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은 오는 25일까지 부지감정평가를 끝낸 뒤 곧바로 매각공고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땅값 시세가 3∼4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의 2파전이 유력시되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8월말 매각공고…삼성·현대차 신경전 팽팽
무역협회, ‘공공개발’ 서울시와 한 목소리
본격 줄다리기는 매각 후…개발방식 주목
최고가에 기부채납 ‘이중고’, 재계 볼멘소리
한전 관계자는 18일 CNB와의 통화에서 “8월말 경에 매각 공고를 내고 최고가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을 진행한다”며 “조만간 감정평가액이 정해지면 이를 기준으로 입찰 예정가격을 정한 뒤 예정가격보다 가장 높게 써낸 기업이나 개인이 인수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전 부지의 감정평가는 현재 대일감정원과 경일감정평가법인에서 진행하고 있다. 한전은 이달 23∼25일까지 감정평가를 끝내고 곧바로 매각공고를 낼 방침이다.
축구장 12개 규모인 한전 본사 부지(7만9천342㎡)의 2013년 기준 장부가액은 2조73억원, 공시지가는 1조4837억원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시세가 3조∼4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은 오는 11월 전남 나주로 본사를 옮긴다. 나주 빛가람도시의 랜드마크로 건립될 한전 신사옥은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이에 따라 늦어도 내년 11월까지는 현재 사옥과 부지를 매각해야 한다. 혁신도시특별법은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이전한 뒤 1년 이내에 사옥을 팔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전은 법이 정한 매각 시한 보다 앞당겨 올해 안에 매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한전 측은 “공공기관 부채 감축목표를 조기에 달성하자는 정부 방침에 부응하기 위해 조기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인수를 희망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삼성과 현대차가 꼽힌다. 한국무역협회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18일 CNB에 “한전 부지가 대규모 컨벤션센터로 지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같은 삼성동에 자리잡은 코엑스와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 부분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며 “인수희망기업이 자문을 구해오면 (컨벤션센터 운영) 경험자로서 도와주겠다는 의미며, 직접적인 입찰 참여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무역협회는 삼성동에서 자회사인 코엑스를 통해 컨벤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 인수전 테스크포스 가동
한전 부지 매입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비좁은 서울 양재동 본사의 대체지로 한전 본사 부지를 일찌감치 점찍은 현대차 측은 응찰 전략을 세우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 계열사는 30여개, 소속 임직원은 1만8000명에 달하지만 양재동 사옥의 수용 능력은 5000명 안팎에 불과해 주요 계열사들이 서울 시내 곳곳에서 빌딩을 임차해 분산 입주해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지난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뚝섬 인근 옛 삼표레미콘 부지에 약2조원을 투자해 110층 높이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고 그룹 소속 모든 계열사를 입주시킨다는 메머드급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각종 규제로 빌딩 건립이 지연됐으며, 마침내 서울시가 지난해 ‘초고층 건축관리 기준’을 강화하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바 있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해 그룹의 관제탑 기능을 하면서 문화와 생활, 컨벤션 기능을 아우르는 랜드마크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폴크스바겐그룹 본사를 본떠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를 만들겠다는 것.
아울러 기존 양재동 본사는 미래 자동차를 연구하는 연구·개발(R&D)센터로 탈바꿈시킨다는 구상이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남양연구소에는 주행시험장과 필요한 연구 시설만 남겨두되, 미래를 위한 첨단 선행기술 R&D 기능을 양재동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입찰 공고에 대비해 참여 예상 기업들의 동향을 파악하면서 내부 부문별 핵심인력으로 테스크포스(TF)를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던 삼성도 현대차의 인수전 선언 이후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관심을 갖고 한전부지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최근 삼성 관계자)고 밝힌 상태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오래전부터 한전 부지에 눈독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인수전 참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삼성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생명을 앞세워 지난 2011년, 한전 부지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감정원 부지 1만988.5㎡(3324평)과 연면적 1만9564.1㎡(9518평)의 건물을 2328억원에 매입한 바 있다.
