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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교수의 공연예술 산책

천에 얼굴을 가진 배우 김귀선, 그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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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락현기자 |  2014.06.03 09:23:50

▲배우 김귀선.(사진/김건표 교수)

“연극을 하는 것은 내 운명이다”


속초 바람을 뚫고 연극을 하는 배우 김귀선(52).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영화에 출연한 그를 본적이 있다. 맡은 배역은 크지 않지만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다. 강원도를 주 무대로 연극을 했고, 속초는 그의 고향이다. 강원대학교를 다닐 무렵, 그는 제대로 연극이 하고 싶어졌다. 군 제대를 하고는 대학입학 시험을 다시 봤다. 들어가게 된 곳이 ‘서울예대’다.


나이가 제법 차이나는 동생들과 동기가 됐다. 뒹굴며 연극 하는 게 좋았고, 무대에서 숨을 쉬는 것이 행복했다. 극단 현대예술극장에 들어가서는 촌놈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4년 동안 죽도록 연극에 미쳐 살았다. 어느 날 극단이 해체됐다.


“극단 현대예술과 극단 교실이 해체가 됐다. 속초 촌놈이 공중에 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고향으로 바로 갈수 가 없었다. 극단 <영>에서 강승균 선생님과 인형극도 했다. 그렇게 1년 반을 서울서 버텼다. 아동극만 할 수 없었다. 그 길로 고향 속초로 가서 연극만 했다”  


극단이 해체되고 소주 한 병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속초 바닷바람이 그리워 떠난 지 27년 만에 그가 대학로로 돌아왔다. 그동안 쌓아놓은 연극토양을 물려주고 서울 대학로 최고 히트 작품인 된 연극 <변태> 오동탁 역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인을 꿈꾸는 정육점 주인 오동탁 역으로 신들린 연기를 하는 그는, 모처럼 서울 연극판에서 주목받고 있다. 둥근 안경을 쓰고, 작아 보이지 않는 짤막한 키에 하얀 바지를 입고는 승마선수들이 쓰는 모자처럼 생긴 것을 머리에 푹 눌러쓰고는 큰 가방을 들고는 역 광장 한 가운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부동 국립극단 극장으로 쪽으로 걸었다.  연극 변태공연 잘 봤다. 연기가 강렬했다.
말이 소리가 되어 밖으로 뱉어지기 전에 그는 호흡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배우의 연기처럼 숨 을 밖으로 길게 빼고 말을 하는 습관이 있어보였다. 속초 연극을 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학로로 왜 돌아왔나. 걸으면서 말을 하니 툭툭 끊겼다.


“서울연극에 미련이 굉장히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이뤘다. 협회장이나 대표일이도 많이 했다. 연극으로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뭔가 허전 했다. 회의감이 밀려 왔다. 나는 배우인데 라는 생각을 늘 했다. 연극 행정을 하다보면 치열하게 예산을 따서 연극을 해야 한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김귀선은 배우다. 배우 입장에서 생각하면 더 그랬다.  대한민국 연극의 심장(대학로)에서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리하고 올라왔다” 


연극은 지역에서 할 만큼 했다. 배우로 받아야 할 상도 많이 받았다. 평생 연극을 해도 상과 인연이 없는 분들도 많다. 욕심 아닌가. “그동안 지역 타성에 젖은 연기를 했다. 소극장 연기를 하면서 정말 행복했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동탁 역할을 하면서 행복했다. 연기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연극을 많이 해왔는데 배우로써 적응해야 할 트렌드가 있다는 것은 겸손처럼 들린다.


“연기도 트렌드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초기 신파연극도 바뀌지 않았나. 요즘 연극은 배우가 실제적인 표현보다는 미(美)라는 것이 연기에 흡수되어 있어야 한다. 사실적으로만 연기하는 것은 배우예술이 아니다”


사실적인 연기가 배역의 실제성을 만들어 낸다. 배우가 등장인물이 되어 가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다. 연극무대 배우의 연기는 TV연기와는 표현의 과정은 다를 수 있다. TV드라마의 연기자들은 일상생활의 사실성들을 감정으로 그대로 담고 뱉어낸다. 연극은 무대라는 공간의 특수성으로 인해 연기는 드라마와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말을 강하게 내 뱉는다.  


