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초라한 상반기 성적표를 받아든 기업들은 공공기관과 뚜렷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CNB가 2014년 여름휴가의 두 얼굴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정부, 내수활성화에 올인 “휴가 가라” 독려
기업들, 초라한 상반기 성적표 ‘무거운 휴가’
재계, “돈 풀어라” 정부 압박에 벙어리냉가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483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2014년 하계휴가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들의 평균 휴가비는 47만5000원으로 지난해 46만원에 비해 1만5000원(3.3%) 증가했다. 하계휴가 일수는 평균 4.3일로 지난해 대비 0.2일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 시기는 전통적인 하계휴가 기간인 8월 초순이 40.8%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 7월말(26.4%), 8월 중순(12.3%), 7월 중순(8.1%) 순이었다.
정부는 올 여름휴가 키워드를 ‘내수부양’으로 정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 2기내각이 출범하면서 정부와 지자체, 경제단체들은 내수활성화에 ‘올인’을 선언한 상태다. 세월호 참사로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관광·서비스산업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기업·공공기관은 ‘하계휴가 하루 더 가기’를, 대기업들은 ‘여름휴가 국내에서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선 경제부처 장관들은 직원들에게 여름휴가를 가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직원들이 편하게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자신들도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순에 2∼3일 일정의 휴가를 잡았다.
국토교통부는 서승환 장관이 개각에서 유임된데 이어 최근 실·국장급 인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직원들이 돌아가며 휴가를 쓰고 있다. 다음 달 6∼8일 사흘간 휴가를 다녀올 예정인 서 장관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직원들이 휴가를 충분히 가서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토부 실·국장 등 간부들도 사흘 안팎의 일정으로 휴가를 사용할 계획이며 일반 직원들도 자유롭게 휴가를 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차관들은 여름휴가 기간에 원전과 방사성 폐기물처리장(방폐장) 등 현장 점검과 관련 지역 민심 챙기기에 나선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이틀간의 휴가동안 경북 경주의 신고리 3호기와 울산시 울주의 월성 1호기를 잇따라 찾아 원전 현황을 둘러보고 해당 지자체 및 지역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오는 28일부터 사흘간 휴가를 가는 김재홍 산업부 1차관은 경주 방사성 폐기물처리장(방폐장)을 방문할 예정이고 한진현 2차관은 다음 달 4∼6일 휴가 기간에 한국남동발전의 분당복합화력발전소를 찾아 전력수요 관리 상황을 살펴볼 계획이다.
산업부의 다른 고위 간부들도 자신이 담당하는 정책 현안과 관계가 있는 곳을 휴가지로 선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휴가 기간인 내달 6일부터 8일까지 고향인 의성을 방문할 예정이다. 고향 방문 길에 인근 농촌 민박과 팜스테이 등 관련 산업도 점검할 계획이다. 이 장관도 내수 살리기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국내로 휴가를 가달라고 요청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자신의 휴가 일정을 잡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직원들에게는 휴가를 적절하게 활용해 재충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직원들에게 휴가를 충분히 쓰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 총재는 지난 22일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내수 차원뿐 아니라 휴가를 충분히 써야 지쳤던 몸을 치유할 수 있다”며 “한국은행 직원들에게 일주일씩 휴가를 쓰라고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수부 간부들은 세월호 사고 수습에 여념이 없어 휴가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주영 해수부 장관은 세월호 사고 수습이 완료되지 않아 올해 여름휴가를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부처들은 관련분야 기업들에게도 휴가를 통한 내수활성화에 동참해 줄 것을 적극 권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은 경제단체와 연계, 대기업·중견·중소기업 임직원의 국내여행을 촉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휴가문화 우수 대기업, 중소기업, 공공기관을 선정, 시상하기로 했다. 또 총사업비 732억원을 들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249만명을 대상으로 통합문화이용권 하계 할인 이벤트를 진행해 소외계층의 국내여행 수요를 창출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연차 유급휴가 사용을 유도하며, 여성가족부는 가족친화인증기업을 대상으로 하계휴가·국내여행을 장려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환경부는 농촌·어촌·생태관광지에서 하계휴가 보내기 캠페인에 돌입했다.
농림부는 여름휴가 가기 좋은 '농촌체험·휴양마을 30선'을 선정, 전경련과 공동으로 '농촌에서 여름휴가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교육부는 여름방학을 활용, 초·중·고교생의 가족과 함께하는 현장체험학습여행을 권장하고, 아동·청소년 대상 문화예술 여름 캠프를 운영한다.
정부부처의 한 직원은 CNB에 “실제 휴가를 가는지를 체크하기 위해 휴가계획서를 내라는 부서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16년째 공직에 몸담고 있는데 이번처럼 휴가를 권유하고 있는 적은 처음”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공기업·공공기관의 휴가활성화 분위기와 달리 대부분 대기업들은 분위기가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
신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두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자, 분위기를 감지한 기업들은 실적악화에도 불구하고 휴가기간을 늘리고 휴가비를 지난해보다 더 주는 등 내수 진작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재계 전반에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이라 분위기가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경기상황에 대해 57.0%의 기업이 ‘전년보다 악화됐다’고 응답한 반면 ‘개선됐다’는 응답은 3%에 불과해 대부분 임직원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휴가를 떠나게 됐다.
특히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었거나 그룹오너가 횡령·배임 등 혐의로 수감 또는 재판중인 기업들은 더 공기가 좋지 않다.
올해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기업은 한진 금호아시아나 동국제강 동부 STX조선해양 대우건설 한진중공업 성동조선 한라 STX SPP 현대 대성 현대산업개발 등 14곳이다. 총수가 재판중이거나 병원신세를 SK그룹 LS그룹 CJ그룹 LIG 효성 한화그룹 등이다. 이들 기업의 간부급 직원들은 일찌감치 휴가를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의 무더기 제재심의를 앞두고 있는 KB금융, 하나은행, 씨티은행 등 금융권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대부분이 여름 휴가를 현장점검 등으로 떼울 예정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상반기 성적표를 놓고 웃을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수활성화가 정부 시책인 만큼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휴가를 떠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