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인 철강 사업을 강화하는 대신 현재 46개인 계열사를 30개 규모로 통폐합해 몸집을 크게 줄인다는 게 핵심이다. 포스코에너지와 포스코건설 등 핵심 계열사를 상장해 2조원 대의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계획도 나왔다.
안팎으로 위기상황에 처한 포스코가 ‘제철보국’이라는 과거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권오준호(號)가 임기 3년 동안 추진할 혁신 로드맵을 CNB가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권오준 회장 “이름만 빼고 모두 구조조정”
철강 사업 올인…나머지는 아낌없이 매각
외풍 시비, 글로벌 철강 불황…넘을 산 높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실패하면 끝없는 추락
포스코는 지난 16일 이사회에서 ‘포스코 혁신’을 위한 사업구조 개편안과 중장기 경영전략의 윤곽을 수립한데 이어, 19일에는 권오준 회장이 투자자들을 상대로 직접 ‘新경영전략 설명회’를 가졌다.
이제 막 출범한 권 회장 체제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획기적인 재무구조 개선이다. 이를 위해 현재 46개 계열사 가운데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철강, 에너지, 소재 등 주력 사업과 연관성이 낮은 계열사는 팔거나 통폐합할 계획이다. 시장 상황이나 인수 희망자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정리해 전체 계열사를 30여개로 줄일 방침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당장 매각 대상에 올려놓기보다는 수익과 부채 전망을 고려해 시간을 두고 지분 일부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3조 5000억원 가량으로 추정되는 비계열사 보유 지분이나 자사주의 일부 매각도 점쳐지고 있다. 우량 계열사라도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지분 이상은 매각키로 방침을 정했다.
주력 계열사를 증시에 상장해 신규 투자자금을 끌어와 유동성을 개선한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이르면 연내 포스코에너지와 포스코건설의 상장을 추진한다. 현금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고금리 차입금 상환, 재고자산 감축, 매출채권 회수기간 단축에도 나선다.
그룹 사업구조는 종전 철강, 소재, 에너지 등 3대 산업의 관련 분야에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전략에서, 철강을 핵심으로 하고 원천소재∙청정 에너지 등 2대 영역에서 메가 성장엔진을 육성한다는 전략으로 수정했다.
철강 사업에서는 자동차, 해양, 에너지 등 수익성과 성장성이 양호한 7대 전략산업을 선정해 핵심 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또 시장이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적기에 개발하고 솔루션 마케팅을 강화키로 했다. 이를 통해 2016년까지 해외 전 생산법인의 흑자 전환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포스코가 사실상 철강에 올인할 것이라는 말이 돌면서 벌써부터 시장 일각에서는 동부제철 인수설이 나돌고 있다. 포스코가 현재 보유 중인 유니온스틸의 지분 9.8%에 추가로 20%를 취득한 뒤 포스코강판과 합병하고, 합병한 법인이 동부제철을 인수한다는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가 성사될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중국 등 해외경쟁 업체의 국내 시장 진입을 막는 효과와 함께 공급과잉 상태인 국내 컬러강판 시장을 재편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어떤 사업이라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원칙을 세웠다”며 “철강 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수적 기능을 수행하는 분야가 아닌 비핵심사업을 우선 (구조조정)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금 확보·몸집 줄이기 ‘지상과제’
이처럼 강력한 구조조정이 예고되면서 올해 투자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크게 축소됐다. 포스코는 연초에 투자 규모를 6조5000억원으로 책정했던 것을 5조7000억 안팎으로 8000억원 가량 줄였다.
이는 정준양 전임 회장 시절인 2010년 11조2000억원, 2011년 8조1000억원, 2012년 7조2000억원, 2013년 8조8000억원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계열사와의 합작투자를 제외한 포스코의 단독 투자 규모는 당초 3조7000억원에서 3조1000억∼3조3000억원으로 축소됐다.
포스코가 ‘몸집 슬림화’에 나선 것은 열악한 재무 상황을 개선하는 한편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주력사업들을 재편하기 위해서다. 빚은 늘고 수익은 줄면서 지난 수년간 그룹 전체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다는 게 권 회장의 의지다.
포스코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는 3월말 기준으로 40조5800억원에 이른다. 작년 말보다 5.0%(1조9470억원)나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89.6%로 전 분기보다 5.3% 상승했다. 대우인터내셔널 등 계열사의 단기 차입금이 증가한 것이 주요 요인이다.
