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철거가 완료돼 전기와 수도가 끊어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공·폐가에 일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무단경작에다 각종 폐기물 투기가 횡횡하고 있는데도 땅주인인 LH는 손을 놓고 있었다. 이곳을 가로 지르는 편도1차선 도로는 LH와 관할 지자체가 관리 책임을 미루면서 아스팔트가 균열·파괴돼 사실상 도로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지만 차들이 오가고 사람들이 도로 위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지난 수년간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가 뭘까? CNB가 ‘법외 지대’가 된 문제의 현장을 샅샅이 살펴봤다. (CNB=도기천 기자)
LH, 5년간 방치…‘거대 쓰레기장’ 변모
단전·단수됐지만 일부 주민 아직도 거주
무너진 도로 위 자전거·사람·차량 통행
밤이면 암흑천지…고양시·LH “서로 네탓”
고양시 향동은 서울시청에서 8㎞, 신촌에서 5㎞, 상암DMC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인근에 경의선, 공항철도, 광역버스가 지나고 있어 교통여건도 양호하다. 서울 수색동과 경계를 형성하고 있어 사실상 서울 생활권이다. LH공사는 이곳 121만㎡부지에 공공주택 8700여 세대를 짓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LH가 이곳에 처음 개발계획을 세운 것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H와 고양시는 지난 2005년 10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 예정지역인 향동·덕은동 일대 35만6000여평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기 위한 공람공고를 실시했다. 이때부터 이곳은 ‘향동지구’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향동지구는 2008~2009년 원주민 보상(철거) 후 글로벌 금융위기·부동산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사업이 순연돼 왔다. 당초 보상이 마무리되는 2009년 상반기부터 부지조성공사에 착공할 예정이었지만, 인근 삼송지구와 은평뉴타운의 대량 미분양 사태,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보급 확대 등으로 인해 착공예정일로부터 5년이 지나도록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버려진 땅이 되면서 여의도 면적(약88만평)의 절반(약36만평) 가까운 이곳이 온갖 잡풀과 야생화들의 군락지로 변했다. 또 산업용 폐기물과 인근 주민들이 갖다버린 생활쓰레기, 수년전 철거 때 나온 폐건축 자재들이 쌓여 거대한 쓰레기장을 만들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 단전·단수 조치가 취해져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인데도 이곳에서 텃밭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목격됐다. 텃밭 주변에는 나무를 엮어 얼기설기 지은 움막 몇 채가 발견됐다.
이곳 관할인 화전파출소 이종석 소장은 CNB 기자에게 “지난달 일제 수색 때 이 지역 폐가에서 무단거주하고 있는 2명의 주민을 발견해 고양시와 관할 구청에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며 “자체 조사결과, 이들은 적은 보상금액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길 형편이 안돼 줄 곧 거주해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LH는 지난 수년간 이곳을 방치하다시피 해왔다. 용역업체 직원 몇 명이 돌아가며 순찰을 돌고 있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차량으로만 움직이고 있는데 곳곳에 쓰레기와 잡풀이 우거져 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LH가 설치한 펜스 곳곳이 개방돼 있어 안으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다. 무단투기, 무단거주, 무단경작 등 행위들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는 듯했다.
LH 관계자는 “정부의 공기업 개혁 바람이 불면서 손실이 예상되는 사업장에 대한 대대적인 재점검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미뤄져 왔다”며 “현장감시단을 운영하고, 폐기물을 정기적으로 수거하고 있지만 워낙 지역이 넓어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러다 보니 곳곳에 대형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성폭행, 청소년 범죄 및 범인 은닉 장소 등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관할 경찰이 수시로 일제 점검을 벌이고 있다.
특히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 보였다. 향동지구를 양분하고 있는 편도1차선 약2킬로미터의 도로는 원주민 철거 이후 지난 5년간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이 지역 전체가 단전돼 밤에는 불빛 한 점 없는 곳인데도 안전표지판이나 야광표식, 가로등 등이 전무했다. 도로 곳곳에 균열이 가 있고, 움푹 패인 곳이 허다했다. 도로변 노란 실선은 잡풀들이 점령해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으며, 도로 위로 온갖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심지어 중앙선도 색이 바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위험천만한 도로변으로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로 통행하는 인근 주민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LH공사가 도로변에 쳐둔 팬스와 잡초가 갓길을 점거한 모양새라 사람과 도로 사이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로 위를 걷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CCTV 한 대 찾기 힘들었다.
고양경찰서 관계자는 “LH공사에 가로등이라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며 “야간에 (해당 도로 주변에) 순찰차를 집중 배치해 해당 도로를 오가며 사고예방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순찰차 불빛이 이곳을 오가는 차량들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근 주민 오모씨(45·여)는 “서오릉(서울 은평구) 쪽으로 가려면 이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오갈 때마다 섬뜩한 느낌이 든다”며 “자전거를 피하려다 사고가 날 뻔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고양시와 LH는 서로 관리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관할 자치단체인 고양시는 이미 2009년 원주민 보상이 완료돼 LH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이곳을 돌볼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양시 도로정책과 관계자는 1일 CNB와의 통화에서 “택지개발지구의 경우 실시계획인가(지구계획승인)가 나면 통상 시행사(LH)가 지구 내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 경우는 수년간 사업이 지연된 이례적인 경우”라며 “해당 사안에 대해 국토부에 질의를 했지만 뚜렷한 해석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LH 측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LH공사 고양사업본부 향동지구 담당자는 “공사가 착공되면 공사장 주변관리 차원에서 시행사(LH)가 도로를 관리한다는 의미지, 도로 자체에 대한 법적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며 “도로가 사업지구 안에 있더라도 국가 소유이므로 자치단체에 관리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향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은 지난 3월 호반건설이 부지 조성공사 대행개발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대행개발은 LH가 부지를 조성한 뒤 건설사에 매각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건설사가 직접 부지를 조성, 땅값의 일부와 상계처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작 땅을 사겠다는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아 또다시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LH공사는 지난달 초 향동지구 내 공동주택용지 3개 필지에 대한 분양에 나선 결과, 2개 필지는 분양됐지만 단지 규모가 가장 큰 B-1블록은 신청자가 없었다.
LH공사 관계자는 “현장조사와 (호반건설의) 하도급업체를 선정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앞뒤 상황으로 볼 때, 본격적인 현장관리가 이뤄지기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향동지구가 이처럼 ‘법외 지대’로 방치돼 온 데는 LH의 빗나간 아파트 수요 예측이 배경이 됐다.
향동지구에 앞서 개발이 추진됐던 고양 삼송지구의 경우, 2009년 말부터 최근까지 공급된 8개 단지 모두 순위 내 마감에 실패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체 6000여 가구 중 미분양이 700여 세대에 달해 ‘건설사의 무덤’으로 불렸다. 삼송지구는 향동지구와 불과 2~3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다.
삼송에서 복병을 만난 LH는 결국 향동지구 개발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이이 따라 이곳은 지난 5년간 ‘버려진 땅’이 된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경기가 정점에 달한 2007년 이후 LH가 공급한 신규 물량이 경기도권에 집중적으로 쏟아졌는데, 이로 인해 수많은 건설사들이 (공급과다로) 줄도산 하고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결국 LH의 방만경영으로 인해 향동지구가 방치돼 왔다는 점에서 지금이라도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