“연극무대에서의 너무 사실적인 연기는 너무 밋밋하다. 감정이 구체적으로 들어나질 않는다. 과장적인 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중간이다. 독특한 역할을 창조해야 한다. 배우의 연기가 강렬해야  무대에서 들이는 숨소리도, 감정도, 움직임도 모든 것이 무대에서 전달될 수 있다. 특별한 역 창조가 되지 않으면 배우의 스타일은 무대에서 살아 숨 쉬기가 힘들다. 연기표현을 말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난 이병훈 연출가한테 배웠다. 연기에 눈을 뜨게 한 사람이다”


국립극단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소극장에서 흘러나오는 조명 불빛이 극장마당을 밝히고 있었다. 청소년연극을 연습중인 배우들의 움직임과 소리도 강렬하게 쏟아져 나온다. 그 사이로 걸어 나오는 (재)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연극연구소 유홍영 부소장을 수십 년 만에 만났다. 유 부소장은 어린이, 청소년연극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어린이연극 극단 <사다리>를 여러 동인들과 만들었다. 세계 여러 나라 아동극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은 아동극 만들기를 꾸준하게 지키고 있다. 그가 청소년 연극 책 두 권 씩을 손에 쥐어주고는 문 밖으로 사라졌다.

▲연극 변태에서 오동탁 역할을 맡고 있는 김귀선.(사진/김건표 교수)

음료수 두 병을 사와서는 의자에 앉았다. 얘기가 27년 전으로 돌아갔다.


“당시에 극단이 해체됐는데 환경변화는 인간에게 무섭더라. 정신병적인 현상도 경험했다. 죽은 쥐를 보고는 울게 되더라. 술 한 잔을 마시고 버스를 탔는데 괴물이 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현상도 느꼈다. 똥 배우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돌아보면 육체와 마음이 단련되던 시절이었다. 배우로써 많이 배웠다”


그는 고향연극을 선택했다. 고향 속초 땅을 밟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죽도록 연극만 했다.
서서히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묵묵히 27여 년 동안 속초연극을 지켰다. 극단<굴렁쇠>는 그가 만든 극단이다.


굴렁쇠 극단과 속초연극협회를 통해 수 십여 편의 연극을 만들면서 대한민국에서 주는 지역연극상은 더 이상 받을게 없어졌다. 크고 작은 연기상과 연출 상을 비롯해 최우수 연기상을 두 차례나 받았고, 작품으로 금상 4회, 은상1회를 받을 때는 연극인으로 배우로 살아있는 맛이 났다.


연극으로 대통령상을 받고, 자랑스러운 연극인상까지 거머쥘 때는 배고픔을 참아가면서 연극으로 버티고 살아온 것이 다행스러웠고, 무대를 품으면 행복했다. 속초바다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지역 연극을 지키기 위해서는 궂은 일 부터 다 챙겨야 연극한편을 올린다.


묵묵히 지역무대를 지켰고, 세월이 쌓이니 속초연극은 전국구 수준이 됐다. 지역에서 연극을 삶으로 선택한 제자들도 길러냈다. 이제는 그들이 속초연극을 이어간다. 강원도 배우협회장과 강원도 연극협회 회장을 맡아서는 지역연극이 잘 돌아 갈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을 맡았다. 다 내려놓고 싶어졌다. 더 늦기 전에 잘나가는 배우들과 작품들이 쌓여있는 서울무대에서 배우로써 막판 뒤집기를 하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서울에서 연극을 하고 싶었어. 배우는 무대에서 살아야 하잖아. 제대로 된 무대에서 숨을 쉬고 살고 싶었어요. 27년 만에 돌아오니까 농부가 땅을 만난 것처럼, 살아있는걸 느껴”


그가 출연한 60여 작품 중 그가 말하는 대표작은 ‘한씨 연대기’( 1991), ‘오지의 사람들’ (1994),‘돼지비계’(2000), ‘아카시아 흰 꽃은 바람에 날리고’(2005), ‘붉은 훈장’(2006) 정도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황석연작 ‘한씨 연대기’ 에서 한영덕 역할을 맡고는 강렬한 대사를 뿜어대던 그를 기억한다. 이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배우로써 지역 연극을 하면서 상을 받을 많은 다 받은 셈이다. 그래도 무대가 늘 그리워진다.


