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선키스트’ 협동조합이 생긴 것은 이미 120여 년 전의 일이다. 1893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농가들에 의해서였다.
영세한 농민들이 대형 유통회사의 횡포에 맞서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오늘날 ‘선키스트’는 대표적인 협동조합 브랜드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축구 구단들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 역시 스페인의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한 명의 재벌 구단주가 아니라 20만 명에 가까운 조합원이 이 축구 명문의 주인이다.
협동조합 설립이 제한적이었던 국내에도 지난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금융과 보험업을 제외한 업종의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등장했다.
문화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예술가들을 포함한 관련 종사자들이 다양한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뜻을 함께 하는 5인 이상이 모이면 문화예술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발레계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결성된 ‘발레STP협동조합’은 최근의 사례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등 국내 5개의 민간 발레단이 뭉친 이 협동조합은 각 단체의 상호교류와 함께 많은 ‘비정규직’ 무용수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국내외 협동조합 중 최근 동물병원 개원을 준비 중인 한 협동조합이 눈길을 끈다.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이하 우리동생)은 반려동물 문화와 동물병원에 대한 불신을 바꾸기 위해 서울 마포구 주민들이 함께 한 반려동물 관련 협동조합이다.
지난해 5월 창립총회를 열고 그해 7월 협동조합 허가를 받은 ‘우리동생’의 특이한 점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조합원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사람 조합원 400여 명과 함께 동물 조합원 770여 마리가 ‘우리동생’의 엄연한 조합원이다.
동물 대표도 있다. 지난해 조합원 선거와 대국민 사회연결망서비스(SNS) 선거라는 2차례의 투표를 통해 ‘보리’라는 개가 동물 대표로 당선되어 화제를 낳은 적이 있다.
그리고 동물 대표와 함께 ‘우리동생’의 정관은 이 협동조합의 성격과 지향하는 바를 잘 알려준다. “인간만의 세상, 인간만의 사회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물은 인간이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디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인간과 함께 공존해왔습니다”고 정관은 시작한다.
이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인간과 동물간의 만남. 그 중 아주 우연한 기회에 당신과 만나게 되고, 함께 하게 되었으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든 우리들을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여기서 ‘당신’은 사람을 지칭하고, ‘우리’는 동물 자신을 말한다.
동물이 주체가 되는 이 정관은 행복하게 살 권리,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생명권을 보호할 기본적인 권리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하는 것 같다.
현재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국내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서고, 반려동물과 관련한 시장규모는 2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수치보다 ‘우리동생’의 정관이 들려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의미가 아닐까.
“어떤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굶주림과 갈증,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생명권을 보호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달라는 정관의 마지막 부분은 그 주체가 사람이든, 혹은 동물이든 공동체의 구성원 누구에게나 해당될 것이다.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