여가 필수다. 결국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민간업체가 나타나지 않아 백지화됐다.
감사결과 한식세계화 사업의 예산 가운데 5분의 1 이상이 잘못 집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2009∼2012년 한식세계화 지원사업으로 편성한 예산 931억원 중 704억원만 계획대로 집행하고 나머지 227억원(24.3%)은 내역을 변경해 사용하거나 이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감 때는 재단의 방만경영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농식품부 국감에서 “한식재단이 2011년부터 유럽, 미국, 중국 등에서 행사를 열었는데 1인당 474만원짜리 다과체험, 270만원짜리 오찬, 95만원짜리 만찬 등 초호화판 파티에 13억원을 쏟아 부었다”고 폭로했다.
김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재단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유럽에서 한식가이드북 출판기념회를 20명 이하의 소규모 인원이 참석하는 다과체험 행사로 진행했는데 런던에서는 8987만원, 파리 9483만원, 브뤼셀 4769만원을 지출됐다. 1인당 수백만원짜리 다과가 제공된 셈이다.
이런저런 배경에서 여론이 들끓었고, 과거 정권과 밀접한 대우조선 등이 한식재단과 함께 거론되면서 루머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 한식세계화 사업의 실패, MB(이명박)정권과 대우조선과의 관계, 김윤옥 여사가 사업을 주도했다는 점 등이 뒤섞이며 대우조선 비자금설이 또 불거지고 있는 것 같다”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정부(농식품부)가 직접 나서서 의혹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