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올해 들어서만 한 달에 한번 꼴로 대기업건설사들 간의 담합 사실을 밝혀내 과징금 부과, 검찰고발 등 조치를 취하고 있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담합의 판단 기준 등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CNB가 대형건설사들 간 ‘짬짜미’의 현주소를 살폈다. (CNB=도기천 기자)
공정위, 과거 정부때 관급공사 대대적 조사
수년전 공사에 소송까지 이어지며 ‘한세월’
업계 “과징금에 입찰자격 제한은 이중처벌”
유성욱 공정위 입찰담합조사과장은 4일 CNB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국회에서 관급공사 입찰담합에 대한 지적이 있은 뒤, 불공정 담합행위에 대해 조사·감시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며 “여러 건의 (입찰담합) 정황을 확보한 상태며, 확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최근 2~3년새 수십건에 이르는 입찰담합 행위를 적발, 올들어서만 10여건에 대해 과징금부과 및 검찰 고발 조치했다.
현재 공정위가 조사를 완료했거나 조사 중인 사안들은 대부분 4~5년 전에 시행된 공사다. 유 과장은 “담합행위가 문서를 남기지 않고 구두 합의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황이 확실하더라도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일이 걸린다”고 밝혔다.
특히 공정위는 하수처리 등 환경시설 공사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환경시설은 정부나 지차체가 발주하는 대규모 관급공사인데다 전문적인 분야라 대기업건설사들 간의 담합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건설사들의 담합으로 입찰단가가 올라가 국가 재정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정위가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공정위는 3일 광주광역시 하수슬러지 처리시설 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포스코엔지니어링, 코오롱글로벌, 한라산업개발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21억2400만원을 부과했으며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하수슬러지 처리시설은 하수·폐수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찌꺼기 등을 소각하고 건조해 없애는 시설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3개 업체는 지난 2009년 이 공사의 입찰에 참여하면서 가격 경쟁을 피할 목적으로 사전 모임을 갖고 투찰가격과 톤(t)당 운영비를 합의했다.
이들은 합의 대가로 공사 수주 업체가 2, 3위 업체에게 각각 6억원을 보상하고 한라산업개발과 코오롱글로벌이 앞으로 1년 이내에 시공하는 공사에 포스코엔지니어링이 공동도급 시공지분 10% 자격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라산업개발이 약353억원에 해당 공사를 낙찰 받았다.
이번 사건은 올 1월 법원이 건설사들에 벌금형을 선고한 광주시 총인처리시설 입찰담합 사건과 맞물리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림산업, 현대건설, 금호산업 등은 지난 2011년 2월경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사다리 타기’ 방식을 이용해 공사 예정가의 94% 이상 95% 미만으로 가격 담합을 한 것으로 드러나 법원으로부터 3000~6000만원씩 벌금을,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각각 받았다.
또 수주업체 선정을 위한 설계평가와 관련해 심의위원인 광주시청 공무원과 대학교수들에게 500~4000만원씩을 전달해 일부 임직원들이 사법처리 됐다.
두 사건이 모두 광주시에서 발주한 공사인데다, 수법이 비슷해 당시 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입찰담합이 벌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당 지역 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관급공사 입찰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한라산업개발과 코오롱글로벌은 비슷한 시기에 정부에서 발주한 김포한강신도시 크린센터 시설공사 및 남양주별내 크린센터 시설공사와 호남고속철도 공사에서도 담합을 벌였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9년 한국토지공사가 발주한 ‘김포한강신도시 크린센터 시설공사’를 GS건설, ‘남양주별내 크린센터 시설공사’를 코오롱글로벌 등이 각각 맡기로 모의하고 ‘들러리업체’를 모았다. 이들은 대우건설과 한라산업개발, 동부건설, 효성에바라엔지니어링 등 4개사를 들러리로 세워 낙찰에 성공했다.
공정위는 이들 건설사에 총 105억9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검찰은 지난달 GS건설과 효성에바라엔지니어링, 한라산업개발, 대우건설 등 법인 4곳을 기소하고 GS건설 상무보 강모씨, 코오롱글로벌 상무 정모씨 등을 불구속기소 했다.
공정위는 또 의정부시 음식물류폐기물 공공처리시설 공사 입찰에서 투찰 가격 등을 담합한 효성에바라엔지니어링 및 서희건설에 지난달 7일 과징금 2억8400만원을 부과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2009년 시행된 완주 지방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장 등 3개 공사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코오롱워터앤에너지, 한솔이엠이에 과징금 38억원을 내라고 명령했으며, 지난 4월에는 2009년 시행된 인천 영종도 운북하수처리장 증설공사입찰에 참여한 한화건설과 코오롱글로벌이 담합을 벌인 사실을 적발, 시정명령 및 과징금 32억3100만원을 물리고 검찰에 고발했다.
3월에는 2009년 LH가 발주한 ‘인천 공촌하수처리장 증설 및 고도처리시설공사’와 ‘광주·전남 혁신도시 수질복원센터 시설공사’ 입찰에 참여해 낙찰자 및 투찰가를 담합한 포스코건설과 코오롱글로벌에 과징금 121억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 2명을 고발했다
올해 초에는 전국 30개 지방자치단체 상수도 사업본부가 2007~2013년 발주한 ‘상수도 옥외자동검침시스템 설치’ 입찰 57건을 담합한 (주)엠아이알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8800만원을 물리기도 했다.
이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입찰담합이 횡행하고 있는 이유는 관급공사가 상대적으로 수익률은 낮지만 ‘안정적’이란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통상 공공공사의 마진률(수익)은 3%안팎이다. 하지만 입찰담합을 통해 가격을 높게 써내면 수익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특히 폐기물처리 등 환경공사의 경우,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라 대기업 건설사들이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중소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CNB에 “대형건설사들끼리 담합해 들러리를 세우고 낙찰자를 미리 정해 밀어주는 방식으로 공사를 독점하고 있다”며 “1000억짜리 공사의 낙찰률을 10%만 올려도 100억원이 더 남게 되는 구조”라고 전했다.
이처럼 담합을 통해 상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지만 과징금은 수천만원~수십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부분 건설사들이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소를 제기하면서 법정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건설사들이 소송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은 담합으로 인해 부정당업체로 지정될 경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수주가 막히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어서다.
정부·지자체로부터 부정당업체로 지정되면 최소 3개월에서 최대 2년의 입찰참가제한 조치를 받게 돼 수주가 생명인 건설사로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최근 광주총인시설 공사에서 담합 판결을 받은 건설사들은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까지 청구한 상태다.
가뜩이나 입찰담합에 연루된 공사들 대부분이 4~5년 전에 시행된 것들인데다, 재판까지 이어지면서 한 사건에 대한 최종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최장 7~8년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신속한 조사가 답이지만 담합 사건의 성격상 증거를 잡기가 쉽지 않은데다, 공정위 직원 수십명이 한해 수백개에 이르는 관급공사 현장을 조사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담합 판단 기준과 제재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담합 기준은 발주자의 피해 여부로 판단해 발주자의 피해가 없거나 적을 때는 제재 수위를 낮춰줘야 한다”며 “특히 과징금과 부정당업체 지정은 중복처벌 논란이 있어, 재판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관련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정위 측은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하는지는 공정경쟁을 방해하는 합의가 있었는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지 발주자의 피해 여부가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중복처벌 논란에 대해서도 “행정처분과 발주처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은 제재의 목적·내용 등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중복 제재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