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개의 위안부 소녀상이 서로 다른 이유에서 화제와 논란을 낳았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한인예술가 재능기부 단체 ‘크리에이트’의 패션 디자이너 이지인 씨는 ‘엔드리스 플라워(Endless Flowers)’라는 위안부 소녀상을 공개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통 받으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던 모습을 ‘지지 않는 꽃’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다이 아나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섹시 레이디(Sexy Lady)’라는 이미지를 게시하며 “한국 정부는 일본을 비하하기 위해 거짓의 이야기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섹시 레이디’ 속 위안부 소녀상은 기모노를 입고 다리를 벌린 채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게재 후 논란이 일자, 다이 아나미는 이미지를 삭제했다.
한일 양국 간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공론화된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엔드리스 플라워’와 ‘섹시 레이디’의 간극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1993년 당시 일본의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는 일명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의 존재와 일본의 가해성을 인정한 바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며 ‘고노 담화’를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고노 요헤이 장관의 개인 견해로 치부하고 있다.
생존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나 위안소 관리인이 남긴 일기 등 증거들은 명백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그 증거들을 망각하고 부정하고 또 왜곡하려는 입장에서 그러한 것들은 별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려는 한국 문화예술계의 움직임이 눈에 띄어 반갑다.
영화나 만화, 뮤지컬 등으로 선보인 다양한 작품들에서 우리는 새삼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의 정치적 문제 이전에 지금 생존해 있는 사람의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 초 프랑스 앙굴렘의 국제 만화 축제에서 한국의 기획전 ‘지지 않는 꽃’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삶과 아픔을 진솔하게 표현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고, 이 전시는 ‘그곳에 나는 없었다’는 제목으로 다시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뮤지컬도 제작됐다. 오는 7월 대구와 서울에서 공연 예정인 뮤지컬 ‘꽃신’은 개런티 없이 배우들의 재능기부로 진행하며, 공연 수익금을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에 기부한다.
이들 작품은 위안부 문제가 민족주의나 한일 간의 정치문제가 아니라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피해자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생존해 있는 55명의 할머니들의 문제라는 점을 생생히 보여주며 우리의 경종을 울린다.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