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강우권 기자)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진 뒤 한산대첩 같은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도 백의종군할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 장군은 이 길을 걸으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쟁이 한창이던 1597년(선조 30) 5월 26일 장대비가 퍼붓던 날 온몸과 행장이 비에 흠뻑 젖은 장군이 하동 경내로 들어섰다.
앞서 그해 1월 조정을 가벼이 여기고 임금을 속였다는 죄로 심한 문초를 받고 선조로부터 지금의 합천 초계에 있던 도원수부에 백의종군할 것을 명받고 전라도를 거쳐 하동으로 들어선 것이다.
경상도로 내려오던 중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도 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머니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도원수부로 향해야했던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렇게 하동에 들어선 장군은 화개장터를 거쳐 지금의 악양면 정서리에 도착했으나 잘 만한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김덕린이 빌린 이정란의 집에 억지로 밀고 들어가 겨우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날이 개자 장군은 젖은 옷을 바람에 걸어 말린 뒤 저녁나절에야 다시 길을 떠나 하동읍 두곡리의 최춘룡 집에 이르러 하루 밤을 보냈다.
1597년 5월 28일 저녁나절에 길을 나서 지금의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하동 읍내에 도착하자 하동현감이 기뻐하며 성 안 별채로 맞아들여 매우 간곡한 정을 베풀었다.
이틀 전에 몹시 고생했던 터라 몸에 탈이 났던 장군은 거기서 하루 더 머문 뒤 6월 1일 비가 내리는데도 아침 일찍 길을 떠나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에 있는 정수역 시냇가에 이르러 말을 쉬었다가 저녁 무렵 도원수부로 향했다.
하동군청 공무원들이 417년 전 심한 문초를 받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이순신 장군이 걸었던 고난의 백의종군로 탐방에 나섰다.
백의종군로 탐방에는 5∼7일 2박 3일간 백의종군로 활성화 업무를 담당하는 군청 문화관광과 공무원과 해설사, 읍·면 담당자, 보건소 직원, (사)한국문화관광개발원 관계자 등 26명이 함께했다.
백의종군로 활성화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공무원으로서 기본적인 코스를 숙지하고, 체험을 통한 탐방코스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도출한 뒤 활성화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연관사업 추진을 위해 기획된 것.
이들은 카레·자장·마파두부 같은 전투식량을 걸머지고 화개장터에서 악양면∼하동읍∼고전시목삼거리∼하동읍성∼옥종 청수역 쉼터∼영당사거리∼이희만 집까지 장군이 걸었던 하동구간 총 74.5㎞를 하루 24∼25㎞씩 사흘에 나눠 걸으며 장군의 고뇌를 되새긴다.
탐방 공무원들은 백의종군로를 걷는 일반인들과 같은 수준의 보폭을 유지하며 길가의 잡초나 잡목을 제거하고 쓰레기를 줍는 등 주변 환경정화 활동을 펼친다.
뿐만 아니라 백의종군로 탐방객이 누구나 쉽게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 표시용 리본을 부착하고, 저녁에는 함께 모여 장군이 백의종군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김철수 문화관광과장은 “백의종군로 개설 이후 탐방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만큼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직접 현장을 탐방함으로써 향후 연관사업 추진과 탐방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자 이런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