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오후 4시간30분 동안 계속된 마라톤 의원총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요구하는 당내 강경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는 바람에 결국 취임 후 첫 여야 합의를 접게 되면서 지도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비공개로 진행됐던 이날 의총에서 당지도부가 특검 추천권 확보 관련한 추가협상을 제안했으나 참석 의원 대다수는 재협상 의견을 강력 피력하는 등 시작부터 합의안 파기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반대파'의 의견이 강하게 개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강경파 초·재선모임인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들이 지도부에 "유가족이 수용할 수 있도록 특검 추천권을 확보하라"고 강하게 주문해 당 안팎에서 '대안 없는 강경파'에 대한 불만과 '지도부 흔들기'에 대한 우려도 잇따라 원내 제1야당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 모임 소속인 진성준 의원은 "재협상이나 추가협상 같은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추천권을 확보할 수 있게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의원은 "조항 타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가족 및 국민적 지지와 동의 여부, 진실규명을 위한 실질적 조사권 보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라며 "전투도 전쟁도 졌다. 전면 재협상하고 안 되면 깨라”고 요구했다. 우원식 의원은 "합의안을 추인하지 못한다는 말을 결의문에 넣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날 의총에서 박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이 적잖게 나와, 새누리당이 '재협상 불가'를 선언한 마당에 재협상만 요구하면 세월호 매듭을 풀 수 없다는 이유에 따라 지도부 흔들기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않다.
이에 한 초선의원은 "박 위원장이 나름 고민이 많았겠지만 실수한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고, 세월호 인식이 (당 의원들과) 다른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의원은 "박 위원장이 협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의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내용을 손바닥 뒤집듯 파기했다는 비난여론에 대해, 황주홍 의원은 "이번 합의는 미흡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와서 재협상하자며 판을 깬다고 여당이 들어줄 리 없고, 공연히 국민 눈에 보이는 우리 모양새만 엄청 구겨져 버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다선의원은 "재보선 이후 야당에 더 이상 남은 동력도 없지 않으냐"며 "대안 없이 우리 주장만 고집하면 더 많은 걸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박 원내대푝 수사권과 특별검사제 추천권이 없는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하자 사실상 재협상 이슈에 불을 댕기면서 대립각을 세웠던 문재인 의원이 '새누리당 책임론'을 들고 나오면서 '박영선 구하기' 선봉에 나서 눈길을 모았다.
문 의원은 12일 밤 11시 35분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유족들이 납득할 수 있는 특별법 만들기, 당연히 집권여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밝히면서 "그런데 새누리당은 어쩌면 그렇게 당당하게 그 책임을 외면하면서 희희낙락할 수 있는 것일까요"라고 반문한 뒤 "우리 정치의 불가사의"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문 의원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덫에 빠지면서 사실상 '식물 지도부'로 전락하자 박영선호(號)에 힘을 실어주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세월호가족대책위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 박 원내대표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꽂으면서 범야권 지지층 이탈이 가시화된 상황인 터라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구나 보수진영이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주도한 계파로 친노그룹을 지목한 점도 문 의원의 박영선호 힘 실어주기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문 의원이 박 위원장보다는 새누리당 공격에 집중하는, 이른바 '시선 돌리기' 전략이 성공할 경우 친노그룹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에 세월호 정국에서 문 의원이 존재감 부각에 성공함에 따라 차기 대권 가도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