삼성이 이 땅을 매입할 당시 서울시는 한전 부지와 감정원 부지를 비롯, 서울 의료원과 강남소방서 부지 일부를 합쳐서 2호선 삼성역 일대에 대규모 컨벤션타운을 건설하는 안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당시부터 삼성의 감정원 부지 매입을 예사롭지 않게 받아 들였다. 삼성이 현재까지 감정원 부지에 대한 별다른 활용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는 것도 향후 대규모 개발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하철 역명이 ‘삼성역’이란 점도 매력적이다. 지난해 5월 변준연 한국전력공사 부사장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전 인근에 지하철 삼성역이 위치한 탓에 역명과 명칭이 같은 삼성그룹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삼성이 한전 고위층과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며 “큰일 일수록 조용하게 추진하는 삼성 특유의 스타일로 볼 때, 최근 주요 계열사들의 사업구조 개편 발표에서 보듯 어느 순간 깜짝 카드를 꺼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건희 삼성 회장이 투병 중인데다 그룹 전체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어, 무리해서 부지 인수를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서초동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태평로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이미 자리를 잡아 현대차그룹처럼 절박하지 않다는 것.
또 다른 인수 후보로는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업체 뤼디그룹((綠地集團), 세계적인 카지노그룹인 라스베이거스 샌즈, 프랑스의 대형 건설업체 브이그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뤼디그룹과 라스베이거스 샌즈의 경우 한전 부지에 카지노 설치를 염두에 둘 것으로 보이지만 허가가 나기 쉽지 않아 이들의 입찰 참여는 불투명하다. 뤼디그룹의 경우 제주도에 관광호텔, 콘도미니엄, 카지노 등이 들어서는 ‘드림타워’ 건설을 추진하다 원희룡 제주지사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태다.
부지 사들여도 ‘산 넘어 산’
삼성과 현대차의 정면 충돌이 예상되면서 부지 가격이 어느 정도 선에서 형성될 지도 관심사다.
한전 측은 “공개입찰방식이라 응찰에 특별한 제한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누구나 참여해 최고가를 써내면 된다는 것.
따라서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공시지가의 2∼3배인 6조원대 가까이 가격이 치솟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부채 감축이 지상과제인 한전이 가격을 최대한 높일 가능성이 큰 데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과 현대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부지가 매각되더라도 본격적인 개발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한전 관계자는 18일 CNB에 “이번 매각은 한전 자체적으로 진행되며, 서울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부지용도 변경, 개발 계획과 관련된 건 부지를 낙찰받은 업체가 서울시와 추후 논의할 사항으로 알고 있다”며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서울시 관여설’을 일축했다. 인수희망 기업으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 더 높아진 셈이다.
서울시는 공공용도 개발을 고집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한전 본사 부지를 포함해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를 국제 업무·마이스(MICE, 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스포츠·문화엔터테인먼트 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시의 계획에는 한국무역협회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협회가 인수전 직접 참여에는 손사레를 치면서도 “인수 희망기업이 원할 경우 부지 개발 방향과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서울시의 방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전 부지의 상당 부분을 서울시에 기부채납 해야 하는 점도 기업들에겐 부담이다.
현재 한전 부지는 상업시설 개발이 불가능한 3종 주거지역으로 묶여 세울 수 있는 건물 높이가 5~6층으로 제한돼 있다. 서울시는 이를 상업용지로 바꿔주는 조건으로 부지 구매자로부터 부지의 40%를 기부채납 받아 공공용도로 쓸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40%기부채납은 한전 부지 뿐 아니라 용도 변경을 전제로 하는 각종 개발사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이라 변동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한전 부지가 최고가 입찰이라는 부담에다, 용도변경을 받아야 하고 개발계획을 (서울시와) 면밀히 협의해야 하는 등 넘어야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부지 가격도 문제지만 공공시설을 최대한 늘리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상업시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 간 입장차를 어떻게 좁히느냐가 개발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최고가로 땅값을 지불하고도 공공개발을 만족시켜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될 전망이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