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92)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여동생 장례식에 낸 부의금을 둘러싼 조카들 간 법정 분쟁이 민사소송 차원을 넘어 형사 고소로까지 번진 것으로 알려져 롯데그룹이 긴장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사건의 핵심 키를 쥔 신 회장이 법원에 출두해 부의금 액수를 밝혀야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5일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신 회장 여동생의 둘째 딸 A씨는 지난달 9일 자신의 둘째 오빠 B씨를 횡령 혐의로 경주경찰서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고소장에서 “오빠 B씨가 어머니 사망으로 상속된 내 몫의 부의금 10억원의 지급을 거부했다. B씨를 철저히 조사해 법에 따라 엄벌에 처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5년 1월 신 회장의 여동생 신모씨가 세상을 뜨면서 비롯됐다.
당시 상당 규모의 부의금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A씨는 부의금을 손에 쥘 수 없었다. 그러자 A씨는 지난해 6월 형제(남매)들을 상대로 “신 회장이 낸 부의금 수십억원 중 내 몫의 부의금 1억원을 우선 지급해 달라”는 민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A씨는 “2005년 1월 어머니 장례식 때 신 회장 비서가 묵직한 007가방을 들고 온 것을 봤으며, 이후 B씨가 ‘네(A씨) 몫으로 10억원을 만들어 놨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16일 “B씨가 A씨에게 ‘네 몫 10억원을 만들어 놨다’고 말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부의금이 수십억원이라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B씨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신 회장이 아무리 여동생을 아꼈다 해도 돌아가신 분한테 누가 그 많은 돈을 주겠느냐. 상식적으로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또 “10억원이 있다고 한 것은 동생과 연락이 잘되지 않아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려는 생각에 꺼낸 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한편 B씨를 횡령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특히 A씨가 “항소심에서 신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 부의금 규모를 밝히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롯데 측이 긴장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5일 CNB와의 통화에서 “이번 일이 (신 회장의) 집안 내부 문제라 그룹차원에서 응대하지 않고 있으며, (신 회장이) 부의금을 얼마 냈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면서도 “설마 이런 일로 (신 회장이) 출두하는 상황까지 오겠냐”고 우려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민사소송은 1심판결이 내려진 만큼 추후에 결정적인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항소심은) 원심판결을 준용하게 돼 신 회장이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어 보이지만 형사고소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며 “(B씨가) 횡령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느냐 아니냐를 수사하기 위해서는 형사사건의 주요 증인(참고인)인 신 회장 측이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신 회장이 고령인데다 경찰이 민사재판 자료를 넘겨받아 상당한 증거를 확보할 경우, 신 회장에 대한 조사는 서면으로 끝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