“배우는 희곡을 보고 포인트를 만들어야해. 그걸로 배우의 승부가 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서 나라는 존재를 깨끗하게 확 내려놓을 때 등장인물의 감정 끝이 만들어져요. 배우는 그것을 찾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하는 거야. 맡은 역할이 내 몸 안으로 들어설 수 있어. 배우는 관객에게 정확한 감정선을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한순간에 녹여버릴 수 있죠. 그러면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의 눈빛이 달라지고 배우는 그걸 느낍니다” 


그가 이병훈 연출가 얘기를 꺼낸다. “난, 이병훈 연출가 기초를 배웠어요.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어요. 철저하게 남의 대사를 듣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내가 리액션 연기를 하면 그것을 더욱 정제 시켜서 더욱 고급스럽게 배우가 표현했을 때 배우는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애들을 가르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기 한다는 것을 혼돈합니다. 연기의 기초가 없어도 배우가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잘 못된 겁니다. 기초에 충실해야 해요. 배우가 무대 위에 섰을 때 예술가란 마음이 들어야 해요”


그가 말을 하면서 배우예술의 표현이 잘 안됐는지 연극 ‘한씨 연대기’ 한영덕의 대사를 한다.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대사를 듣는 것이고, 배우가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주어진 상황에서 내려놓고,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인지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모든 감각은 열려 있어야 가능하다. 몸의 세포가 살아 있지 못하면 불가능 합니다. 모든 것을 인지하는 상태로써 내려놓는 것이다. 어렵다. 내가 말해 놓고도 어렵다. 가슴으로 하는 연기도 중요하지만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를 차갑게 만들어주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한다. 그게 좋은 연기의 바탕이다. 연기자는 무대 위에서 천재가 되어야 한다. 세포의 촉각을 열어놓아야 느끼고 표현 할 수 있다”


국립극장 마당이 얼굴이 안보일 정도로 어두워 졌다. 청소년 연극을 연습하는 소극장 안으로 몰해 들어가 사진 몇 장을 겨우 찍었다. 연습하던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행동이 우스웠는지 연습을 중단하고 “ 누구시죠?” 한다.  할 말이 없었다. 서울역안 커피숍으로 걸었다.


물었다. 이제는 좀 쉬면서 연극을 하고 싶지 않나.


“대한민국에서 연극을 하신 선생님들이 존경스럽다. 다들 대단 하다는 것을 느낀다. 역할이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김귀선이 만든 인물은 더 이상 무대에서 표현 할 수 없게 만드는 게 꿈이다. ‘오동탁’, ‘햄릿’은 김귀선 아니면 할 수 없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 배역의 이름을 남기는 배우. 그런 연극을 만나고 싶다.  인생을 살아온 것만큼, 연기도 인생의 두께만큼 붙는 것 같다. 쉬는 것 보다는 무대에서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끓고 있다” 


뭘 더 하고 싶은가.


“특별한 것은 없다. 현대사회가 복잡하다. 다들 진실 된 자기만의 것을 감추고 복잡한 캐릭터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놈, 나쁜 놈들로 구분되어진 배역 말고(하늘을 올려본다.) 감추어진 내면들을 들어내는 연기를 아주 고급스럽게 표현하고 싶다. (시선이 바뀐다) 연륜과 생활이 보이는 그런 역할들을 맡고 싶다. 외형의 배역보다는  짧게 등장해도 관객과 시청자에게 각인될 수 있는 배역들을 하고 싶다. 어떠한 인물이라도 좋다. 작은 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연극을 하다보면 현실과 마주한다. 연극을 해서 고작 주머니에 넣은 돈은 몇 푼이 안 된다. 작품 출연료로 받은 작은 돈으로 삶을 버티기에는 고단하다. 연극을 하는 게 행복하고 특별한 연극정신이 없으면 불가능 한 일이다. 그 과정을 뚫고 견디지 못하면 연극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배우들이 고단하지만 연극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일상을 초월한 예술적 신념이다. 


연극만 해서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 할 수 없다. 내려놓고 싶지 않나.


