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굴곡과 현대인의 불안을 기내에서 보여주는 김경주 극, 유영봉 연출의 연극 ‘블랙박스’. (제공=한강아트컴퍼니)
“비행기가 곧 떨어질 거라는 방송을 들으면 당신도 벗었던 신발부터 제일 먼저 신게 되는 존재다. 우습지만 그게 무슨 쓸모가 있다고 믿고 싶은 게 삶일지 모른다”고 시인 김경주는 말했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의 소동을 다룬 연극 ‘블랙박스’는 시인 김경주가 기내극(機內劇)이라는 형식으로 선보이는 첫 번째 작품이다. 김경주는 실험적인 시작(詩作)과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으로 주목 받아왔다.
연극은 비행기가 이륙한 뒤 밤 열한 시부터 자정까지 구름 속에서 머무는 한 시간 동안의 이야기로, 실제 작가가 여행 중 난기류에 갇혔던 비행기 안에서의 불안의 경험을 그려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삶과 죽음, 희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추락하지 않으면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현대인의 불안은 말에 있다. 불안한 사람일수록 말 속에 숨는다”고 말하는 작가는 말 속에 감추어진 인간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을 그려냈다. 결국 ‘블랙박스’는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새로운 형식의 언어극 내지는 시극으로 표현한 블랙코미디다.
극의 생각지 못한 반전은 관객에게 상상의 여기를 남기며, 한편의 시를 보는 듯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지난 ‘김동수 플레이 하우스’ 공연에서 카파 역을 연기한 배우 최광덕을 비롯해 이창직, 권택기, 곽현석, 오선아 등 대학로와 스크린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블랙박스’는 김경주의 희곡으로 잘 알려졌지만 그동안 실제 무대 위에서 공연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연극은 극단 에스의 주성근 대표와 다양한 거리예술을 펼쳐온 유영봉이 참여해 국내 초연되는 것이다. 대학로 스튜디오 76에서 6월 29일까지 공연한다. (CNB=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