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점포, 먼지가 앉은 진열대, 불친절한 서비스 등으로 이웃에게마저 외면 받던 동네 슈퍼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0년 소상공인진흥원(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영세 자영업자를 위해 도입한 ‘나들가게’를 만나면서부터다.
지원 점포 가운데 성과가 뛰어난 우수 나들가게의 평균 매출신장률은 두 자릿수를 훌쩍 넘어섰다.
지역에서 나들가게로 변신한 후 양과 질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골목슈퍼 두 곳을 찾아 성공 스토리를 들어본다.
“다양한 경로로 실속있는 구매 가능해져”
대구 상인동 빙그레마트 이기조 사장
“구멍가게라고 불리는 골목슈퍼 한곳 한곳은 대형마트에 비해 작고 미미하지만, ‘나들가게’라는 테두리 안에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구 달서구 상인동 빙그레마트 이기조 사장에게 나들가게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20년 이상의 직장생활을 명퇴한 직후 8년째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이 사장에게는 수퍼마켓은 2011년 나들가게로 변신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 사장은 “가게를 시작한 후 얼마 동안은 매출이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을 정도였지만 이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수익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면서 “주위에서 경쟁하던 가게들이 하나 둘씩 폐업하면서 나도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에 빠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러던 중 이 사장의 눈에 띈 것은 신문에 난 ‘나들가게 육성지원사업’ 관련 기사였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네 슈퍼마켓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컨설팅 및 시설개체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2011년 나들가게에 선정된 이후 빙그레마트의 변신은 눈부셨다. 먼지가 쌓여있던 간판은 깔끔한 나들가게 스타일로 바뀌었고, 주먹구구 방식의 계산은 재고 파악이 쉽고 계산이 편리한 컴퓨터 점포 판매시스템(POS)으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라 구매자의 동선과 심리까지 고려한 진열대 개선도 더해졌다.
외형적인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 사장은 서비스교육 등을 통해 경영마인드도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이기조 사장은 골목슈퍼들이 나들가게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부분의 골목슈퍼 운영자들은 습관적으로 납품업체가 정하는 가격에 물건을 받는다”면서 “나들가게를 통해 공동구매시스템 등 다양한 구매경로와 정보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나들가게 대구·경북 협동조합의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이 사장은 나들가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이 사장은 “현재 걸음마 단계인 공동구매시스템이 물류센터와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면 나들가게는 대형마트를 넘어서는 구매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구매단가가 낮아져 가격경쟁력이 생기면 대형마트나 편의점으로 넘어간 고객들을 다시 나들가게로 되돌릴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상품진열 등 우수한 마케팅 전략 배워”
경북 경주시 현곡면 주공마트 신영철 사장
상가에 위치한 주공마트는 10평이 채 되지 않는 그야말로 골목슈퍼다. 또한 인근에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있어 경쟁도 치열한 편이다.
4년 전 이곳에서 영업을 시작한 신영철 사장은 다른 경쟁업체와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나들가게를 알게 됐다. 신 사장은 곧 오래된 POS도 새롭게 교체하고, 정리가 되지 않아 지저분한 상품들도 재정리할 겸 나들가게를 신청했다.
통일성과 세련된 외관을 갖춘 간판교체를 비롯, 고객응대는 물론 재고관리까지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최신 POS기기가 지원됐다. 또 마케팅 전문가가 배치돼 디스플레이 구성부터 고객서비스 교육까지 점포 및 경영 개선 관련 컨설팅이 이어졌다.
신 사장은 “예전에는 몰랐죠. 고객 동선에 따른 ‘골든 라인’ 구성이라든지, 가로에서 세로배열로 상품 배치를 변경하면 고객 집중도가 높아지는 마케팅 기법 등은 나들가게 사업 참여가 아니면 배울 수 없었던 지식이죠”라고 회상했다.
결과는 대만족. 나들가게 초기 주변 사람들이 달라진 외관으로 인해 슈퍼를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하지만 신 사장은 ‘나들가게=성공’이라는 공식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자신의 경우 나들가게 육성 정책이 나온 시기와 당시 처한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고, 나들가게 사업을 수행하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매장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 사장은 “나들가게를 시작한 지 3년째인 지금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김재수 전문위원이 애로사항이나 문제점 등을 해결해 주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좋은 정책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내가 처한 상황을 잘 파악한 뒤 정책을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나들가게 육성지원사업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히지만 나들가게 육성지원사업에 대한 아쉬운 점과 바람도 잊지 않았다.
신영철 사장은 “유통구조가 대형마트와 다르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 대형마트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나들가게 점포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라면서 “나들가게를 상징할 수 있고 또 나들가게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이른바 ‘나들가게 PB’ 상품이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고 지적했다.
나들가게로 매장이 변신에 성공하고 서비스가 좋아졌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방문하는 고객들을 웃음 가득한 이웃사촌의 마음으로 대하는 신영철 사장의 ‘정(情) 마케팅’이야말로 주공마트의 가장 큰 경쟁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