“연극을 고생스럽게 할 때는 솔직히 그런 생각도 했다. 연극으로 버틴 세월이 조금 되니까 달라지더라. 징그럽다기보다는 즐긴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생활이 됐다. 배우가 직업인 것이다. 공부 잘 하는 애들 보면 공부를 왜 저렇게 할까라고 생각한다. 연극도 똑 같다. 연극만 왜 열심히 할까 생각한다. 그 만큼 연극은 참 좋은 놈이다”


연극을 하면서 돈 많이 벌지 못하는 아빠와 남편을 이해하나. 연극배우로 연봉을 묻자 그는 웃는다.


“한 달에 100만원이 안 된다. 연극 작업이 꾸준하지 않으면 그것도 챙길 수 없다. 다행히 집 사람이 이해해 주고, 애들이 연극하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행이다.  애들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해서 늘 미안하다. 늘 조금만 참으라고 말한다. 서로 알면서도 웃는다. 삶에 재미는 바뀐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날이 올 것 같다” 

▲연극 변태의 오동탁 역할의 김귀선.(사진/김귀선 제공)


대학로로 돌아와 연극을 하면서 달라진 게 있나. 그가 긴 호흡을 하고는 표정이 바뀐다.


“좋아요. 대학로에서 치열하게 연극적업 하는 배우들은 살아 있는 것 같다. 이 바닥에서 한 번 더 미쳐 보고 싶다. 죽을 때 까지 배우를 할 겁니다. 대사를 못 외울 정도의 정신상태가 될 때까지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들끼리 눈을 바라본다는 것은 행복하다. 요즘 지하철을 타고 걸어 다닐 때 즐겁다. 지금처럼 뜨겁게 연극을 하고 있는 게 좋다. 최소한의 먹고사는 현실만 마련된다면 평생 연극무대를 지키고 싶다. 그런데 연극현실이 어쩔 수 없다. 나 하나 몸이면 좋겠는데 아이들 크고 있다. 연극배우라는 직업이 아빠로써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연극하는 아빠를 이해해 줘서 다행이다.


“이해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라온 환경이 그러니 받아들이는 것 같다. 엄마를 닮아서 어려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아주 잘한다. 나와는 아주 다른 쪽으로 공부를 한다. 늘 미안하지만 잘 자라주는 것 같아 고맙다” 그는 두 애들을 자랑하면서 행복해 한다.


요즘은 TV드라마나 영화가 강하다. 연극으로는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빠인데 방송이나 영화에서 볼 수 없다고 말하지 않나.


“미안하기도 하다. 애들은 그런 말 안한다. 서울로 돌아왔으니 앞으로는 드라마나 영화도 인연이 생기면 하고 싶다. 멋있는 배우들이 많지만 주어진 역할로 강렬한 존재감에 생명을 불어넣는 배우는 많지 않다. 많은 드라마 PD나 감독들이 같이 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다. 그동안은 연극무대만 지키고 싶었다. 좋은 역할이 주어지면 반드시 그 역할을 살려낼 자신이 있다. 개성 있는 배우들의 트렌드로 바뀌고 있다. 나와 작업하면 드라마와 영화는 반드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두터운 인생과 만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 잘 할 수 있다. 진심이다” 


시트콤이나 사극이 잘 어울린 것 같다.


“정극연기를 하면서도 무겁지 않으면서 가볍지 않은 역할이 잘 맡는다. 그런 캐릭터들이 나와 잘 어울린다”


연극으로 치열한 전쟁터에서 연극을 하는 것 보다는 속초로 돌아가서 편안하게 연극을 하고 싶지 않나.


“그런 생각은 안한다. 후배들이 생각난다. 연극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길은 쌓아 놨다. 고생이 되더라도 이겨냈으면 좋겠다. 후배들이라도 무대를 지켰으면 좋겠다. 쉽지 않을 거야. 언제든지 변화 할 수 있잖아. 그렇지만 우리는 무대에 살아야 한다. 그게 운명이다”


▲김건표 교수.

● 김건표 교수(대경대학 연극영화방송학부)는 연극·뮤지컬·공연문화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찾아 공연분석을 통한 리뷰를 써오고 있으며, 인터뷰 전문 칼럼리스트다.  방송, 신문언론을 통해 600여명이 넘는 스타, 전문가, 공연예술가들의 인터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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