반면 1분기 매출액(연결 기준)은 15조44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6.6%, 영업이익은 7310억원으로 1.7%가 각각 감소했다.
포스코의 실적부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준양 전 회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2008년 포스코는 연매출 41조 7426억원, 영업이익 7조 1739억원에 영업이익률이 17%에 달하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이었다.
지난해 포스코는 61조 8647억원이라는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2조 9961억에 그쳤고, 부채는 18조 6171억원에서 40조원대까지 불어났다. 철강업계에선 정준양 전 회장 재임 시절을 ‘잃어버린 5년’에 비유하기까지 한다.
한편으론 금융당국이 최근 들어 채권은행들의 고삐를 죄고 있는 것도 포스코가 재무개선에 나선 배경이 됐다.
금융감독원은 올들어 주채무계열 기업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중 금융사 대출이 금융권 전체 신용공여액의 0.1%를 넘는 대기업을 채권단 관리대상인 주채무계열로 정하던 것을 올해부터는 0.075%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이 지난해 30개사에서 올해 42개사로 늘어났으며, 포스코도 주채권단인 우리은행의 간섭을 받는 주채무계열에 이름을 올렸다.
더 큰 문제는 한 단계 더 높은 조치인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대상이 지난해 6개사에서 올해 14개사로 2배 이상 크게 늘었다는 것. 채권은행과 약정을 체결한 기업들은 몸집을 대폭 줄여야 한다. 사업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선 등은 물론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요구가 있을 경우, 계열사 지분 매각도 불가피하다.
해당 기업이 되면 자금융통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다, 해외투자에서 여러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재무개선 과정에서 ‘알짜 계열사’를 시장에 내놔야 하기 때문에 추후에 유동성이 개선되더라도 경쟁력 기반이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포스코는 최근 몇 년새 재무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재무개선 약정 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단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돼 왔다.
내실·성장, ‘두 마리 토끼’ 잡을까?
포스코와 동일선상에서 비교되던 KT가 최근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도 자극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삼성전자 출신의 황창규 회장이 KT 수장에 취임하면서 KT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단일 기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직원 대상 명예퇴직을 실시, 전체 직원의 25.8%인 8304명이 지난달 30일자로 퇴사했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236개 지사를 통합해 79개로 광역화하고 지사 하부 조직으로 181개 지점을 신설했다.
이런 가운데 KT가 과감한 혁신을 시도한 것은 포스코에 상당한 자극이 됐을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전언이다.
포스코의 당면목표는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일단락 짓고, 제철보국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것. 철강을 기반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게 권 회장의 의지다.
권 회장은 ‘新경영전략 설명회’에서 “포스코 철강부문을 제외한 모든 사업이 구조조정 검토 대상”이라며 “2016년까지 현금창출 능력(EBITDA) 8.5조원과 신용등급 A등급 회복을 통해 글로벌 톱 수준의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내실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것.
하지만 끊임없이 포스코의 발목을 잡아온 외풍 논란, 글로벌 철강산업의 불황 등 넘어야할 산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포스코는 1968년 공기업으로 출발할 때부터 외풍 시비가 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태준 당시 사장에게 친필로 ‘종이마패’를 써 줬다고 한다. 청탁과 간섭을 막고 사업에만 전념하라는 뜻이었다.
포스코는 2000년 9월 완전 민영화 됐지만 외압 논란은 공기업 시절이나 매한가지였다. 민영화 후 첫 회장인 유상부 전 회장은 다른 회사 주식을 시세보다 비싸게 산 게 문제가 돼 물러났다. 후임자인 이구택 회장도 임기를 1년여 앞두고 중도 하차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준양 회장이 물러나면서 전 회장들의 전철을 밟았다.
그래서 전임 회장들과 달리 포스코 내부의 기술전문가 출신인 권 회장에게 거는 안팎의 기대가 남다르다. 반대로 권 회장마저 실패하게 되면 영원히 ‘주인 없는 기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포스코 사정에 밝은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포스코가 사업 확장을 해오며 덩치를 키운 것은 정부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인데, 철강 전문가인 권 회장이 포스코의 수장이 되면서부터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며 “이러한 위기의식을 어떻게 경쟁DNA로 진화시키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CNB=도기천 기자)